로마서 5장 12-21절을 살펴보면, 바울은 “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아홉 번이나 반복하여 아담과 그리스도를 극명히 대비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조가 우리 신앙의 핵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본문이라고 강조한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고, 그 결과 사망이 만인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또 다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의와 생명이 임하게 되었다는 교리가 나타나는 곳이 바로 로마서 5장 12-21절이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신학적 개념은 ‘원죄(original sin)’이다. 장재형목사는 원죄에 대한 사람들의 본능적인 반발, 즉 “왜 내가 죄 지은 적이 없는데 아담의 죄가 내 죄가 되느냐”라는 항변을 자주 언급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저지르지 않은 범죄가 어떻게 자기 책임으로 전가되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바울은 본문에서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라는 폭군 같은 권세가 인류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부분을 설명하며, 오늘날 인류가 사망의 그늘 아래 살고 있음을 구체적인 예로 든다. 만약 우리 본성이 갈망하는 에덴동산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었다면, 지금의 세계가 고통과 죄와 사망으로 가득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원치 않는 죄의 권세 아래 놓여 있고, 그것이 우리를 폭군처럼 억압한다. 설사 “인간은 실제로 죄를 짓고 있으니 죄인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어째서 아담 한 사람의 죄가 나와 상관있다고 성경이 말하는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해도, 성경은 그 시작점이 아담에게 있다고 증언한다. 즉, 아담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결과 사망이 인류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원리를 바울이 설명할 때, 율법과 죄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덧붙여 말한다. 로마서 5장 13절에 따르면,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율법은 모세 이후에 주어졌지만, 그 이전에도 죄 자체는 이미 존재했다. 단지 법적 기준으로 ‘죄’가 확정되지 않았을 뿐이며, 모세 율법이 제시된 이후라야 죄가 무엇인지 더욱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나 아담이 금지된 열매를 먹었을 때 이미 그것은 ‘죄’이지만, 명문 율법이 없었기에 ‘법을 어겼다’는 식의 개념으로 인정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없다 해도 죄는 계속 존재했고, 율법은 죄를 죄로 더 분명히 인식하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다만 율법 자체가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기에, 율법으로는 인간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 바울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다”고 말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에 주목하면서, 비록 아담처럼 직접 금지된 열매를 먹은 행위는 하지 않았어도 그 죄의 결과로서 사망이 모든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죄론’이 갖는 무게이다. 한 사람 아담이 머리가 되어 범죄에 들어갔으므로, 그의 후손들은 그 죄의 영향력 아래 태어나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사도 바울이 이 대목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일컫는 부분을 특히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온 것처럼, ‘새로운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와 생명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열릴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우리는 아담이 상징하는 ‘옛 사람’에 속할 것이냐, 아니면 그리스도가 상징하는 ‘새 사람’에 속할 것이냐를 묵상해야 한다.
로마서 5장 15-19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를 강조한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류에게 죄가 전가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들에게 생명의 구원이 전가된다는 것이다. 여기서‘전가(imputation)’라는 신학적 개념을 장재형목사는 다시 한번 자세히 풀이한다. 우리가 직접 범죄하지 않았어도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넘어왔고, 반대로 우리의 의로움이 전혀 없음에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처럼 죄의 전가(original sin)와 의의 전가(Christ’s righteousness)는 인간의 능력이나 공로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철저히 신적인 주권과 은혜에 의한 사건이다.
이와 연동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5-47절에서 첫 사람 아담과 둘째 사람 아담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한다. 첫 사람 아담은 흙에서 난 육의 존재이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신 신령한 분이시다. 첫 사람 아담이 산 영(a living being)이라면, 둘째 사람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a life-giving spirit)’이라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를 지닌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 놓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므로, 두 대표자를 어떤 태도로 맞이하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가른다.
장재형목사는 이 본문에서 말하는 대표성에 대해 “대표이론(Doctrine of Representation)” 혹은 “연합이론(Principle of Representation and Corporate Solidarity)”으로 설명한다. 즉, 모든 인류가 아담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범죄가 전가되었고,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들은 그분의 의가 전가되어 새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구조적으로 서로 얽혀 있듯이, 한 사람의 범죄와 한 사람의 순종은 그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양상을 띤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일상의 예시로도 풀어낸다. 가령, “네 이름이 뭐냐?”라고 물었을 때, 어떤 부족 문화권에 사는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름이 아니라 부족의 이름을 우선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즉, 그 공동체와 ‘연대’되어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역시 영적 차원에서 아담의 ‘머리됨’ 아래 한 몸체로 연대되었기에,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를 함께 짊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머리(new head)가 되어주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결될 때 그분이 이루신 의의 공로가 우리에게 고스란히 흘러들어온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 이 원리를 “종자 개량론”이라고 비유적으로도 설명한다. 이사야서 53장 10절에서는 고난의 종이 죽지만 씨를 본다고 했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새로운 ‘종자’가 나타났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 아담’의 계보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장 핵심적이고 으뜸 되는 죄는 불신앙(unfaith)과 불순종(disobedience)이다. 아담에게서 드러났던 그 죄의 본질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계명을 믿지 않고 어긴 데에서 비롯되었다. 만약에 아담이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했다면, 사망과 죄의 지배가 인류에게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은 불신앙의 길을 택했고, 그 대가로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다.
장재형목사는 요한복음 15장,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가지는 열매를 많이 맺게 되지만, 그분에게서 떨어지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이 대표이론, 그리고 연합의 원리이다. 장재형목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려면 먼저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못 박혀야 하며,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새 생명을 얻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 본래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적이고 죄된 생명은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장사되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갈라디아서2장 20절). 그럴 때 우리는 죄와 사망의 세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new creation)가 된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장재형목사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너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역시 ‘대표성과 연대성’의 원리로 설명한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온 인류가 복을 받는 언약이 주어졌고, 동일한 원리로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전가했고, 예수 한 사람이 의를 전가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장면에서도,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라는 언급이 나오듯이, 죄와 복은 결코 개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온 공동체와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연대적 결과를 낳는다.
민수기 16장 고라의 반역 사건에서, 고라의 죄로 인해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소유까지 전부 징벌받는 장면은 대표이론과 연대성의 무시무시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호수아서 7장의 아간의 범죄에서도 아간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재산 등 모든 것이 돌로 쳐서 불태워진다. 그들이 이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이유는 죄의 연대적 파급 효과를 두려워했고, 죄가 공동체 전체에 미칠 영향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암소와 염소와 양을 쪼개어 놓고 하나님의 언약과 연결된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400년 동안 이방에서 객이 되어 고난을 받는다”라고 예언하셨는데, 이는 언약의 대표자인 아브라함의 작은 순종 혹은 불순종, 완전함 혹은 미흡함까지도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한 부분이 후대에 결과적으로 연결되어 나간다. 이처럼 한 개인의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는 개인 이상으로 공동체와 역사를 대변하기 때문에, 그의 행위가 불러오는 여파가 후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대표이론이 갖는 무시무시함이자 동시에 복된 약속이기도 하다.
야고보서 5장 17-18절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하자 하늘이 닫혀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자 비가 내렸다는 장면도 바울이 말하는 대표성과 공명한다.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이 온 백성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의 기도로 인해 하늘이 열리고 닫힌다는 사실은 한 개인의 위치와 권세가 결코 개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드러낸다.
로마서 5장 20-21절에 이르러, 바울은 율법이 죄를 더하게 하려 온 것이라고 말하며,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선언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부분에서 바울이 “생명과 영생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고 표현한다. 죄로 인해 사망이 왕 노릇하던 세계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의 선물로 말미암아 생명이 왕 노릇하는 세계로 바뀐다. 이로써 인류가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서 고통받던 낡은 역사는 지나가고,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새 역사가 열린다(고린도후서 5장17절).
장재형목사는 결국 로마서 5장 12-21절의 메시지는 아담 안에 속한 옛 본성이냐,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 속한 새 본성이냐를 묻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담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죄와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분 안에 살 때 우리는 의와 생명의 풍성함을 얻는다. 바울이 말하는 대표이론과 연대성은 그저 난해한 교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죄의 지배를 받고 사느냐 아니면 은혜의 지배를 받고 사느냐를 결정짓는 실제적인 문제다. 장재형목사는 이 부분에서 계속 강조하듯이,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사망을 넘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능력이며, 아담의 죄와 정죄가 걷어낼 수 없었던 깊은 절망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2.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의와 구원
로마서 5장 12-21절에서 강조되는 주제는 아담과 결정적으로 대조되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부분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본문에서 말하는 ‘새 아담’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이라고 역설한다. 앞서 아담이 죄의 문을 열어 죽음과 파멸이 임하게 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순종과 부활로 의와 생명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여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 5장 15-19절에서 ‘한 사람(아담)의 범죄’와 ‘한 사람(그리스도)의 순종’을 명확히 대비시킨다. 죄와 불순종이 지배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의와 순종이 확립되었고, 그로 인해 죄인이었던 자들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반복적으로 ‘전가(imputation)’라는 개념을 상기시킨다. 죄가 아담으로부터 전가되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행위를 통해 이루신 결과를 우리가 ‘공로 없이’ 전적으로 누리게 된다는 사실이 은혜의 정수다.
이러한 사상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으나 불순종으로 죄와 사망을 초래했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 되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셨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도야말로 복음서와 사도서신 전반에 깔린 핵심 줄거리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한 개인의 죽음과 부활 이상이며, 모든 인류의 머리(대표)로서 죄가운데 있는 자들을 대신해 죽고 다시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일부 사람들은 “나는 왜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다고 해서 자동으로 구원을 받나? 내가 못한 것을 예수님이 했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나에게 적용되느냐?” 하고 묻는다. 이에 대해 장재형목사는 “대표이론”과“연합의 원리”가 해답을 제시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인간은 본래 아담과 죄의 연대 속에 태어나 죄의 종속을 벗어날 수 없었으나, 예수께서 새 대표자가 되셔서 그 죄값을 대신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하는 순간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로움이 고스란히 우리 것이 된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밝힌 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하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시인할 때, 우리는 실질적으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장재형목사는 ‘종자의 근본적 변화’로도 설명한다. 마치 씨앗 자체가 새롭게 바뀐 것이기에, 이제는 다른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7절을 보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해 왕 노릇했다면,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것”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장재형목사는 이 표현을 두고 사망과 죄가 왕 노릇하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은혜와 의가 왕 노릇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한다고 해석한다. 바울은 “왕 노릇”이라는 표현을 통해, 단순히 사람이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된 새 생명이 우리의 존재 전체를 다스리는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본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죄로부터 해방될 뿐 아니라, 우리를 의와 생명의 왕권 아래로 이끌어, 새로운 질서와 능력을 누리게 하는 사건이다.
이 대목에서 장재형목사는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다시 끌어온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이므로,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는 필연적으로 열매를 맺지만, 떨어진 가지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이처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의 삶이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도록 만든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친히 요한복음 15장 9절 이하에서 말씀하신 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너희는 내 사랑 안에 거하라”는 초청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말씀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는 것이 영적 성장과 풍성함의 필수 열쇠임을 보여준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대표이신 그리스도와의 일치’라고 부른다. 연합은 그저 교리적 동의가 아니라 실제 삶의 문제이기에, 교회가 한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통치와 은혜를 경험하는 장(場)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와 연합된 이들은 의와 생명에 뿌리를 내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서로를 섬기며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죄와 사망의 지배를 넘어서는 실재적 삶의 변화가 나타난다.
로마서 3장 24-25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라고 기록된 말씀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장재형목사는 바울이 사용하는 세 가지 비유―노예시장(속량), 법정(칭의), 제단(화목제물)―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 얼마나 대표적이고, 대속적이며, 실재적인 의미를 갖는지 설명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셨고, 우리가 죄인이지만 법정에서 ‘의롭다’ 선고받게 하셨으며,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죄의 담을 허무셨다. 이런 모든 구원 은혜가 ‘대표이신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해 우리에게 적용된다고 장재형목사는 재차 말한다.
이와 같은 대표이론은 세상적인 예시로도 설명될 수 있다. 국가의 대표자가 체결한 조약 하나가 국민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듯이, 가정의 대표가 집의 소유권을 타인에게 넘기면 그 구성원 전체가 거기에 연대적으로 영향을 받듯이, 한 사람의 결정이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 전반에 미치는 것이다. 영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담이 죄의 문서를 ‘도장’ 찍어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 묶어놓았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와 생명의 문서를 ‘도장’ 찍어 우리의 운명을 바꿔주셨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들을 읽을 때, 죄의 심각성은 물론이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얼마나 크고 전인적인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로마서 5장 20-21절의 결론부에서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선포한다. 사망이 왕 노릇하던 곳에 이제는 은혜가 왕 노릇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을 인용하며, 우리가 세상에서 죄가 극심한 상황을 본다 해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 죄를 덮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사는 가장 암울했던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가 폭발적으로 드러났던 사례로 가득 차 있다. 그 이유는 은혜가 죄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며, 생명이 사망보다 무한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장재형목사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바울의 선언을 인용한다. 아담 안에서 사망이 왕 노릇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왕 노릇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신자는 이 사실을 날마다 인식해야 하며, 나아가 삶 속에서 죄를 이기고 거룩함을 추구하는 데로 자연스럽게 나아가야 한다.
전체적으로, 로마서 5장 12-21절에 드러난 ‘아담에서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이 구원의 대서사를 붙들 때, 인간의 죄에 대한 자기연민이나 절망, 또는 “과연 내가 바뀔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자리를 잃게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아담의 타락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새 아담’과 연합되어 의와 생명, 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품게 되었음을 날마다 확인해야 한다. 그저 관념이 아니라 실제 존재의 근본이 뒤바뀌었다는 선언이기에, 사망이 왕 노릇하던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벗어나, 이제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진리를 성도 개인의 경건 생활, 교회 공동체의 비전, 그리고 사회적인 책임감으로 확대해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한 개인의 믿음과 순종이 결코 개인 한 사람의 테두리 안에 그치지 않고, 가정과 교회, 더 나아가 세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연대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이 흐르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은, 어두운 세상 한복판에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는 잠재력과 사명을 동시에 지닌 존재가 된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표권을 위임받아, 죄가 만연한 곳에 은혜와 생명을 실어 나르고, 불의가 가득한 곳에 정의와 사랑을 전파하며, 절망이 짙은 곳에 희망을 심는 삶을 살게 된다.
로마서 5장 12-21절은 ‘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통해 죄와 사망, 그리고 의와 생명의 역사가 어떻게 인류와 개개인에게 전개되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바울은 이 본문에서 아담의 불순종이 몰고 온 재앙적인 결과와, 그리스도의 순종이 가져온 구원과 생명의 복된 소식을 장중하게 선포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본문을 설교하며, 각 성도가 “도대체 나는 어떤 대표 아래 있는가?”를 성찰해 보길 권면한다. 아담 아래 남아 있다면 죄의 무게에 영원히 눌릴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의와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된다.
이로써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바울의 결론은 그저 개인적 깨달음이나 신앙적 위로를 넘어, 실제 존재의 혁신을 선포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복음이야말로 교회와 성도가 붙들어야 할 핵심 메시지라고 역설하며, 이 복음의 능력이 신앙고백 차원을 넘어 삶의 변화를 이끌어야 함을 계속해서 강조해왔다.
장재형목사는 이 로마서 본문의 핵심은 단지 죄가 있다, 은혜가 있다를 넘어서는 ‘생명의 실제성’에 있다고 지적한다. 복음은 우리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라는 선언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너희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라”라는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따라서 신자는 아담의 죄와 연합된 옛 정체성을 끊어내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 정체성을 살아내는 소명을 가진다.
장재형목사는 로마서 5장 12-21절을 통해 성도들이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붙들기를 촉구한다. 첫째,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이 죄와 사망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의와 생명의 운명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담의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는 더욱 크고 더 강력하다. 죄가 깊을수록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바울의 고백을 현실 속에서 체득할 때, 신자들은 참된 자유와 소망을 얻는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듯,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라는 말씀은 복음의 핵심을 꿰뚫는 문장이다. 죄 가운데 태어난 모든 인류가 저항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망의 권세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믿는 이들이 그 사실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날마다 은혜와 의, 그리고 생명의 실체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로마서 5장이 전하는 가장 기쁜 소식이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사망과 정죄가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 의롭다 함과 생명이 임했다. 이 단순한 진술 안에는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구속사(救贖史)가 집약되어 있다. 장재형목사는 성도들이 이 진리를 붙들 때, 과거 아담이 열어버린 죄의 세계에 더 이상 굴복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펼쳐 보인 새로운 에덴, 곧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을 이 땅 위에서부터 실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설파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 12-21절의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도 변함없이 강력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죄성과 연합되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동참함으로써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 죄와 사망이 얼마나 강한 폭군처럼 보여도,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는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라는 이 선언은, 우리가 매일 죄와 싸우고 넘어질 때조차도 여전히 우리를 붙드는 복음의 능력이다.
이렇듯 장재형목사는 로마서 5장 12-21절을 통해, 구원의 근본 원리인 대표성과 연대성,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를 간결하면서도 힘 있게 설명한다. 결국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옛 대표인 아담 안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 대표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 따른 결과는 죄와 사망의 지속이거나, 아니면 의와 생명의 새 역사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무를 때,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장재형목사는 이 현실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요, 교회가 전해야 할 참된 희망의 메시지라고 힘주어 말한다.
Le présent texte se propose d’examiner, à partir de l’extrait du livre des Actes (Ac 18.24-19.7) où apparaissent Apollos et l’Église d’Éphèse, comment notre foi passe d’un état d’incomplétude à une plénitude. Dans ce passage, nous voyons qu’une foi « incomplète » symbolisée par le « baptême de Jean » est amenée à la « foi parfaite » qu’est le « baptême du Saint-Esprit ». En nous appuyant sur cette compréhension du texte, nous réfléchirons à l’attitude et à la posture que l’Église et les croyants d’aujourd’hui doivent adopter pour s’approprier pleinement l’Évangile. Nous examinerons également ce que le ministère, l’enseignement et la pratique pastorale de David Jang suggèrent dans ce parcours.
Dans la première partie, nous analyserons en quoi la foi d’Apollos était incomplète, comment il s’est fait instruire plus précisément par Priscille et Aquilas, puis nous verrons pourquoi les disciples rencontrés par Paul à Éphèse étaient restés au stade du « baptême de Jean ». Dans la seconde partie, nous aborderons le tournant que représente le « baptême du Saint-Esprit » et la manière dont cet événement peut s’appliquer à l’Église d’aujourd’hui, en lien avec l’orientation pastorale de David Jang. En suivant le contexte historique et géographique des personnages, ainsi que le processus de leur maturation spirituelle, nous serons amenés à nous interroger nous aussi sur notre propre foi : ne restons-nous pas nous-mêmes à un stade d’incomplétude ? Comment vivre la plénitude du Saint-Esprit au quotidien ?
I. La foi incomplète d’Apollos et le « baptême de Jean » des disciples d’Éphèse : de la repentance à l’amour, de la connaissance à la vie
Dans Actes 18.24s, apparaît un Juif originaire d’Alexandrie nommé Apollos. Il est présenté comme un homme instruit des Écritures et très éloquent (Ac 18.24). À l’époque, Alexandrie était célèbre pour son intense activité intellectuelle et philosophique. Le fait qu’Apollos soit présenté comme « puissant dans les Écritures » ou « instruit » reflète ce solide bagage culturel. Dans la synagogue, il enseignait avec ferveur que Jésus était le Messie, et son savoir comme sa parole exerçaient une grande influence sur les autres. Cependant, le texte précise également : « Il ne connaissait que le baptême de Jean » (Ac 18.25), soulignant la limite de sa connaissance et de sa ferveur.
Le « baptême de Jean » fait référence au baptême de repentance proclamé par Jean-Baptiste. L’idée maîtresse en est la « metanoia », c’est-à-dire l’appel à se détourner du péché et à se repentir pour un renouvellement intérieur. Les Évangiles nous rappellent cependant que Jean-Baptiste a annoncé la venue de « Celui qui est plus puissant », qui baptiserait « du Saint-Esprit et de feu » (cf. Mt 3.11 ; Mc 1.7-8 ; Lc 3.16 ; Jn 1.26-27). Autrement dit, le baptême de Jean n’était pas une finalité mais une préparation. Bien qu’Apollos fût très engagé à enseigner sur Jésus en tant que Messie, il ne disposait pas d’une connaissance suffisante de la « réalité post-repentance », c’est-à-dire de la Croix, de la Résurrection, de l’habitation du Saint-Esprit et de la vie dynamique qui s’ensuit. Autrement dit, il annonçait la vérité sur Jésus mais ignorait en partie le chemin de la Croix ou la puissance du Saint-Esprit et la vie qui en découle.
Les personnes qui vont combler cette lacune chez Apollos sont Priscille et Aquilas. Anciens compagnons de Paul, ils avaient acquis une foi solide. Ils entendent Apollos parler dans la synagogue et le prennent avec eux pour lui « exposer plus exactement la voie de Dieu » (Ac 18.26). On peut se demander quel était le cœur de leur enseignement. Apollos était déjà au fait des prophéties de l’Ancien Testament, de la messianité de Jésus et de l’importance de la repentance. Ce dont il avait besoin, c’était certainement la compréhension « en profondeur » de l’œuvre expiatoire de Jésus-Christ, de sa mort et de sa résurrection, ainsi que le rôle concret du Saint-Esprit dans la vie du croyant. On pense généralement que l’expression « exposer plus exactement la voie de Dieu » inclut toute la portée du salut accompli par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du Christ, et la manière dont le Saint-Esprit opère dans la vie du croyant.
À ce propos, nous pouvons établir un lien avec la philosophie pastorale et l’enseignement de David Jang. Il insiste sur le fait que la foi chrétienne ne doit pas se réduire à la seule repentance ni à une connaissance intellectuelle ; la puissance de la Croix et de la Résurrection doit s’enraciner dans tous les domaines de l’existence. Par-dessus tout, il souligne que le véritable fruit de l’Évangile, c’est l’amour au sein de la communauté ecclésiale, l’esprit de service réciproque et la solidarité sur la voie parfois difficile du disciple. C’est précisément ce qu’ont fait Priscille et Aquilas avec Apollos : ils ne se sont pas contentés de compléter une théorie doctrinale, mais ont initié Apollos à « la totalité du message de l’Évangile », l’invitant ainsi à vivre réellement dans la Croix, la Résurrection et la communion du Saint-Esprit.
Dans la suite du texte (Ac 19.1s), Paul arrive à Éphèse et rencontre d’autres disciples qui n’avaient reçu que « le baptême de Jean » et qui déclarent même : « Nous n’avons pas même entendu dire qu’il y ait un Saint-Esprit » (Ac 19.2). La première question de Paul est : « Avez-vous reçu le Saint-Esprit quand vous avez cru ? » Eux, qui ne connaissaient que le baptême de Jean, n’avaient pas conscience de l’existence et de l’action du Saint-Esprit. Certes, ils reconnaissaient peut-être Jésus et la nécessité de la repentance, mais ils ignoraient qu’au cœur de l’Évangile se trouve la métamorphose du croyant en « nouvelle créature » par la présence du Saint-Esprit.
Paul leur demande : « De quel baptême avez-vous donc été baptisés ? » Et quand ils répondent : « Du baptême de Jean », Paul leur rappelle que « Jean-Baptiste annonçait clairement qu’il fallait croire en celui qui venait après lui, Jésus-Christ » (cf. Ac 19.4). Ensuite, il les baptise « au nom du Seigneur Jésus » et, leur ayant imposé les mains, ils reçoivent le Saint-Esprit, manifestant alors le parler en langues et le don de prophétie (Ac 19.5-6). C’est un moment charnière dans l’histoire de la progression de l’Église, souvent appelé « la Pentecôte d’Éphèse », qui fait écho au baptême du Saint-Esprit à la Pentecôte (Ac 2), en Samarie (Ac 8) et chez Corneille (Ac 10), étendant encore le témoignage du Saint-Esprit à la ville d’Éphèse.
Un point supplémentaire mérite d’être souligné : alors qu’Apollos quittait Éphèse pour Corinthe, Paul est arrivé plus tard à Éphèse et a complété ce qui manquait à la communauté demeurée au stade du « baptême de Jean ». Ainsi, on peut dire : « Apollos a enseigné avec ferveur Jésus-Christ et fortifié l’Église d’Éphèse, mais une certaine incomplétude subsistait ; c’est Paul qui est venu achever ce qui manquait. » Dans la première épître aux Corinthiens, on voit qu’Apollos eut ensuite une grande influence sur l’Église de Corinthe, à tel point qu’il se constitua des clans se réclamant de Paul ou d’Apollos (1 Co 1.12). Mais à l’origine, Apollos était dans l’ignorance, réduit au « seul baptême de Jean » ; grâce à Priscille, Aquilas, puis Paul, il a pu accéder au sens pleinement accompli de l’Évangile.
Ce processus recèle un message essentiel pour notre époque : l’incomplétude de la foi ne s’applique pas seulement aux personnes qui ne se sont jamais repenties. Beaucoup de chrétiens fervents, qui servent activement dans l’Église, sont riches d’une connaissance biblique et reconnaissent Jésus comme Messie, peuvent pourtant rester dans la dimension du « baptême de Jean ». Autrement dit, ils croient et se sont repentis, mais n’expérimentent pas dans leur vie « la puissance du baptême du Saint-Esprit », ni l’amour profond qui en découle.
Transposons cela au contexte ecclésial : nous voyons nombre de croyants ayant du zèle et une connaissance doctrinale, mais qui ne vivent pas pleinement la dynamique du Saint-Esprit dans la communauté. Ils n’arrivent pas non plus à manifester un amour réel pour leurs frères et sœurs, ni à poser des actes concrets pour partager l’amour de Jésus-Christ dans le monde. Cela rappelle la réprimande adressée à l’Église d’Éphèse dans l’Apocalypse (Ap 2) : « Tu as abandonné ton premier amour. » On se souvient que cette Église d’Éphèse avait bénéficié de l’enseignement approfondi de Paul pendant près de trois ans et qu’elle possédait un haut niveau théologique. Or on peut donc très bien avoir un haut niveau de connaissance tout en perdant l’amour véritable. Cette péricope nous lance un avertissement : il ne suffit pas de s’en tenir à la repentance ou à la connaissance intellectuelle ; il faut redécouvrir au quotidien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du Christ, et faire sans cesse l’expérience concrète du Saint-Esprit.
David Jang martèle que l’essence de l’Église est de constituer une « communauté de vie », et non de se limiter à des offices de culte et des cours de doctrine. L’Église doit être un « collectif de compagnons de route », partageant la charge de la Croix et se soutenant mutuellement, dans une forme concrète de vie commune. C’est cela aller au-delà du simple stade de la repentance (le « baptême de Jean ») pour vivre la vie de Jésus, pour incarner la Croix, la Résurrection et le Saint-Esprit. Le comportement de Priscille et d’Aquilas envers Apollos incarne bien cet amour fraternel. Sans doute voulaient-ils prévenir toute déviation doctrinale, mais ils ont aussi reconnu et salué le zèle d’Apollos, et lui ont communiqué « une vision plus complète de l’Évangile ». Apollos, dans son humilité, a accueilli cet enseignement. Par la suite, il est devenu, avec Paul et Pierre, l’un des principaux vecteurs de l’Évangile à Corinthe, bien plus puissant qu’il ne l’était quand il ne connaissait que le « baptême de Jean ».
De même, après avoir reçu le baptême du Saint-Esprit à Éphèse, ces disciples se mirent à parler en langues et à prophétiser, ce qui constitua une impulsion décisive pour l’Église locale. « Ils étaient environ douze hommes » (Ac 19.7) – détail fort symbolique. Cela évoque les Douze avec lesquels Jésus avait initialement inauguré sa communauté. C’est désormais à Éphèse, ville-clé d’Asie Mineure, qu’un nouveau départ s’opère par l’effusion du Saint-Esprit. Ces douze devenus le noyau de l’Église d’Éphèse, l’Évangile a rayonné progressivement dans toute la province d’Asie. David Jang part de ce modèle biblique pour insister sur la nécessité de « grandir dans l’Esprit » ; la repentance ne doit être qu’une étape, suivie d’un « saut qualitatif » dans la vie sous l’onction de l’Esprit. Alors, ces croyants remplis de l’Esprit peuvent sortir dans le monde pour y rendre témoignage à l’amour et la vérité de Jésus-Christ.
En définitive, toute cette dynamique illustre le principe suivant : « Quitter l’incomplétude du “baptême de Jean” pour passer à la plénitude de l’Évangile – la Croix, la Résurrection, l’habitation dynamique du Saint-Esprit. » On ne peut s’en tenir à la simple connaissance intellectuelle de l’identité de Jésus et à la repentance. Dans le récit, chaque personnage passe à la dimension de l’expérience de l’Esprit ; cet Esprit répand sa puissance et son amour dans toute la vie du croyant. Comme Priscille et Aquilas, comme Paul, ceux qui sont plus avancés ou appelés au pastorat ont pour vocation d’aider les croyants moins matures à grandir dans l’Esprit. David Jang met notamment l’accent sur une « vie de compagnonnage », où l’on ne se borne pas à transmettre un savoir, mais où l’on porte ensemble la souffrance, où l’on met en pratique l’amour et où l’on introduit dans une véritable expérience de l’Esprit.
Sur le plan pratique, si un croyant a une bonne connaissance biblique, s’engage généreusement dans le service et déclare avoir la foi, mais qu’on ne discerne pas en lui les « fruits de l’Esprit » (Ga 5.22-23) et que l’amour fraternel n’éclot pas concrètement, alors on peut suspecter qu’il soit encore dans la sphère du « baptême de Jean ». Dans ce cas, nous sommes appelés à ne pas le juger ou le réprimander, mais à l’approcher comme Priscille et Aquilas l’ont fait avec Apollos, pour « lui exposer plus exactement la voie de Dieu », l’accompagner, prier pour qu’il reçoive l’Esprit.
Le fait que l’Église d’Éphèse, ultérieurement, soit devenue un centre majeur (où Paul a longtemps séjourné) puis que l’apôtre Jean y ait également exercé son ministère, découle de cet événement-clé du « baptême du Saint-Esprit » décrit en Actes 19. Il a fourni la base spirituelle pour qu’Éphèse devienne une communauté forte et inspirante, à l’égal des autres Églises fondées par Paul. Parallèlement, l’Apocalypse (chap. 2) nous rappelle qu’une puissante expérience spirituelle, telle que ce baptême de l’Esprit, n’empêche pas l’amour de s’étioler avec le temps. Avoir un jour vécu une expérience intense ne préserve pas d’une foi qui se refroidit. C’est pourquoi David Jang exhorte les croyants à « demeurer constamment remplis de l’Esprit », à méditer et à pratiquer la Parole en permanence, et à mettre en œuvre un amour sacrificiel. L’actualité de l’avertissement est manifeste : la foi n’est pas définitivement acquise et l’on doit sans cesse veiller à son renouvellement.
En résumé, Apollos et les disciples d’Éphèse étaient initialement au stade du « baptême de Jean » : ils avaient la repentance et une certaine connaissance, mais ils n’avaient pas goûté à la « vie nouvelle dans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par le Saint-Esprit ». Lorsque Priscille et Aquilas, puis Paul, leur ont transmis ce qui leur manquait, ils sont devenus des acteurs majeurs dans l’implantation et le développement de l’Église (Apollos) ou encore le noyau fondateur de l’Église d’Éphèse (les douze disciples). De la même manière, l’Église contemporaine, si elle se limite à la repentance et à la connaissance doctrinale, reste insuffisante. Elle doit faire l’expérience concrète du Saint-Esprit et de l’amour qui l’accompagne. David Jang, qui prône la « compagnie concrète » et la « croissance de la communauté dans l’Esprit », applique à l’Église d’aujourd’hui le cœur de ce passage des Actes.
II. Le baptême du Saint-Esprit et la réalisation complète de l’Évangile : l’amour en communauté et l’application contemporaine selon David Jang
Comme nous l’avons vu à travers Apollos et les disciples d’Éphèse, la foi ne s’achève pas par une seule décision ou par la seule connaissance. C’est un chemin de croissance continue, et le « baptême du Saint-Esprit » joue un rôle décisif dans ce processus. Ce baptême ne se résume pas à la manifestation de « dons charismatiques » (langues, prophétie, etc.), mais concerne surtout « la capacité de vivre réellement l’amour et la vie du Christ ». Ainsi, quand Apollos a appris « plus exactement la voie de Dieu », il a pu ensuite, à Corinthe, seconder Paul avec force et devenir un collaborateur majeur dans l’édification de l’Église.
Aujourd’hui, beaucoup d’Églises parlent du Saint-Esprit mais, souvent, on tombe soit dans un excès de « signes charismatiques », soit, à l’inverse, dans une approche purement théologique ou intellectuelle où l’on ne fait pas l’expérience concrète de la puissance de l’Esprit dans la vie quotidienne. Dans les Actes, la véritable expérience du Saint-Esprit découle de la repentance et du pardon des péchés par le nom de Jésus, et se manifeste au sein de la communauté sous forme d’amour et d’unité. Si la repentance purifie l’âme et fait entrer le croyant dans le salut de Jésus, le baptême du Saint-Esprit, lui, fait naître dans l’Église un amour vivant et une communion qui exprime pleinement le corps du Christ.
Le ministère de David Jang présente, à cet égard, des caractéristiques dont l’Église peut s’inspirer. Dans son action pastorale, il ne veut pas que l’expérience du Saint-Esprit se réduise à « un phénomène charismatique ponctuel », mais désire qu’elle se transforme en « conversion véritable et en parcours de disciple durable ». Ainsi, si quelqu’un reçoit le don de parler en langues, il s’agit non pas d’en tirer gloriole ou de se sentir supérieur, mais d’exercer ce don dans l’humilité pour servir la communauté et témoigner de l’amour. C’est le message central de 1 Corinthiens 13 : « Quand je parlerais les langues des hommes et des anges, si je n’ai pas l’amour, je ne suis qu’un cuivre qui résonne ou une cymbale qui retentit » (1 Co 13.1). En effet, l’histoire nous enseigne que si la foi se limite à la connaissance intellectuelle ou à un bref emballement charismatique, cela produit souvent divisions et querelles dans l’Église.
Concrètement, on observe souvent que ceux qui ont de grandes connaissances ou des expériences spirituelles fortes sont tentés de s’élever au-dessus des autres ou d’imposer leur vision. C’est précisément le signe d’une « foi incomplète », demeurée au stade du « baptême de Jean ». Car même si la ferveur et la connaissance paraissent importantes, ce qui manque, c’est l’amour sacrificial engendré par le Saint-Esprit. Ces personnes ont donc besoin de quelqu’un qui s’approche d’elles comme Priscille et Aquilas ou Paul, pour « leur enseigner plus précisément la voie de Dieu » et les conduire sur un chemin d’humilité et d’amour. Or bien des Églises sont dépourvues de ce discernement pastoral et d’un encadrement pastoral de proximité, et aboutissent à des tensions ou même des schismes.
David Jang, mettant l’accent sur la « dimension communautaire » de la vie en Christ, rejoint cette approche de Priscille et Aquilas : la foi n’est pas une affaire de relation purement individuelle avec Dieu, mais une marche collective où l’on partage peines et joies, où l’on grandit ensemble. Paul, dans sa métaphore du corps (1 Co 12.26), exprime qu’« si un membre souffre, tous souffrent avec lui ; si un membre est à l’honneur, tous se réjouissent avec lui ». Cela reflète l’amour sacrificiel du Christ, celui qui s’est exprimé à la Croix. Quand l’Église, en tant que corps du Christ, vit unie par l’Esprit, les dons charismatiques ne deviennent plus facteurs de discorde, mais instruments pour édifier la communauté et témoigner avec puissance dans le monde.
David Jang fait en outre le constat suivant : les divisions dans l’Église proviennent souvent du fait que « la plénitude de l’Esprit reste cantonnée à la connaissance ou à des expériences individuelles, sans déboucher sur l’amour concret ». C’est la même problématique que soulignent les Actes 18-19. Apollos et les disciples d’Éphèse avaient la ferveur et la repentance, mais ils ignoraient l’action du Saint-Esprit, qui transforme radicalement la vie et apporte l’amour fraternel. C’est pourquoi l’arrivée de Paul, Priscille et Aquilas a tout changé. De nos jours, il existe pareillement des Églises centrées sur la connaissance ou des communautés exaltant les manifestations de l’Esprit, sans amour. L’enjeu est de « réunir » ces deux aspects dans leur juste perspective, en les orientant vers l’amour fraternel et la construction de l’Église.
La foi authentiquement complétée ne se limite jamais à la sphère individuelle. Comme on le voit à Éphèse, les douze disciples baptisés du Saint-Esprit deviennent, en très petit nombre, un noyau à partir duquel l’Église rayonne ; Apollos, lui, deviendra un puissant prédicateur à Corinthe, collaborant avec Paul et Pierre à l’édification de l’Église dans un esprit d’unité. Ici, la croissance de l’Église n’est pas qu’une question de statistiques ou de construction d’édifices. Paul l’exprime ainsi : « Jusqu’à ce que nous soyons tous parvenus à l’unité de la foi et de la connaissance du Fils de Dieu, à l’état d’homme fait, à la mesure de la stature parfaite de Christ » (Ep 4.13). C’est la maturité spirituelle qui importe. C’est l’amour du Christ, répandu en nous par l’Esprit, qui est la véritable source de l’édification ecclésiale. C’est là, selon le texte des Actes, le point central : la plénitude de l’Esprit mène à la communion et au témoignage vivant dans le monde.
Pour David Jang, si l’on parle de croissance et de vitalité de l’Église, c’est précisément « l’œuvre du Saint-Esprit et le réseau d’amour entre les croyants » qui en est la clé. C’est un écho direct à l’esprit des Actes, où l’on voit une Église florissante sans ressources matérielles importantes ni structures élaborées. L’onction de l’Esprit et l’amour issu de la Croix constituaient leur socle. Souvent, dans nos Églises, le service ou l’engagement est vécu comme un devoir ou une contrainte. Mais là où l’amour de l’Esprit abonde, les chrétiens s’investissent spontanément et joyeusement pour la communauté et la mission dans le monde. C’est le signe qu’on a dépassé le stade du « baptême de Jean » pour entrer dans le « baptême de l’Esprit ».
Prenons un cas concret : un croyant qui a commencé sa vie de foi par un sentiment de culpabilité et une repentance sincère mais qui, n’ayant pas connu la présence dynamique du Saint-Esprit, ne parvient pas à aller plus loin. Pour qu’il fasse l’expérience de la joie et de l’amour, il faut des compagnons de route, des « mentors » à la Priscille et Aquilas, un pasteur comme Paul, qui lui enseignent, prient avec lui, stimulent sa foi, jusqu’à ce que le Saint-Esprit l’investisse d’une force transformatrice. C’est là le rôle essentiel de l’Église : une communauté qui « nourrit » et « fait grandir » la foi de chacun. Faute de cela, nombreux sont ceux qui se contentent d’une vie chrétienne superficielle, voire finissent par s’épuiser ou s’égarer. David Jang parle d’un « pastorat qui fait vivre et grandir les âmes », insistant sur le fait que l’Église n’a pas d’autre mission que de transmettre la vie de l’Esprit et de former des disciples qui vivent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dans le concret.
Le détail d’Actes 19.7, « Il y avait environ douze hommes », symbolise que « même peu nombreux, quand certains ont fait l’expérience complète de l’Évangile, ils forment déjà une Église, et c’est de là que peut se répandre la grande œuvre de Dieu ». À partir de ce petit groupe, Éphèse va devenir le pivot de l’évangélisation de l’Asie Mineure et le lieu central du ministère de Paul. Aujourd’hui encore, quand on implante une Église ou que l’on attend un renouveau spirituel, l’essentiel n’est pas le nombre ou l’ampleur matérielle, mais la présence d’un « petit noyau rempli de l’Esprit ». C’est ce que répète David Jang : lorsqu’il démarre une nouvelle mission ou un nouveau ministère, il ne se préoccupe pas d’emblée de l’infrastructure ou de la grandeur visible, mais recherche « les personnes qui ont authentiquement fait l’expérience du Saint-Esprit et saisi la vision de Dieu ». C’est en phase avec le modèle biblique d’implantation d’Église que nous voyons dans les Actes.
En définitive, le passage d’Actes 18.24-19.7 illustre parfaitement le passage de « l’incomplétude » symbolisée par le « baptême de Jean » à la « plénitude » représentée par le « baptême du Saint-Esprit ». Apollos, si brillant qu’il fût, n’en était pas moins réduit, tant qu’il n’avait pas été instruit plus précisément dans l’Évangile de la Croix et de la Résurrection. Les douze d’Éphèse ne savaient même pas qu’il y avait un Saint-Esprit, continuant à vivre une repentance sans accéder à la plénitude du salut. Lorsque, sous l’action de Priscille et Aquilas, puis de Paul, ils reçurent le baptême du Saint-Esprit, ils devinrent de vaillants ouvriers pour le Royaume. Cette effusion de l’Esprit à Éphèse constitua un événement majeur pour l’histoire de l’Église, tout comme Apollos joua un rôle décisif à Corinthe.
Transposé à l’Église d’aujourd’hui : notre risque est de rester à la seule repentance, à la connaissance scripturaire ou doctrinale, en négligeant de chercher l’effusion quotidienne de l’Esprit et la mise en pratique de l’amour. À cet égard, David Jang pousse constamment l’Église à devenir « un lieu où l’on expérimente l’Esprit ensemble, où l’on pratique l’amour à la manière de la Croix ». Il ne se limite pas à « Recevez l’Esprit » ou « Repentez-vous », mais insiste pour que nous partagions la Parole, passions du temps ensemble, portions les fardeaux collectivement. Cela actualise dans l’Église moderne ce qui s’est produit dans les Actes, offrant un cadre pour renouveler l’expérience de la Pentecôte d’Éphèse et former, comme Apollos, des disciples qui progressent d’une foi incomplète à la puissance de l’Esprit.
Bien sûr, nous devons rester vigilants. Malgré une expérience puissante, l’Église d’Éphèse a fini par perdre son premier amour (Ap 2). Cela montre qu’aucune expérience charismatique ni aucune compréhension intellectuelle, si forte soit-elle, ne nous garantit à jamais une foi fervente. Il nous faut une communion quotidienne avec la Parole et la prière, une dépendance continuelle à l’Esprit, et une pratique renouvelée de l’amour fraternel. Comme David Jang l’enseigne, « être rempli sans cesse du Saint-Esprit, méditer et appliquer la Parole, exercer un amour humble et sacrificiel » constitue la réponse au risque de l’essoufflement spirituel.
Ainsi, tout comme Priscille et Aquilas pour Apollos, et Paul pour les disciples d’Éphèse, l’Église doit assurer une forme d’accompagnement spirituel pour que nul ne reste au stade inachevé du « baptême de Jean ». Ce n’est pas le rôle d’une élite pastorale seule, mais de chaque croyant mûr, qui doit prendre soin de son frère ou de sa sœur. L’exemple pastoral de David Jang montre la vitalité qu’une telle sollicitude peut insuffler à une communauté : l’Église devient alors un foyer de vie spirituelle intense, qui agit au-dehors.
Ce récit des Actes démontre que « le chemin d’une foi incomplète vers une foi accomplie » passe par « la repentance d’abord, puis par l’expérience du Saint-Esprit ». On peut être investi de ferveur et de connaissance mais, sans le baptême de l’Esprit, on ne parviendra pas à l’amour et à la dynamique de la Croix. En revanche, quand l’Esprit agit, la vie des croyants en est bouleversée, et l’Église est édifiée sur des fondements solides pour rayonner dans le monde. C’est justement ce principe néotestamentaire que David Jang s’efforce d’incarner dans le contexte contemporain, en insistant à la fois sur « la formation d’une communauté unie par l’Esprit » et sur « la mise en pratique de l’amour du Christ ».
Enfin, nous devons sans cesse nous questionner à la lumière de l’exemple d’Apollos : « Suis-je vraiment passé de la simple repentance et d’une connaissance intellectuelle à une participation pleine et entière à la vie de la Croix et de la Résurrection ? Vis-je effectivement la plénitude du Saint-Esprit, au point de servir mes frères et sœurs et de témoigner dans le monde ? » « Mon amour pour les autres s’exprime-t-il concrètement, ou bien ma foi n’est-elle plus qu’une théorie ou un souvenir ancien ? » Le texte nous invite à ce constant réexamen. Si nous nous sentons encore « incomplets », alors, à l’exemple d’Apollos recevant l’aide de Priscille et Aquilas, ou des disciples d’Éphèse recevant celle de Paul, nous devons rechercher ce compagnonnage spirituel, solliciter des pasteurs et des mentors, et par-dessus tout aspirer ardemment au Saint-Esprit dans la prière.
L’Église doit être une « famille spirituelle » qui corrige ensemble ses manques et progresse vers la plénitude. Les plus mûrs doivent accompagner les moins avancés vers la maturité de l’Esprit ; ceux qui ont reçu déjà une forte effusion doivent faire preuve d’humilité et servir l’ensemble du corps, transmettant « l’Évangile plus précisément ». C’est ainsi que David Jang définit le « discipolat de compagnonnage » : non pas un simple transfert de connaissances, mais une mise en route commune dans l’amour et l’expérience de l’Esprit.
N’oublions pas qu’Apollos et les disciples d’Éphèse reconnaissaient Jésus comme Messie et avaient une certaine ferveur, mais que l’absence du Saint-Esprit les laissait sans la plénitude de la vie chrétienne. Seule la venue de l’Esprit permet le déploiement de l’amour, du sacrifice de soi, et d’une vie conforme à la Croix. C’est le saut essentiel d’une « repentance intellectuelle » à une « vie transformée ». Actes 19 nous le rappelle à travers la question incisive de Paul : « Avez-vous reçu le Saint-Esprit quand vous avez cru ? » Nombre de croyants de nos jours pourraient répondre, hélas : « Nous n’avions pas entendu parler d’un Esprit qui change concrètement la vie. » Mais le récit indique la voie à suivre : « Recevoir un enseignement plus approfondi, être baptisé au nom de Jésus, accueillir le Saint-Esprit ». Alors survient le fruit de l’Esprit, non seulement sous forme de dons surnaturels, mais, plus profondément, sous la forme de l’amour, du service humble et du témoignage dans le monde.
Dans l’expérience pastorale de David Jang, certains reçoivent d’emblée une puissante onction de l’Esprit, d’autres cheminent plus longtemps. Mais dans tous les cas, l’objectif est identique : former des « disciples vivant l’Évangile dans la force de la Croix et de la Résurrection, grâce à l’onction du Saint-Esprit ». Ensemble, ils forment une communauté d’amour, s’édifiant mutuellement et irradiant la lumière de Christ dans le monde. On retrouve là l’exemple même de la relation entre Apollos, Priscille et Aquilas, Paul et les disciples d’Éphèse. Certains ont un rôle de transmission, d’autres d’apprentissage, mais tous collaborent sous la souveraineté de Dieu à l’élargissement du Royaume.
Le message clé de ce passage est donc : « Ne restez pas à la foi incomplète. Passez du baptême de Jean au baptême du Saint-Esprit. » Connaître Jésus intellectuellement et se repentir, c’est nécessaire mais pas suffisant pour laisser éclore la puissance de l’Évangile dans toute son ampleur. Le Saint-Esprit, nous plongeant dans la mort et la résurrection du Christ, actualise la foi dans la vie quotidienne, créant un élan d’amour et de service au sein de l’Église et au-delà. Et c’est cette réalité biblique que David Jang propose à l’Église d’aujourd’hui en guise de défi : « Redevenez une communauté conduite par l’Esprit et pratiquant l’amour de la Croix. »
La question demeure pour nous tous : « Quand vous avez cru, avez-vous reçu le Saint-Esprit ? » Si certains admettent qu’ils n’avaient pas réellement conscience de l’Esprit et constatent qu’ils manquent d’amour ou provoquent des divisions, ou s’ils ne connaissent la puissance de Dieu que de manière théorique, cette péricope offre une orientation limpide : « Approfondissez la voie de Dieu, recevez le baptême au nom de Jésus, désirez ardemment l’Esprit. » Alors, nous pourrons, à l’exemple d’Apollos, devenir des témoins efficaces, et à l’exemple des disciples d’Éphèse, constituer un point de départ pour de nouvelles communautés rayonnantes. Comme le répète David Jang, ce n’est qu’en devenant « famille spirituelle, riche de vie » que l’Église se déploie vraiment.
Ainsi, Actes 18.24-19.7 nous adresse cet appel pressant : « Sortez de l’incomplétude et entrez dans la plénitude. » Pour Apollos et les disciples d’Éphèse, le manque de connaissance ou l’ignorance de l’Esprit a été comblé grâce à des frères et sœurs plus avancés qui les ont accompagnés. Une fois baptisés du Saint-Esprit, ils ont pu servir avec une puissance nouvelle et étendre le règne de Dieu. Pour notre part, nous risquons de nous contenter d’un enthousiasme initial, d’une ferveur doctrinale ou d’une simple repentance. Mais la Parole nous exhorte à ne cesser de chercher l’onction de l’Esprit, sans quoi nous risquons, comme l’Église d’Éphèse, de perdre notre premier amour. Que cet avertissement nous pousse à la prière et à la vigilance, dans la fidélité à la Croix.
David Jang souligne sans relâche : « Une Église qui marche avec l’Esprit et qui met en pratique l’amour de la Croix » – voilà la vision qui doit ranimer l’âme de l’Église contemporaine. Là où se rallume le feu de l’Esprit, on retrouve le zèle et la consécration de l’Église primitive. Apollos et les disciples d’Éphèse nous lancent un puissant défi : « Ne restez pas au baptême de Jean. Accédez au baptême de l’Esprit. » C’est en effet le message qu’Actes 18.24-19.7 grave dans nos cœurs, et c’est aussi le défi que le pasteur David Jang propose aujourd’hui à l’Église.
The following text aims to examine the process by which our faith moves from an incomplete state to a complete one, based on the account of Apollos and the Ephesian church described in Acts 18:24–19:7, as expounded by Pastor David Jang. Through the biblical passage, we see how the “baptism of John,” symbolizing incomplete faith, transitions into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which represents a more complete faith. Building on an understanding of this passage, we will explore what posture and attitude churches and believers today must adopt to fully grasp the completeness of the gospel. We will also consider what Pastor David Jang’s ministry, teachings, and pastoral practice suggest for that journey.
In the first half of this study, we will look at Apollos’s incomplete faith, how he learned “a more accurate way” through Priscilla and Aquila, and what lay at the root of the problem of the Ephesian disciples who had received only John’s baptism. In the second half, we will delve into how a new phase of “baptism in the Holy Spirit” opened up and how today’s church can apply that event, connecting it with Pastor David Jang’s pastoral direction. By following the background of these individuals in the text—their regional and historical circumstances, as well as their progress toward spiritual maturity—we, too, can reflect on whether our present faith remains incomplete and how we might experience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 in our actual, daily lives.
I. Apollos’s Incomplete Faith and the Ephesian Disciples’ Baptism of John: From Repentance to Love, From Knowledge to Life
Starting in Acts 18:24, we encounter a man named “Apollos,” a Jewish man from Alexandria. He is introduced as someone “well-versed in the Scriptures” and an eloquent speaker (Acts 18:24). Alexandria was famous for its rich intellectual and academic atmosphere at the time, and the fact that Apollos hailed from there, armed with a scholarly and philosophical background, is reflected by the phrase “well-versed in the Scriptures” or “a learned man” in the text. He fervently taught in the synagogue, testifying that Jesus was the Messiah; indeed, he was so knowledgeable and articulate that he made a significant impact on others. However, Scripture also points out his limitation by stating that he “knew only the baptism of John” (Acts 18:25).
The phrase “baptism of John” refers to the baptism of repentance proclaimed by John the Baptist. The core of this baptism was “turning back” (metanoia) from sin and renewing one’s heart through repentance. Yet, as the Gospels attest, John the Baptist foretold that “someone more powerful than I will come;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 (cf. Matt. 3:11; Mark 1:7–8; Luke 3:16; John 1:26–27). In other words, John’s baptism was not the final destination but rather provisional and preparatory. Apollos, therefore, even though he fervently taught about Jesus, remained at the level of “the world after repentance”—that is, he had not fully grasped the stage that entails the cross and resurrection, the indwelling Holy Spirit, and the dynamic life that flows from it. He had extensive knowledge about Jesus, but his understanding of the way of the cross or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seems to have been lacking.
It was Priscilla and Aquila who supplemented this incompleteness. This married couple had served alongside Paul and received in-depth teaching. While they were in Ephesus, they heard Apollos speak in the synagogue, took him aside, and “explained to him the way of God more accurately” (Acts 18:26). What was the core content that Priscilla and Aquila passed on to him? Since Apollos already knew the Old Testament, recognized that Jesus was the Messiah, and understood the importance of repentance and turning back, the new teaching he needed was undoubtedly “the depth of the gospel completed by the cross and resurrection, and the dimension of life lived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Many interpret the phrase “explained to him the way of God more accurately” as implying a deeper, concrete understanding of Christ’s atoning work, His death and resurrection, and how the Holy Spirit operates in the Christian’s daily life.
It is at this point that we can consider how Pastor David Jang’s pastoral philosophy and ministry teachings connect with this biblical account. Pastor David Jang has consistently emphasized that the Christian faith should not end with repentance and intellectual insight alone, but must take root in every area of one’s daily life through the power of the cross and the resurrection. Above all, he insists that believers in the church community must practice love, serve one another, and walk together along difficult paths—these, he says, are the true fruits of the gospel. This is deeply aligned with the way Priscilla and Aquila helped and strengthened Apollos. They did not merely “teach him doctrine he didn’t know,” but they conveyed the “full scope of the gospel” and invited him into the reality of life with the cross, the resurrection, and walking with the Holy Spirit.
Immediately after the story of Apollos, in Acts 19:1 and onward, Paul arrives in Ephesus and encounters another group of disciples who had only received “John’s baptism” and respond that they “have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Acts 19:2). The first thing Paul checks is whether they “received the Holy Spirit when they believed,” but because they only knew John’s baptism, they had never experienced the Holy Spirit’s presence or work. It is likely they had accepted Jesus’ identity and the need for repentance, but they did not know that the gospel is ultimately consummated by “the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 and the transformation into a “new creation.”
Paul, therefore, asks, “Into what then were you baptized?” Realizing they had only received John’s baptism, he underscores that “John also made it clear that people should believe in Jesus Christ, who was to come after him” (Acts 19:4). Then, after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he lays hands on them and prays for them to receive the Holy Spirit. Scripture then records that they spoke in tongues and prophesied (Acts 19:5–6). Just as the Holy Spirit descended at Pentecost upon the Jews, and later upon the Samaritans and the Gentiles (Acts 2, Acts 8, Acts 10, etc.), this event—the so-called “Ephesian outpouring of the Holy Spirit”—became another pivotal landmark in the church’s expansion.
We discover another vital point here. Apollos left Ephesus and traveled to Corinth, while Paul arrived later in Ephesus and met these disciples of John. Paul then led them into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We might say that “although Apollos enthusiastically taught about Jesus Christ and, through him, the church in Ephesus was strengthened, there was still an incomplete aspect that Paul eventually came to fill.” In 1 Corinthians, we learn that Apollos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Corinthian church as well—so much so that the congregation was divided into parties saying, “I follow Paul,” “I follow Apollos,” “I follow Cephas” (1 Cor. 1:12). Yet he had initially been in an “incomplete state of only knowing the baptism of John,” and through Priscilla, Aquila, and later Paul, he gradually came to a fuller understanding of the gospel. That is precisely what we see in the text.
This process carries crucial, practical implications for us even today. Incomplete faith does not apply only to “those who have never repented.” One can be active in ministry within the church, possess a wealth of biblical knowledge, and even confess that Jesus is the Christ, yet still remain at the level of “John’s baptism.” In other words, someone may intellectually believe in Jesus and claim to have repented, but remain stagnant in the daily reality of “the deep power and true love offered by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If we apply this to the everyday church context, we can see that many believers have significant zeal for their faith and a sound grasp of doctrine, but fail to experience the Holy Spirit’s vibrant work within their congregation or to demonstrate concrete acts of love toward their fellow believers and the world. This is strikingly similar to the “Ephesus church that lost its first love” (Revelation 2). What is particularly noteworthy is that the Ephesian church had a high level of theological and doctrinal teaching—Paul had taught there personally for three years—yet it was still rebuked for “abandoning its first love.” One can have advanced doctrinal knowledge and still allow love to grow cold. Ultimately, the message at the heart of this passage is that we must not be content with doctrinal knowledge or a singular repentance experience; we must continually reaffirm the love of the cross and the resurrection in our daily lives and constantly seek fresh experiences of the Holy Spirit’s work.
Pastor David Jang repeatedly emphasizes that the essence of the church is to “form a community of life,” pointing out that the church is not merely a place where people gather in a building to worship and learn doctrine. Rather, it must become a true “journeying community” that intervenes in each other’s lives, meets one another’s needs, and walks together the path Jesus himself took on the cross. This moves beyond the level of “John’s baptism”—repentance and the assurance of salvation—into a lived experience of Jesus’ life shared with others.
Priscilla and Aquila’s act of taking Apollos aside to “explain the way of God more accurately” can be regarded as an expression of deep love. While they likely wanted to prevent Apollos from spreading incomplete teaching, they also wanted to affirm his zeal and offer “the more complete gospel” in an attitude of love, care, and communal solidarity. Apollos humbly accepted it, ultimately serving the church in Corinth alongside Paul and Peter with significant influence. Once Apollos experienced the “true power of the gospel,” he was able to preach the Lord’s way so effectively that his earlier “knowledge of only John’s baptism” paled in comparison.
Likewise, after receiving the Holy Spirit, the Ephesian disciples—upon whom “tongues” and “prophecy” came—reinvigorated the local church. Acts notes that there were “about twelve of them in all” (Acts 19:7). This number is symbolic: just as Jesus launched a new community movement with His twelve disciples, so too here in Ephesus, a key city in Asia Minor, a renewed movement began with the Holy Spirit’s presence. These twelve people became the base on which the Ephesian church was built and from which the gospel gradually spread throughout Asia. In the same biblical model, Pastor David Jang emphasizes “growth in the Holy Spirit,” urging Christians to move beyond mere “repentance” and to take a leap into “a life anointed by the Holy Spirit.” When believers becom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they actively go out into the world to demonstrate the love and truth of Jesus Christ.
Putting it all together, the main takeaway is that “we must move beyond the incomplete state represented by John’s baptism and into the complete gospel of the cross, resurrection, and the indwelling power of the Holy Spirit.” This goes beyond intellectually recognizing who Jesus Christ is or simply repenting. The figures in this biblical story participated in actual life, experiencing the power and love that the Holy Spirit’s baptism brings. Just as Priscilla and Aquila took Apollos “aside” and taught him, mature believers and pastors in the church must carefully look after those with incomplete faith and guide them into maturity in the Holy Spirit. Pastor David Jang’s concept of “companion-based discipleship” underscores precisely such an approach: not merely transferring knowledge but walking alongside believers, sharing in suffering, practicing love, and providing spaces where people can encounter the Holy Spirit.
In practical terms, if someone in the church is biblically knowledgeable and actively serves in worship, yet does not manifest the fruit of the Holy Spirit (Gal. 5:22–23) in their life or reveal sincere love toward fellow believers, we can say they remain at the level of “John’s baptism.” What we need in that situation is not scolding or condemnation but, like Priscilla and Aquila, “a more accurate expounding of God’s way” through practical teaching, care, and prayerful waiting for the Holy Spirit’s presence together.
The Ephesian church continued to hold great significance following the events in Acts. It became a long-term ministry hub for Paul, and later even served as a field of ministry for the Apostle John. The crucial turning point was precisely this “experience of the Holy Spirit” described in Acts 19. Similar to other churches Paul founded, the “Ephesian outpouring of the Holy Spirit” served as the bedrock for establishing a powerful and loving community in Ephesus. However, Revelation 2 shows us that despite their powerful initial experience of the Holy Spirit, the Ephesians eventually allowed their passion and love to cool. This warns us that no single “intense experience” or “intellectual grasp” can guarantee perpetual spiritual vitality. Pastor David Jang emphasizes “continuous filling of the Holy Spirit,” “unceasing meditation and application of the Word,” and “practical action grounded in sacrificial love.” Considering the biblical precedent, we recognize how crucial ongoing spiritual nurture and repeated experiences of the Spirit truly are.
Summarizing: Apollos and the Ephesian disciples initially “knew only John’s baptism,” so they may have been full of fervor and knowledge in certain respects, but they had not yet experienced “the new life of the cross, resurrection, and the Holy Spirit.” Once this deficiency was addressed—by Priscilla and Aquila, and by Paul—these figures were transformed into powerful gospel workers (in Apollos’s case) or became the foundational members (in the case of the twelve disciples) who provided tremendous benefits to the church. Today’s church, likewise, must not settle for mere repentance or doctrinal knowledge alone. Scripture insists we must follow up with actual experiences of the Holy Spirit and a life of active love. Pastor David Jang’s emphasis on “practical fellowship” and “church growth through experiencing the Holy Spirit” represents a very concrete modern application of the essence of this passage in the Book of Acts.
II.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and the Actualization of the Complete Gospel: Communal Love and Pastor David Jang’s Contemporary Application
As the examples of Apollos and the Ephesian disciples demonstrate, faith is never finalized by a single decision or intellectual understanding. Rather, it proceeds through a continual process of growth, in which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plays a decisive role. This baptism, however, is not limited to charismatic phenomena such as “speaking in tongues or prophesying,” but more broadly refers to “the spiritual power that enables believers to truly live out Christ’s love.” After Apollos “learned the way of God more accurately,” he became a powerful coworker with Paul in establishing the Corinthian church. Likewise, a believer who has experienced the Spirit moves beyond merely “repentance and head knowledge” and gains the courage to walk down even the arduous path of the cross.
Many churches today speak of the Holy Spirit. However, they sometimes overemphasize the phenomena of spiritual gifts or else interpret every work of the Spirit purely in theological or intellectual terms, failing to leave room for actual spiritual experience in daily life. According to the account in the Book of Acts, authentic Holy Spirit experience emerges from “repentance and the forgiveness of sins in Jesus’ name,” and then flows into the unifying love of the church community. If repentance purifies the individual soul and grants participation in Jesus’ redemption,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ultimately yields “the unifying practice of love” within the body of Christ.
Pastor David Jang’s ministry has noteworthy features in this respect. His aim in pastoral settings is to ensure that believers do not reduce their spiritual experience merely to “charismatic expressions,” but rather extend it into “genuine conversion and a continual walk of discipleship.” For instance, if someone receives the gift of tongues, they should not use that as a basis for boasting or assume a sense of superiority. Instead, it must serve as a source of love that fosters humility and strengthens the church community. This resonates with the core theme of 1 Corinthians 13, the “Love Chapter”: “If I speak in the tongues of men or of angels, but do not have love, I am only a resounding gong or a clanging cymbal” (1 Cor. 13:1). If faith is nothing more than intellectual knowledge or momentary spiritual experiences, it often leads to conflict and splits in the church—something plainly visible throughout church history and in modern congregations.
In real church life, individuals with abundant theological knowledge or frequent experiences of spiritual gifts sometimes fail to show deeper love, humility, or readiness to serve. In fact, they can become proud or adopt an attitude of instructing others. This is precisely the sort of “incomplete faith that remains at John’s baptism,” as described in the text. Outwardly, such persons may display fervor and learning, but they lack the “cruciform love, self-emptying, and humility that respects fellow believers and builds up the church”—all of which the Holy Spirit produces. People like this need the personal care that Priscilla, Aquila, or Paul modeled when they “took them aside and explained God’s way more accurately.” Tragically, many churches fail to provide this sort of attentive pastoral care or spiritual mentoring, leading to internal strife or even splits.
One particularly relevant aspect of Pastor David Jang’s ministry is his strong emphasis on “community.” This parallels how Priscilla and Aquila cared for Apollos. Church faith, he says, should not be about “lone ranger Christianity” but rather about “journeying together through suffering and joy, growing collectively in faith.” The Apostle Paul’s “body” metaphor likewise states, “If one member suffers, all suffer together; if one member is honored, all rejoice together” (1 Cor. 12:26). This reiterates the “self-sacrificial love” exemplified by Jesus on the cross, embodied in the church community. When the church is united with Christ as its head, the gifts of the Holy Spirit become a resource for building up and unifying believers, rather than a cause of division, demonstrating the power of the gospel to the world.
Pastor David Jang identifies the root cause of many church conflicts and divisions as “a lack of genuine Holy Spirit fullness that leads to love,” attributing much discord to believers remaining stuck in a knowledge- or repentance-only mode, or perhaps misusing spiritual gifts without love. This insight mirrors the lessons of Acts 18–19: although Apollos and the Ephesian disciples had “zeal” and “repentance,” they needed proper understanding of the Holy Spirit to serve effectively in love and fully deploy the gospel’s power. With Paul or Priscilla and Aquila’s arrival, they received “a more accurate gospel,” were baptized in the Holy Spirit, and their lives were transformed from the ground up. The same dynamic applies to the contemporary church: we see “knowledge without practice,” “experience without love,” or an overemphasis on “gifts without service” hindering its spiritual health. What we truly need is someone who can “integrate” knowledge and experience, channeling them “toward the right purpose” through careful instruction and care.
Once the gospel is complete in that sense, our faith cannot remain individualistic. Those who discover the true gospel, like the twelve disciples in Ephesus, lay a firm foundation for the local church. Those like Apollos, once incomplete but now filled by the Spirit, become a mighty force for unity and growth, not division. Here, “growth” does not simply mean an increase in numbers. It refers to the “inner, spiritual growth” described by Paul: “We all reach unity in the faith and in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and become mature, attaining to the whole measure of the fullness of Christ” (Eph. 4:13). A larger membership might follow, but the true engine of the church’s growth is the power of the Spirit expressed in love. This is the core message of the text.
Pastor David Jang likewise speaks of church growth and revival. Yet the foundation, he emphasizes, lies in “the work of the Holy Spirit and the network of love among believers.” This aligns with the spirit of the Book of Acts: in every facet of ministry, we must “rely on the Spirit,” and that dependence must “manifest in loving one another and building up the community.” Sometimes believers consider church work and ministry as mere “duties” or “obligations,” forced upon them. But when one genuinely experiences the Holy Spirit’s overflowing love, they take delight in service, willingly extending their hands to help the community and the world. This is the condition in which believers have moved beyond the “level of John’s baptism” into the experience of the “Holy Spirit’s baptism.”
Imagine a believer who first approached church out of a sense of guilt, repented, and started a life of faith. To move into the dimension of “the true joy of the gospel, love for the community, and service to fellow believers,” that person needs mentors like Priscilla and Aquila or pastors like Paul—people to guide them, pray with them, and provide spiritual counsel. That is precisely the church’s responsibility and calling. Without such holistic, personal attention, the believer may remain stuck at the level of John’s baptism, constantly repenting but never progressing, or reduced to a purely intellectual, formal type of faith. Pastor David Jang’s emphasis on “nurturing and raising souls” stems from awareness of this sobering reality. The church, he insists, should not just focus on increasing attendance or erecting large buildings, but rather “leading each person to encounter the Holy Spirit and Christ’s love in a living community,” where they may share it with others.
Acts 19 mentions that there were “about twelve men in all” (Acts 19:7). That figure symbolizes how even “a small number of people who grasp the complete gospel can become the church, and from there God’s remarkable work expands.” The number twelve evokes the Twelve Disciples of Jesus, the twelve tribes of Israel, and suggests “the beginning of a new movement of God’s kingdom.” Given Ephesus eventually became the strategic hub of evangelizing Asia Minor—and Paul’s central base of ministry—this “baptism in the Holy Spirit” for the twelve was more than just a personal conversion experience; it was a major turning point in church history.
Likewise, when a new local church starts out, or an existing congregation seeks revival or a new direction, it does not necessarily need vast resources or large numbers. The presence of a “Spirit-filled remnant” is enough to birth a genuine revival. Pastor David Jang, when pioneering any new ministry, places less emphasis on size or grandeur and more on whether there are “people who truly hold to God’s vision, who have experienced the Holy Spirit.” This echoes the church-planting and church-growth principles illustrated in Acts.
In summary, the biblical passage in Acts 18:24–19:7 reveals how the shift from the incomplete “baptism of John” to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can become the driving force for building up the church. Even such a capable figure as Apollos remained in a state of “incomplete faith” until he came to “know the way of God more accurately.” Likewise, the twelve disciples in Ephesus “had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though they had accepted repentance and knowledge of Jesus. Through the care of Priscilla and Aquila, and through Paul’s ministry, they received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manifested gifts such as speaking in tongues and prophecy, and became a great blessing to the church. This event was closely linked to the historical unfolding of the Ephesian church and, further, to the growth of the Corinthian church.
Shifting our perspective to the modern church, the same pitfalls remain. We too easily focus on theological knowledge, zeal, or the experience of repentance while overlooking the core that is “the Holy Spirit’s power and the cross-shaped love.” Addressing this, Pastor David Jang sets forth “Spirit-led, voluntary devotion, and sacrificial love that builds the community” as the essential values of the church, striving to implement these principles in every aspect of pastoral ministry. This isn’t merely about proclaiming “Receive the Holy Spirit!” or “Repent!” Instead, it involves “sharing the Word together, spending time together, bearing suffering together, and collectively rejoicing,” in other words, living out a communal life. Through such experiences, today’s church can re-enact the grace of the Spirit’s descent in Ephesus and raise many believers—once stuck in incomplete faith like Apollos—into a new level of wholeness.
Still, we must remember not to become complacent. The Ephesian church indeed experienced a powerful outpouring of the Spirit and rose to prominence through Paul’s three years of teaching, yet in Revelation 2, it is chastised for forsaking its first love. This demonstrates that even a historically significant encounter with the Spirit does not guarantee unceasing spiritual vitality. We must approach God daily, humbly immersing ourselves in Scripture and prayer, continually renewing our love in the community, and receiving fresh anointing from the Holy Spirit.
Therefore, just as Priscilla and Aquila cared for Apollos, and as Paul cared for the disciples in Ephesus, believers today need vibrant spiritual support within their churches. It is not the job of one or two individuals alone; all members must humbly build each other up so that no one remains at “the level of John’s baptism.” Together, they should ask, “What is the ‘more accurate’ gospel?” and pray, learn, and practice it side by side. Pastor David Jang’s pastoral model illustrates how powerful and vital the church can become when such spiritual care is fully functioning.
Through Acts 18:24–19:7, we see that “the journey from incomplete faith to complete faith” is nothing less than “moving from repentance to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Apollos and the Ephesian disciples recognized repentance and had some understanding of Jesus, yet they had not experienced the “new life” of the cross, the resurrection, and the Holy Spirit. When Priscilla, Aquila, and Paul bridged this gap, the results were dramatic: the once-incomplete Apollos became a powerful servant of the gospel, and the twelve in Ephesus emerged as the nucleus of a church that profoundly impacted the region. Thus Scripture testifies that today’s church likewise must go beyond repentance and doctrinal knowledge to experience and embody the Holy Spirit’s power and sacrificial love. Pastor David Jang’s long-standing message of “walking together in practical discipleship” and “church growth through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s a modern embodiment of the core teaching of Acts.
Looking at ourselves, we can relate personally to the story of Apollos, who “initially knew only John’s baptism” but went on to learn “the way of God more accurately” and became a powerful laborer for the gospel. We might ask: “I have repented, and I know Jesus is the Christ. But have I stopped there?” “Am I truly experiencing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loving my brothers and sisters and bearing witness to the gospel in the world?” “How seriously have I prayed and committed myself to meeting the needs of others in the community?” If we remain stuck in an incomplete faith, we need mentors like Priscilla and Aquila, or pastors like Paul. We need, most of all, to long for the Holy Spirit through prayer.
The church should be a spiritual family, where those who are incomplete may find completeness through the care of the community, and those already empowered by the Holy Spirit serve humbly, assisting others in discovering the path to greater maturity. We see Priscilla and Aquila doing precisely that for Apollos, and Paul doing the same for the twelve disciples. Within that dynamic of mutual growth, the cross and resurrection of Christ lie at the center, and it is the Holy Spirit who makes it possible. Pastor David Jang’s notion of “companion-based discipleship in the Spirit” represents a concrete way to realize this model of church.
It bears repeating: Apollos and the Ephesian disciples had already accepted Jesus as the Messiah and were serious about repentance. But the text demonstrates that “without the Holy Spirit, even fervor, knowledge, and repentance do not necessarily lead to a life of cruciform love.” Moving from repentance to the Holy Spirit is an essential leap in our faith journey, and it is the power that makes the church “truly the church.” Did not Paul ask in Acts 19,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This question remains pertinent today and probes our current spiritual condition. If anyone must answer, “We have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or if someone recognizes they have zeal but not love, or knowledge but not genuine transformative power, this passage shows us what we must do: “Learn God’s way more accurately, receive baptism in the name of Jesus, and seek the Holy Spirit.” That is how we move from incompleteness to wholeness, how we, like Apollos, become effective witnesses, and how we, like the twelve in Ephesus, serve as catalysts for new faith communities. As Pastor David Jang often says, when the church embraces “life together in the Holy Spirit,” it becomes a thriving family of faith.
This is not merely a story from biblical times; it remains a living truth today. The church is not built by outward structures of worship, programs, or doctrinal lessons alone but by “love and cooperation in the Holy Spirit.” That is why the church in Acts, though it had no dedicated building, substantial finances, or institutional foundation, shook the world with its power. That power came from the Holy Spirit and the “love of the cross.” When we move from the baptism of John to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everything changes.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coupled with the Spirit’s presence, animates believers as a living force. There, we find the true beginning of the church’s story. The limitations and breakthroughs of Apollos, along with the repentance and Spirit-baptism of the Ephesian disciples, extend a powerful challenge to us: “Are you truly filled with the Spirit? Does your church unite in the Spirit to love one another?” May there be an ever-growing number of congregations that can confidently answer “Yes!” to these questions, and may all of us continue on this faith journey “from incompleteness to completeness.”
Pastor David Jang’s vision of “a church that walks with the Holy Spirit and practices the love of the cross” aligns precisely with that aim. When the spirit of Acts is reborn, and when the fiery passion and dedication of the early church reemerge in our modern congregations, we will demonstrate the true power of the gospel to our world. Apollos and the Ephesian disciples left behind a precious lesson that beckons us onto this path of dynamic faith. “Do not linger in John’s baptism—go forth into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That is the indelible message written on our hearts by Acts 18:24–19:7, and it is the very challenge Pastor David Jang places before the church today.
1. El Aposento Alto de Marcos en Jerusalén, el lugar de la fe en la resurrección
El Aposento Alto de Marcos en Jerusalén es un espacio de gran relevancia en la historia de la Iglesia cristiana y, al mismo tiempo, un lugar que hoy día aporta una profunda perspectiva espiritual a la comunidad eclesiástica. Se sabe que este aposento es el escenario donde suceden los acontecimientos cruciales que abarcan desde Hechos 1 hasta Hechos 2, es decir, allí tuvo su origen la iglesia primitiva y ocurrió el descenso del Espíritu Santo. Además, en Hechos 1 se registra el momento en que el Jesús resucitado culmina Su ministerio terrenal, justo antes de ascender al cielo, dando a Sus discípulos sus últimas instrucciones y promesas. Pero más allá de su dimensión física, este aposento es un símbolo de “cómo la iglesia primitiva, a pesar del temor que la embargaba, se reunió en pleno corazón de Jerusalén para provocar un cambio histórico”.
El pastor David Jang describe esta escena diciendo: “Aunque los discípulos estaban llenos de miedo y terror, durante unos 40 días el Señor resucitado vino a buscarlos personalmente, los renovó y les infundió fe antes de convocarlos de nuevo a Jerusalén”. En un principio, los discípulos se habían dispersado hasta Galilea, pero tras encontrarse con el Cristo resucitado, “revestidos de la fe en la resurrección”, regresaron por fin a Jerusalén. Este episodio muestra de forma evidente el poder que ejerce la resurrección dentro de la comunidad de fe, cuyo punto de partida se sitúa en el Aposento Alto de Marcos.
La pregunta es: ¿por qué tenía que ser precisamente en Jerusalén? Fue allí donde capturaron a Jesús y donde fue ejecutado. Para los discípulos, esa ciudad evocaba recuerdos dolorosos y atemorizantes. Después de la muerte de Jesús en la cruz, muchos de Sus seguidores huyeron dispersos. Sin embargo, el Señor dio el mandato explícito: “No os alejéis de Jerusalén, esperad la promesa del Padre” (Hch 1:4-5). De este modo, Él hizo que los discípulos se reunieran nuevamente en la región más peligrosa y llena de terror. El pastor David Jang interpreta esto así: “La obra de Dios siempre supera nuestras expectativas y nuestro sentido común. La fe en la resurrección se revela cuando lleva esperanza al lugar más desesperanzador”.
La característica esencial de la fe en la resurrección radica en la certeza de que “la muerte no es el final”. Los discípulos, que antes pensaban “El Señor ha sido ejecutado, pronto nos atraparán y nos matarán a nosotros también”, experimentaron un nuevo tiempo “más allá de la muerte” cuando vieron a Jesús en verdad vencer el poder de la tumba y resucitar. Por eso en Hechos 1:3 se testifica que, durante 40 días después de resucitar, Jesús “les habló de lo referente al reino de Dios”. Ese “reino de Dios” no se limita a un concepto escatológico o filosófico; incluye directrices muy concretas para que la Iglesia se afiance con poder y avance en el presente. Una de esas directrices es: “Debéis comenzar en Jerusalén”.
El pastor David Jang enfatiza: “Podemos definir la ‘realidad de la fe en la resurrección’ como el proceso en que uno se recupera en el mismo lugar donde anteriormente había caído y se había vuelto vulnerable ante el mundo”. Esto es precisamente lo que enseña el Aposento Alto de Marcos. Probablemente, cuando los discípulos se reunieron al principio en aquel aposento, el ambiente estaba impregnado de un silencio cargado de temor. Justo después de la crucifixión, el cuerpo de Jesús había sido sepultado y las autoridades religiosas planeaban extirpar por completo a los seguidores del Maestro. Por ello, para los discípulos, el Aposento Alto tal vez funcionaba como un “breve refugio para orar y estar a salvo”. Sin embargo, el Señor les dijo que no se quedaran simplemente detenidos: “Esperad allí, no en el sentido de detenerse permanentemente, sino hasta que recibáis el Espíritu Santo”. De esta manera, ese lugar dejó de ser un “refugio inerte” para transformarse en la “fuente de un poder” gracias a la venida del Espíritu Santo.
En el capítulo 2 de Hechos, cuando el Espíritu desciende, los discípulos dejan de ser un grupo temeroso y escondido. Ese aposento, que antes era un espacio de pánico, se convierte en un lugar donde se manifiestan la certeza de la resurrección y el poder del Espíritu. Entonces, llenos de valentía, salen a las calles de Jerusalén a proclamar el Evangelio.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que “si la resurrección queda solo como una doctrina, carece de significado; la fe en la resurrección adquiere su verdadero sentido cuando irrumpe con poder en la vida real. Entonces la gente, incluso dentro de los muros de Jerusalén, ve que es posible actuar sin miedo”.
Esa “fe que actúa” se ve reflejada a lo largo del libro de los Hechos. Partiendo de Jerusalén, se extiende por Samaria y por toda Judea, hasta llegar a los confines de la tierra. El primer paso de la fe hacia la acción se evidencia, como se describe en Hechos 2 con el evento de Pentecostés, cuando quienes estaban encerrados en un aposento salen a la calle para predicar el Evangelio. Ese día miles se arrepienten y reciben el bautismo, lo cual provoca una escena sobrecogedora. Todo empezó en el Aposento Alto de Marcos.
Por otra parte, se hace referencia a este aposento como la “matriz” o el “útero” de la Iglesia. El motivo es que un nuevo tiempo nació en forma de “nueva comunidad” a partir de la experiencia de la resurrección de Cristo y la venida del Espíritu Santo. Mientras Jesús vivía y caminaba con ellos, los discípulos se hallaban en una fase de “formación” recibiendo Sus enseñanzas. Pero después de la ascensión de Jesús y la llegada del Espíritu, estos discípulos pasaron a ser “columnas de la comunidad eclesial”, responsables de la expansión del Evangelio. El Aposento Alto fue el núcleo de esa transformación, y la fe en la resurrección fue su fuerza principal.
Si recordamos la escena de la restauración de Pedro en Juan 21, podemos comprender mejor cómo los discípulos experimentaron al Jesús resucitado, recibieron de nuevo su comisión y regresaron a Jerusalén en obediencia. Tras haberle negado tres veces, el Señor pregunta a Pedro “¿Me amas?” también en tres ocasiones; Pedro profesa su amor con lágrimas, lo que le permite recoger los pedazos de sí mismo y volver a ser “la roca”. Al respecto, el pastor David Jang comenta: “La Iglesia no se mueve por programas o estructuras; su energía fundamental nace del amor al Señor. Ese amor brota a su vez de la resurrección de Cristo, y se hace firme cuando lo creemos en el corazón y lo proclamamos con la boca”.
El Aposento Alto de Marcos era precisamente esa “concentración de confesión, arrepentimiento y fe”. Allí se reunieron los discípulos que habían negado al Señor y se habían dispersado; formaron de nuevo una sola comunidad y se atrevieron a romper con la desesperanza para reunirse. Fue la resurrección del Señor y la promesa del Espíritu lo que lo hizo posible. “Cuando conectamos en una misma línea los pasajes de la pasión de Jesús en Mateo 26 y siguientes, la escena de los discípulos volviendo a Galilea en Juan 21 y el regreso a Jerusalén en Hechos 1, entonces la fe en la resurrección cobra un mensaje concreto para la Iglesia actual”, reitera el pastor David Jang.
Así, el Aposento Alto de Marcos simboliza el lugar donde “el temor se convierte en valentía, la dispersión en comunidad reunida, y la vergüenza y la negación en arrepentimiento y confesión”. La Iglesia de hoy necesita reflexionar sobre esto. Si una congregación se limita a esconderse por temor a las críticas o a la persecución social, su mensaje debe ser “Volvamos a prender la llama del Espíritu que descendió en el Aposento Alto de Marcos”. Eso es aplicar la fe en la resurrección al momento presente. Así como Jesús, victorioso sobre la muerte, continúa edificando Su Iglesia como si aún estuviera entre nosotros, respaldando Su labor para que, en medio del mundo, prediquemos con valentía, también nosotros podemos emprender con alegría el camino “desde Jerusalén hasta los confines de la tierra”.
Desde esta perspectiva, el pastor David Jang insiste: “No debemos quedarnos con el Aposento Alto de Marcos como un recuerdo histórico, sino recuperar nuestro propio ‘aposento alto’ en cada Iglesia de hoy”. Puede ser un “espacio de oración y búsqueda de la presencia del Espíritu” o un “lugar para aferrarnos juntos a la fe en la resurrección y declararla”. Reunirse en ese aposento no es un acto de enclaustrarse internamente, sino un “proceso de recibir poder para luego salir al mundo bien preparados”. Tal como Jesús prometió a Sus discípulos que “de aquí a pocos días seréis bautizados con el Espíritu Santo” (Hch 1:5), y se cumplió en aquel “aposento”, la Iglesia primitiva jamás desapareció y se extendió por todo el planeta.
2. La elección de Matías: la restauración de la Iglesia al llenar el vacío de Judas
En la segunda mitad de Hechos 1, los discípulos se enfrentan al suceso de nombrar a un nuevo duodécimo apóstol. El período que va de la Pascua (resurrección) a Pentecostés tuvo, entre otras cosas, la prioridad de “resolver qué hacer con la traición de Judas Iscariote, uno de los doce que Jesús había escogido”. Judas había entregado a Jesús por treinta monedas de plata y después se ahorcó. Además, el libro de Hechos (1:18) indica que adquirió un terreno con la ganancia injusta, se precipitó y su cuerpo se rompió por dentro, reflejando la “tragedia de un precio de sangre”.
Según el pastor David Jang, la tragedia de Judas es “el peor crimen cometido por alguien que se encontraba en el círculo más cercano”. Judas administraba el dinero de la comunidad de discípulos, ocupando de hecho un puesto clave en materia de recursos y servicio. De la misma forma, en la Iglesia, quien gestiona las finanzas y presta servicio requiere una gracia especial, pues por ese canal entran con facilidad la tentación y las artimañas de Satanás. El dinero es necesario para el funcionamiento de la comunidad, pero también despierta deseos y ambiciones mundanas. Por ello, la Escritura advierte repetidas veces que “el amor al dinero es la raíz de todos los males” (1 Ti 6:10) y recalca que la iglesia primitiva “tenía en común todas las cosas, distribuyendo a cada uno según su necesidad” (Hch 2:45, 4:34) para evitar la corrupción arraigada en los bienes materiales.
Sin embargo, Judas sucumbió ante la codicia y la política, dejándose manipular por Satanás hasta traicionar a Jesús. Poco después se arrepintió, pero no alcanzó una conversión genuina y terminó con su vida mediante un acto extremo, dejando a la Iglesia la herida de haber perdido a uno de sus miembros. Los doce apóstoles simbolizaban las doce tribus de Israel, eran las columnas espirituales de la nueva alianza levantada por el Señor. Al caer uno de esos pilares, la tarea de rehabilitar ese “umbral” se volvía prioritaria.
De ahí que en Hechos 1 se organice una reunión para cubrir ese puesto vacante. El resultado es el nombramiento de Matías. Al examinar los detalles de este proceso, aprendemos cómo reaccionó la iglesia primitiva ante la crisis. En Hechos 1:21-22, Pedro propone: “Hay que escoger a uno que haya estado con nosotros todo el tiempo, desde el bautismo de Juan hasta el día en que el Señor fue llevado de nosotros arriba, para que sea testigo con nosotros de Su resurrección”. Se presentan dos candidatos y la iglesia, tras orar, echa suertes para designar a Matías.
El pastor David Jang destaca varios aspectos aquí. Primero, la Iglesia primitiva estableció como requisito fundamental ser “testigo de la resurrección”. La razón de ser de la Iglesia es anunciar al Señor resucitado, y la tarea primordial de los apóstoles consiste en proclamar la buena nueva de la resurrección. Tanto Matías como el otro candidato habían acompañado a Jesús a lo largo de Su ministerio, Su pasión, muerte y resurrección, casi igual que los doce apóstoles. En segundo lugar, se da un equilibrio entre la participación de la comunidad, la oración y finalmente el echar suertes, lo cual subraya la importancia de la soberanía de Dios. El liderazgo no podía ser fruto de alianzas ni de cálculos humanos. En tercer lugar, la Escritura no recoge muchos datos sobre la posterior labor de Matías, pero esta elección sirvió para restaurar el grupo de los Doce y dejar el círculo completo antes de la llegada del Espíritu Santo en Pentecostés.
¿Por qué era tan significativo este procedimiento? Porque la Iglesia, justo antes de recibir al Espíritu, consideró que lo primero era “restaurar el equipo de liderazgo (el cuerpo de apóstoles)”. Sin sanar el vacío y la herida que dejó Judas, hubiera sido muy difícil alcanzar la unidad y la comunión plenas en la comunidad. Es lógico que las personas aún sintieran “uno de nosotros traicionó al Maestro”, con la desconfianza que eso produce. Además, después de haber estado dispersos, los discípulos volvían a Jerusalén con la necesidad de “reforzar la cohesión”, de modo que “no se repitiera semejante traición”.
El pastor David Jang señala: “La traición de un líder puede desmoronar toda la comunidad, tal como demuestra el caso de Judas”. Por ello, la iglesia primitiva no optó por olvidar ni encubrir el asunto. Más bien, tan pronto echó a andar, gestionó públicamente ese episodio. Judas arrojó en el templo la bolsa con el dinero y con ese dinero se compró el “Campo de Sangre” (Mt 27:5-8). Y en vez de ocultar esa vergonzosa historia, la comunidad interpretó a la luz de la profecía (de Jeremías o los Salmos) que “esto formaba parte del cumplimiento de la Palabra” e, implicando a todos, oraron y escogieron al nuevo apóstol.
Así fue como Matías tomó el puesto de Judas, y con ello el colegio de los doce quedó restablecido. Reinó de nuevo la plena unidad; entonces llegó Pentecostés con la fuerza del Espíritu Santo. Con esa unción, los apóstoles emprendieron la misión de anunciar el Evangelio desde Jerusalén hasta Judea y Samaria, llegando a los confines de la tierra. Sin embargo, si la traición y la muerte de Judas hubieran sido ignoradas, posiblemente la Iglesia se habría derrumbado antes incluso de establecerse. Pero al contrario, la asunción pública de sus errores y la proclamación de la sanidad interior permitió que la Iglesia naciente se afianzara todavía más.
Visto desde otro ángulo, el tropiezo y el final de Judas infundieron en la iglesia primitiva la conciencia de que “nadie debe confiarse”. Judas había estado con Jesús tres años, presenciado milagros, escuchado Sus enseñanzas y había gozado de la confianza de la comunidad hasta ser tesorero. Incluso así, cayó. Esto advierte que, en la Iglesia, cualquiera está expuesto a la tentación. Al respecto, el pastor David Jang alerta: “Lo mismo ocurre hoy con el liderazgo de la Iglesia. Por muy sobresaliente que parezca alguien, si no se mantiene alerta y se aferra a la Palabra y al Espíritu, Satanás puede usarlo como carnada”. A lo largo de la historia eclesiástica, han surgido bastantes episodios de traiciones y caídas. Pero asimismo, en cada situación, Dios ha levantado a alguien nuevo —un “Matías”— para llenar el vacío y proseguir Su obra.
¿Qué enseñanzas concretas podemos extraer hoy de la elección de Matías? Primero, que la Iglesia ha de designar a su liderazgo fundamental mediante un proceso comunitario y de oración, basándose en lo esencial: “¿Está comprometido con la fe en la resurrección?”, “¿Ha caminado con el Señor?”, “¿Conoce Su pasión, Su muerte y Su resurrección hasta el punto de testificarlo con su vida?”. Es decir, la confesión de fe es mucho más determinante que la fama o la capacidad política. Segundo, cuando se produce la traición de un líder o una gran herida dentro de la Iglesia, no basta con tratarlo como un “fallo personal” y dejarlo pasar. La comunidad debe sufrir el dolor y preguntar: “¿Cómo nos restauramos?” en la oración y la Escritura. Después de la caída de Judas, la Iglesia no se enfocó en condenarlo, sino que investigó las profecías, oró en común y abrió así un “nuevo camino” con sabiduría divina. Tercero, todo este proceso de restauración apuntaba en última instancia a la “venida del Espíritu Santo”. ¿Por qué gestionar este asunto antes de recibir al Espíritu? Precisamente porque necesitaban prepararse y estar en orden para ser capaces de recibir el gran obrar de Dios. Si persisten el pecado y la confusión, no podemos pedir la plena manifestación del Espíritu. El pastor David Jang recalca: “Antes de anhelar que el Espíritu obre, la Iglesia ha de abordar seriamente sus propias injusticias y pecados, y si un líder ha caído, no ha de encubrir el hecho, sino buscar la verdadera sanidad”.
La salida de Judas y la llegada de Matías representa un “signo” de que, por más severa que sea la herida sufrida por la Iglesia, dentro del plan de Dios siempre se halla la vía para la restauración. Judas no fue “rechazado” desde el inicio, sino que tomó su propia decisión que lo condujo a un desenlace funesto. La Iglesia ofrece a todos la oportunidad de restauración y salvación, pero hay quienes la rehúsan hasta el final. No obstante, en vez de ocultar ese drama, la Iglesia busca la fuerza para emprender “un camino nuevo” con arrepentimiento y renovación. Y en ese proceso, la “fe en la resurrección” ejerce un papel fundamental.
La fe en la resurrección es la creencia firme en que “Dios rompe el poder de la muerte y da nueva vida”. Judas fue el que entregó a Jesús para Su muerte y luego se hundió en la culpa, mas Cristo salió victorioso de la tumba y abrió “el camino de la vida”. El caos y el temor que dejó la traición de Judas se superaron gracias a la esperanza que brinda el Cristo resucitado. Con la incorporación de Matías, los doce apóstoles recuperaron su unidad, esperaron al Espíritu y, cuando descendió en llamas sobre la Iglesia, emprendieron con valentía la proclamación del Evangelio en Jerusalén. Si uno lee Hechos del capítulo 1 al 4, encontrará a Pedro y a Juan predicando sin miedo ante la guardia del templo y las autoridades religiosas, declarando: “Ningún otro nombre bajo el cielo se ha dado a la humanidad por el cual podamos ser salvos” (Hch 4:12). Ese Pedro ya no es el hombre que negó tres veces al Señor antes de que cantara el gallo. Este Pedro es alguien “restaurado en el Aposento Alto de Marcos, revestido del Espíritu, acompañado de Matías y el resto de los apóstoles en pleno”. El mensaje “Dios restauró incluso el asiento vacío que dejó un líder que cayó” transmite un gran poder.
El pastor David Jang afirma: “Al perder a Judas y ganar a Matías, la Iglesia como si hubiera sanado una herida que sangraba. Así también la Iglesia de hoy, tras casos de división, corrupción y traición, debe buscar su propio ‘Matías’ y reordenarse para recibir la obra del Espíritu”. Porque la Iglesia es, a la vez, “la comunidad que abre una nueva era a través del Espíritu” y también “la comunidad que atraviesa crisis como traiciones, fracasos y muertes para pasar a la resurrección y a la curación”. Judas adelantó la muerte de Jesús, Matías ensanchó la senda del Evangelio. Pedro huyó negando al Señor, pero Jesús lo volvió a buscar en Juan 21 y le preguntó: “¿Me amas?”. Con esa restauración, Pedro fue quien en Hechos tomó el liderazgo para predicar el primer sermón de la Iglesia. Superado el proceso de reorganización de los apóstoles, la Iglesia primitiva experimentó de forma gloriosa la venida del Espíritu en el Aposento Alto de Marcos. En cuanto el Espíritu se derramó, la Iglesia salió de su escondite y con atrevimiento proclamó el Evangelio, causando conmoción en Jerusalén.
¿Puede la Iglesia de hoy vivir esa misma experiencia? El pastor David Jang responde: “Por supuesto que sí. Pero eso depende de que creamos en la fuerza práctica y viva de la resurrección, de que encaremos con sinceridad las grietas internas (traiciones, corrupción, desconfianza) en arrepentimiento y oración, y de que busquemos la guía del Espíritu con integridad”. El Aposento Alto de Marcos y la elección de Matías ejemplifican cómo la Iglesia puede experimentar en la vida real el poder del Señor resucitado y cómo sanar los conflictos y heridas internas para dar un salto hacia una nueva etapa.
La esencia del cristianismo expresada en la fe en la resurrección proclama que “la muerte, la desesperanza y el fracaso no tienen la última palabra”. Ni siquiera el caso de Judas, aparentemente sin remedio, impidió que la Iglesia siguiera con siglos de propagación del Evangelio a través de Matías. Aunque a veces seamos como Pedro, negando al Señor bajo el peso de la culpa, el mismo Señor vuelve a buscarnos —como en Juan 21— para restaurarnos. Esta gracia nos lleva al Aposento Alto de Marcos, no a quedarnos en impotencia, sino a llenarnos del poder del Espíritu y salir al corazón del mundo.
Tras ese proceso, al llegar al capítulo 28 de Hechos, el libro concluye con “nadie se lo impedía”, en señal de que el anuncio del Evangelio no se puede frenar. Pablo predicó estando prisionero en Roma, y Pedro, según la tradición, culminó su ministerio con el martirio (crucifixión invertida). Pese a ello, muchos otros discípulos surgieron para llenar los puestos vacantes, y la Iglesia, con altibajos, siguió en pie gracias a la fe en la resurrección y al poder del Espíritu. Si bien en ocasiones se sacude y tambalea, la Iglesia se levanta una y otra vez. De los doce apóstoles, uno cayó, pero Dios restauró el apostolado y lo extendió hasta los confines de la tierra.
La elección de Matías encarna la confluencia de “restauración” y “avance”. La Iglesia sanea sus heridas internas y, cimentada en la fe en la resurrección, se proyecta hacia un futuro mayor. Ese mensaje sigue totalmente vigente y, cuando los líderes eclesiales de hoy se topan con conflictos y problemas, pueden volver la mirada a la Iglesia primitiva y ver que “la respuesta está en la sólida confesión de la resurrección, la oración por la venida del Espíritu y un proceso transparente de comunidad”.
Al respecto, el pastor David Jang concluye: “La resurrección es poder. Cuando ese poder actúa en nuestro corazón, vivifica a la persona, vivifica a la Iglesia y edifica el Cuerpo de Cristo. Ni siquiera el peor traidor puede detener a la Iglesia que Dios guía hacia la próxima etapa. Así como el fracaso de Judas no truncó la historia de la Iglesia, tampoco las heridas actuales cancelan las promesas del reino de Dios”.
Ahí se ve la conexión entre “el Aposento Alto de Marcos y la elección de Matías”. El primero es el punto de ignición donde los discípulos, antes acobardados, experimentaron la llegada del Espíritu tras la resurrección, animándose a proclamar el Evangelio. La segunda nos muestra cómo la Iglesia resuelve la traición y muerte de uno de sus líderes, recuperando así la unidad y la fuerza. Ambas situaciones ilustran cómo las heridas, las negaciones y el miedo se transforman en restauración y poder, cuando intervienen la resurrección del Señor y la presencia del Espíritu. Aunque estas historias incluyan dolor y remordimiento, predomina la gracia de Dios, que permitía que la Iglesia primitiva se alzara desde Jerusalén a los confines del mundo.
Lo mismo sucede hoy. Si alguna iglesia o comunidad local logra, al estilo de aquel Aposento Alto de Marcos, “recuperar su aposento” y llenarse de la fe en la resurrección, y si el vacío que deja un “Judas” se sana con la elección de un “Matías” mediante un proceso transparente y fiel a la Palabra, podrá aspirar a una nueva manifestación del Espíritu. El suceso de Pentecostés no es un hecho meramente histórico ocurrido hace 2.000 años, sino un movimiento divino que todas las iglesias, en cualquier época y lugar, pueden experimentar.
Esta enseñanza coincide con lo que el pastor David Jang ha venido insistiendo constantemente: la “dimensión práctica de la fe en la resurrección”. Si solo la entendemos de forma intelectual, la resurrección se queda en teoría. Sin embargo, la iglesia primitiva la convirtió en la fuente de su vida diaria, demostrando que el sufrimiento, la muerte y la desesperanza no son definitivos. Los discípulos, con Pedro a la cabeza, comenzaron a proclamar el Evangelio en medio de una sociedad que pretendía aniquilarlos, y así demostraron cuán real y explosivo es el poder de la resurrección.
Por lo tanto, a la pregunta “¿Qué es la Iglesia?”, podemos responder: “Es la comunidad que, partiendo del Aposento Alto de Marcos en Jerusalén, tras haber superado la traición de Judas con la elección de Matías, e impulsada por la venida del Espíritu, se ha extendido al mundo entero”. Esa identidad sigue vigente más allá del tiempo y el espacio, y mientras la Iglesia guarde la fe en la resurrección, sus puertas no se cerrarán. Incluso si se produce una fractura profunda, Dios levanta a quienes restauren ese lugar y continúa derramando Su Espíritu. Así se ha propagado el Evangelio, primero desde Jerusalén a Roma y después a todas las naciones, dejando un legado de fe que alcanza a la Iglesia contemporánea.
La exhortación final del pastor David Jang también se orienta en esa dirección: “Debemos recuperar hoy nuestro aposento alto, y cuando haya traiciones y fracasos, no debemos disimularlos, sino afrontarlos con transparencia y arrepentimiento para tomar la oportunidad de un nuevo comienzo concedido por Dios. En el centro de ello está el ‘Señor resucitado’ y Su misión de edificar la Iglesia con sentido misionero”. Cuando la Iglesia responde con obediencia a ese llamado, la historia de los Hechos no se interrumpe, sino que continúa desplegándose.
이 글은 장재형(장다윗)목사가 강해한 사도행전 18장 24절부터 19장 7절에 나타난 아볼로와 에베소 교회의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이 불완전함에서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요한의 세례’라는 형태로 상징되는 불완전한 신앙이 ‘성령의 세례’라는 온전한 신앙으로 옮겨지는 사건을 보게 된다. 이러한 본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어떠한 태도와 자세로 복음의 온전함을 체득해 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여정 가운데 장재형목사의 사역과 가르침, 더 나아가 그의 목회적 실천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볼 것이다. 글의 전반부에서는 아볼로가 가진 불완전한 신앙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더 정확한 길을 배우게 된 과정, 그리고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이 요한의 세례에서 머물러 있었던 문제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다룬다. 이어지는 후반부에서는 ‘성령의 세례’라는 새로운 국면이 어떻게 열렸는지, 그리고 그 사건을 오늘날 교회가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장재형목사의 목회 방향과 연결해 심도 깊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본문에 나타난 인물들의 배경, 지역적·역사적 상황, 그리고 그들의 신앙적 성숙 과정을 따라가면서, 우리 또한 현재 우리의 신앙이 불완전함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경험해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다.
사도행전 18장 24절 이하에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아볼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율법과 예언, 곧 구약성경에 능통하고 언변이 뛰어난 인물로 소개된다(행 18:24). 알렉산드리아는 당대 지적·학문적 분위기가 풍성한 곳으로 유명했으며, 이곳 출신인 아볼로가 매우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본문에서 “성경에 능통한 자” 혹은 “학문이 많은 자”라는 표현으로 뒷받침된다. 그는 회당에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언하면서 열정적으로 가르쳤고,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지식과 언변 면에서 남달랐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행18:25)라고 기록함으로써, 그의 지식과 열정이 가지는 한계 지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요한의 세례’는 세례 요한이 선포한 회개의 세례를 의미한다. 이 세례의 핵심은 ‘돌이킴(metanoia)’으로, 죄에서 떠나 회개함으로써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복음서가 증언하듯 세례 요한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실 것이며,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 예언했다(마 3:11, 막 1:7-8, 눅 3:16, 요 1:26-27 참조). 즉 요한의 세례는 종국적 목적이 아닌 예비적이고 준비적인 차원이었다. 그런데 아볼로는 예수에 관해 열심히 말하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회개 이후의 세계’, 곧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내주와 역동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단계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이는 그가 예수에 관한 지식은 풍부하게 가르쳤으나, 그리스도의 삶에 실제로 동참하는 십자가의 길 혹은 성령의 능력에 대한 인식이 미흡했음을 암시한다.
이 불완전함을 보완하는 이들이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다. 이들은 바울과 함께 사역하며 깊은 신앙을 배웠고, 에베소에 체류하던 중 아볼로가 회당에서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를 따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다”(행 18:26).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전수한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분명 아볼로가 이미 구약에 대한 지식,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 그리고 회개와 돌이킴의 중요성 등을 모두 알고 있었으니, 그가 새로 배워야 할 가르침은 두말할 것도 없이“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복음의 깊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차원”이었을 것이다. 흔히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다”라는 문장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장재형목사의 목회철학과 사역적 가르침이 어떻게 이 본문과 연결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회개와 지식적인 깨달음에만 그치는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실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뿌리내려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서로 섬기며, 함께 험난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참된 복음의 열매라고 역설한다. 이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돕고 세우는 방식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즉, 단순히 ‘알지 못하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정한 전모”를 전달하고, 그로 하여금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 안에서의 동행이라는 삶의 현장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아볼로 이야기에 이어 사도행전 19장 1절 이하에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또 다른 ‘요한의 세례’를 받은 제자들과 만나 이들이“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다”고 답하는 장면이 펼쳐진다(행 19:2). 바울이 이들을 보고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였고, 그들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으므로 정작 성령의 존재와 역사를 전혀 체험하지 못했다. 그들은 분명 예수의 존재와 회개에 대해서는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복음이란 궁극적으로 ‘성령의 내주’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변화를 통해 완성되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바울은 그래서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라고 묻고,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에 머물렀음을 알게 되자, 곧바로“요한도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함을 분명히 선포했지 않느냐?” 하고 강조한다(행 19:4).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뒤, 이들에게 안수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들에게서 방언과 예언이 나타났다고 성경은 기록한다(행19:5-6).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사마리아와 이방인들에게 임했던 성령 세례(행 2장, 행 8장, 행 10장 등)와 더불어 교회가 확장되는 중요한 이정표로 볼 수 있는데, “에베소의 성령 강림 사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를 하나 더 발견할 수 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빠져나가 고린도로 가 있는 동안, 바울이 뒤늦게 에베소에 들어와 요한의 세례에서 머문 제자들을 만나 그들을 ‘성령의 세례’로 이끈 것이다. 즉, “아볼로는 열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그를 통해 에베소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졌으나, 아직 완전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바울이 그 미흡함을 채운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고린도전서에 보면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쳐,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하는 분파가 생길 정도로 그의 가르침은 탁월하고 역동적이었다(고전 1:12). 그러나 그 시작은 “요한의 세례만 알던 불완전한 상태”였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이어 바울을 통해, 점차 더욱 온전한 복음의 의미로 나아갔음을 우리는 본문에서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현재 우리 시대에도 매우 중요하고 실제적인 시사점을 준다. 신앙의 불완전함은 단순히 “회개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성경 지식도 풍부하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요한의 세례’적 차원에 머무를 수 있다. 즉, 지식적으로는 예수를 믿고, 회개했다고 말하지만, 삶의 현장 속에서 “성령의 세례가 주는 깊은 능력과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채 머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교회의 실제 상황에 대입해 보면, 많은 지체가 신앙적인 열심과 교리적인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서 성령의 역동성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거나, 형제를 향한 섬김과 헌신, 나아가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을 발견한다. 이는 “첫사랑을 버렸다”라고 책망받은 에베소 교회(계 2장)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는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에베소 교회가 바울이 3년 동안이나 직접 가르칠 정도로 신학적·교리적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이다. 즉, “수준이 높아도 사랑이 식을 수 있다”는 단면을 보여 준다. 결국 교리적 지식에 만족하거나, 한때의 회개 체험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매일의 삶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사랑을 재확인하며 성령의 역사를 새롭게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본질적 메시지다.
장재형목사는 교회의 본질이 “생명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교회란 단지 예배당에 모여 예배만 드리고 교리를 배우는 데 그치는 곳이 아니라고 가르쳐 왔다. 오히려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필요한 부분을 채워 주며,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지고 가는 실제적인 ‘동행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요한의 세례적 차원, 즉 회개와 구원의 확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실제로 살아내고 서로에게 나누는 삶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직접 “데려다가 가르쳤다”라는 행동도 깊은 사랑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아볼로가 자칫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그의 열정을 칭찬하며 동시에 ‘더 온전한 복음’을 전해 주려는 사랑과 배려, 공동체 의식이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볼로는 이를 겸손히 받아들여, 이후 고린도 교회 등에서 바울·베드로와 함께 어깨를 견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성장했다.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아볼로는 과거 “요한의 세례만” 알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주의 도를 증거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크게 쓰임받았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세례가 임한 에베소의 제자들 역시 ‘방언’과 ‘예언’이 나타나면서, 그 지역 교회가 새롭게 출발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행 19:7)라는 구절은 상징적이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시작하셨던 새로운 공동체의 운동이, 이제는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인 에베소에서도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열두 사람을 중심으로 에베소 교회가 형성되고, 점차 아시아 전역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발판이 되었다. 오늘날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성령 안에서의 성장’ 역시, 바로 이런 성경적 모형을 근거로 “회개”에서 멈추지 말고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은 삶”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렇게 성령으로 충만해진 이들이 결국 세상 가운데 적극적으로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흐름이 보여 주는 핵심은 “요한의 세례에서 머무르는 불완전한 상태를 뛰어넘어, 온전한 복음인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내주와 역동성을 경험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깨닫고, 회개한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본문의 인물들은 실제 삶에 동참함으로써, 성령의 세례가 가져오는 능력과 사랑을 삶 전체에서 누리게 되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데려다가’ 가르쳤듯이,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더 성숙한 이들이나 목회자들은 아직 완전치 않은 신앙인들을 세심하게 돌보고, 그들에게 성령 안에서 성숙해지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장재형목사가 이야기해 온 ‘동반자적 제자도’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단순히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함께 고난을 지고 사랑을 실천하며 성령 체험의 장으로 이끄는 제자 양육을 의미한다.
실천적으로 생각해 보면, 교회 안에서 누군가가 지식적으로는 성경을 잘 알고, 예배와 봉사에 열심을 내지만, 그의 삶이 여전히 성령의 열매(갈 5:22-23)로 채워지지 않고, 형제와 자매를 향한 사랑으로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어느 정도“요한의 세례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잔소리나 정죄가 아니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주는 실제적인 가르침과 돌봄, 그리고 기도로 함께 성령의 임재를 갈망하며 기다려 주는 태도다.
에베소 교회가 사도행전 이후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바울의 긴 사역 거점이 된 것, 그리고 나중에는 요한 사도까지 사역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성령 체험’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9장에 묘사된 “에베소의 성령 강림”은, 바울이 세웠던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에베소 교회를 특별한 능력과 사랑의 공동체로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계시록 2장에 나타난 “에베소 교회의 첫사랑 상실” 사건은, 아무리 한때 강력한 성령 체험을 했더라도, 시간이 흐르며 그 열정과 사랑을 식혀 버릴 수 있다는 경고의 사례가 된다. 한 번의 뜨거운 체험이나, 지적인 깨달음으로 영원히 완성되는 신앙은 없다는 뜻이다. 장재형목사는 교인들에게 “지속적인 성령 충만”과 “끊임없는 말씀 묵상 및 적용,” 그리고 “희생적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는데, 바로 이런 성경적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성령 체험”과 “지속적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요약하자면,아볼로와 에베소 제자들이 초기에는 “요한의 세례”만 알았기에 회개와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충만했을지 몰라도, 아직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새 생명”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바울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채워 주었을 때, 이들은 강력한 복음의 사역자로, 또는 열두 명의 주축 멤버로 교회에 큰 유익을 주는 일꾼으로 세워졌다. 오늘날 교회 역시, 회개와 교리적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며, 성령 안에서의 실제적 경험과 사랑의 실천이 뒤따라야 함을 본문이 증언하고 있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해 온 “실제적 동행”과 “성령 체험을 통한 교회 공동체의 성장”이라는 메시지는, 이 사도행전 본문의 핵심을 현대 교회에 적용하는 매우 실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Ⅱ. 성령 세례와 온전한 복음의 현실화: 공동체적 사랑과 장재형목사의 현대적 적용
앞서 아볼로와 에베소 제자들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신앙은 단 한 번의 결단이나 지식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은 지속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성령의 세례”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때 성령 세례란 단순히 ‘방언이나 예언’ 같은 은사적 측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삶을 실제로 살아내게 하는 영적 능력”을 의미한다. 아볼로가“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배움으로써, 이후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세우는 강력한 동역자가 되었듯이, 성령 세례를 경험한 신자는 ‘회개와 예수 지식’만 갖춘 단계에서 한층 더 나아가, 험난한 십자가의 길이라 할지라도 두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게 된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성령에 대해 말하되, 때로는 과도하게 은사적인 표징에만 치중하거나, 혹은 반대로 모든 성령의 역사를 신학적·지적 측면으로만 해석해 버려 실제 삶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양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 그러나 사도행전 본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진정한 성령 체험은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한 죄 사함”을 바탕으로, “성령의 능력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의 연합”으로 이어진다. 회개가 개인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예수의 구원에 참여시키는 것이라면, 성령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충만한 사랑의 실천으로 열매 맺는 것이다.
장재형목사의 사역은 이 점에서 현대 교회가 참고할 만한 특징을 지닌다. 그는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이 성령 체험을 단지“은사적 현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진정한 회심과 지속적 제자도의 여정”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면, 그것을 개인적 자랑으로 삼거나 ‘나는 특별하다’는 우월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를 세우고 다른 이를 겸손히 섬기는 사랑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식이다. 이는 고린도전서 13장, 즉 사랑장이 말해 주는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만다”(고전 13:1)는 경고를 교회 공동체가 실질적으로 되새겨야 하는 것이다. 사실 신앙이 머리로만 습득된 지식이나 일시적인 은사 체험으로 그쳐 버리면, 결국 곧바로 싸움과 분열이 일어나는 교회를 양산해 낼 뿐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현대 교회 현장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실이다.
실제 교회 생활에서는, 신앙 지식이나 은사 체험이 많은 이들이 더 깊은 사랑으로 자신을 낮추고 봉사하기보다, 오히려 교만해지거나 다른 지체를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이는 곧바로 본문이 말하는 “요한의 세례에 머문 불완전한 신앙”을 보여 주는 사례다. 겉으로는 큰 열심과 지식을 뽐내지만, 실제로는 성령이 가져오는 “십자가적 사랑, 자기 비움, 형제를 존중하고 교회를 세우는 겸손”이 결핍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들에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또는 바울처럼 누군가가 다가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주는” 돌봄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에서 이런 섬세한 돌봄, 인격적·영적 양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분란이 생기거나 교회가 분열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장재형목사가 특별히 강조하는 ‘공동체성’은, 앞에서 언급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돌봄 방식과도 결을 같이한다. 즉, “혼자만의 신앙”이 아니라, “함께 고난 받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자라나는 신앙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 역시‘몸의 비유’를 통해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한다”(고전 12:26)라고 말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여 준,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공동체 안에서 구현하라는 뜻이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서로 연결될 때, 성령의 은사는 서로를 분열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세우고 연합케 하며, 세상에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자원으로 변모한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교회 안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분열하는 원인을, 상당 부분 “성령 충만이 지식 혹은 개인적 체험 수준에서 머물러, 실제적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데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사도행전 18~19장이 보여 주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아볼로나 에베소의 제자들은 ‘열심’과 ‘회개’가 분명 있었지만, 성령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 사랑으로 성도를 섬기고 복음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단계로 들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이나 브리스길라·아굴라가 방문해 ‘더 정확한 복음’을 전달하고, 성령 세례를 통해 이들의 삶을 근본부터 뒤바꾸어 놓는다. 마찬가지로 오늘 교회 안에서도, ‘알긴 아는데 실천이 없는’ 지식 위주의 신앙이나, ‘체험하긴 했는데 사랑이 결핍된’ 은사 중심의 신앙이 성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둘을 “통합”하고 “올바른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돕는 보살핌과 가르침이다.
이렇게 완전해진 복음은 결코 개인주의적 신앙생활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진정한 복음을 깨달은 이들은 에베소의 열두 제자처럼 지역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고, 아볼로처럼 고린도 교회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분열보다는 연합과 성장을 가져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때 교회 성장이라 함은 단지 수적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말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야 한다”(엡4:13)는 차원의 ‘내면적·영적 성장’을 가리킨다. 교회의 양적 부흥은 그 결과로 따라올 수 있지만, 성령 충만을 통해 나타나는 사랑의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것이 본문이 보여 주는 핵심이다.
장재형목사 역시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강조하면서도, 그 근본은 “성령의 역사와 성도 간 사랑의 네트워크”에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이는 사도행전의 정신을 그대로 현대 교회에 적용하는 시도라 할 수 있는데, 목회의 모든 현장에서 “성령에 의지하되, 그 결과물은 반드시 형제 사랑과 공동체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사람들은 종종 교회 내 봉사나 사역을‘의무’나 ‘책임’으로 생각하고 억지로 하기도 하는데, 성령 충만 가운데 진정한 사랑을 체험한 이들은 그 봉사를 기쁨으로 여기고, 공동체와 세상을 향해 봉사의 손길을 자발적으로 내민다. 이는 “요한의 세례”라는 준거점을 이미 넘어선 상태, 즉“성령의 세례”가 임하여 생기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가 과거에는 단지 ‘죄책감’에서 시작한 회개로 신앙생활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할 때, 그가 성령의 세례로 진정한 복음의 기쁨을 누리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섬기는 자리까지 이르려면, 그 사이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멘토의 돌봄과 바울과 같은 목회적 양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체가 교회의 책임이자 사명이다. 교회가 이런 영적·인격적 돌봄에 실패하면, 그 성도는 요한의 세례적 차원에 머물며 회개를 반복하기만 하다 지치거나, 지식적·형식적 신앙에 불과한 상태가 될 수 있다. 장재형목사가 “영혼을 살리고 키우는 목회”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이런 뼈아픈 현실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즉, 교회가 단지 사람들의 숫자를 늘리는 데 급급하거나, 건물을 크게 짓는 데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케 하고, 이를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9장에서 언급된 “에베소의 열두 사람쯤 되니라”(행 19:7)는 표현이 상징하는 것은, “적은 수라 할지라도 온전한 복음을 깨달은 이들이 모이면, 곧 그곳이 교회이고, 거기서부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열두 명이라는 수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등을 연상시키면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의 시작을 의미한다. 에베소가 이후 소아시아 복음화의 전략적 거점이 되었다는 점, 또 그곳이 바울 사역의 가장 중심축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열두 사람의 성령 체험은 단지 개인적 회심 사건이 아니라, 교회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지역 교회가 시작될 때, 혹은 새로운 부흥이나 개척을 준비할 때, 큰 물리적 자원이나 많은 인원이 없어도, “성령으로 충만한 소수”가 있다면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거기서 출발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어떤 사역을 개척할 때마다, 규모나 화려함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성령 체험과 십자가적 사랑’이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진정 하나님의 비전을 붙드는 소수”가 존재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이는 곧 사도행전이 말하는 교회 개척과 성장의 원리와 부합한다.
정리하자면,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8장 24절부터 19장 7절의 사건은 “요한의 세례”로 상징되는 불완전함이 “성령의 세례”를 통해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어떻게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동력이 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아볼로라는 걸출한 인물조차“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알기 전에는 회개와 구약 예언 지식 수준에 머물렀으며, 에베소의 열두 제자도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기에” 회개만 반복하며 살아가던 상태였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바울의 도움 아래 이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과 예언 등 은사를 통해 교회에 큰 유익을 주는 일꾼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에베소 교회의 역사, 더 나아가 고린도 교회의 성장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현대 교회로 시선을 옮겨 보면, 우리 역시 성경 지식이나 열심, 혹은 회개 경험만을 강조하면서 실제 성령의 능력과 십자가적 사랑으로 나아가야 할 본질을 놓칠 위험에 처하기 쉽다. 이에 대해 장재형목사는 “성령 안에서의 자발적 헌신, 공동체를 세우는 희생적 사랑”을 교회의 핵심 가치로 제시하며, 목회의 모든 측면에서 이를 구현하려 애써 왔다. 이는 단지 “성령 받아라” 혹은“회개하라”는 구호 차원을 넘어,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고난을 함께 지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삶”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교회는 비로소 에베소 교회가 받았던 성령 강림의 은혜를 재현할 수 있고, 아볼로처럼 불완전함을 넘어 온전함으로 전환된 성도들을 많이 세울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에베소 교회는 분명 놀라운 성령 체험으로 부흥했고, 바울이 3년간 사역을 펼친 만큼 영적 수준이 높았지만, 요한 사도가 반모 섬에서 보낸 편지(계시록 2장)에 보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받았다. 이는 “한때 경험한 성령 세례나 강력한 은사 체험”이 영원히 신앙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낮추고, 공동체 사랑을 회복함으로써 성령의 능력을 새롭게 받아야 한다.
따라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바울이 에베소 제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성도 간에 영적 돌봄이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어느 한두 사람만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겸손히 세워 주고, “요한의 세례”에 머무르지 않도록, “더 정확한 복음”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며 실천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장재형목사의 목회 사례는 이러한 영적 돌봄이 실제로 작동할 때, 교회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건강한 영적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이 본문을 통해 ‘불완전한 신앙이 온전해지는 과정’이 곧 ‘회개에서 시작되어 성령의 세례로 완성되는 길’임을 확인했다. 열정과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 단계에서만 머무른다면, 그 신앙은 아직 완전한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게 될 때,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섬기고 돌보게 될 때, 그 신앙은 새롭게 태어나 교회를 견고히 세우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장재형목사가 끊임없이 강조해 온 “성령 안에서의 공동체 형성, 그리고 십자가적 사랑의 실천”은 바로 이 사도행전적 원리를 오늘 우리의 교회 현장에 펼쳐 놓는 구체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각자도 “아볼로가 처음엔 요한의 세례만 알았으나,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배워 능력 있는 일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개인 신앙에 대입해 볼 수 있다. ‘나는 회개했고, 예수가 그리스도인 줄 안다. 하지만 혹시 그 선에서 멈춰 버린 것은 아닌가?’ ‘지금 나는 성령의 충만함을 실제로 체험하며 형제·자매를 섬기고,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헌신하며, 다른 지체들의 필요를 채우려 노력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혹 불완전함에 머무르고 있다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도움을 받은 아볼로처럼,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이들에게 배우고, 바울처럼 목회적 돌봄을 줄 수 있는 지도자에게 인도함을 받으며, 무엇보다 성령을 사모하고 기도해야 한다.
교회는 서로의 부족함을 함께 채워 주는 영적 가정(family)이 되어야 한다. 불완전함에 머물러 있는 이는 공동체의 돌봄을 통해 온전함으로 나아가고, 이미 성령의 능력을 누리고 있는 이는 더 겸손히 서로를 섬기며, 아직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더 정확한 복음”을 전해 주는 상생의 구도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있으며, 이것을 현실에서 가능케 하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성령 안의 동반자적 제자도”는 이런 교회 모델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아볼로와 에베소 제자들은 이미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고 있었다. 교리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았고, 회개에 대한 진지한 마음가짐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성령’이 빠지면, 회개와 열심, 그리고 지식마저도 그 깊은 사랑의 실천과 십자가적 삶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처럼 회개에서 성령으로 나아가는 ‘전환’은 우리 신앙의 필수적인 도약이며,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동력이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이 묻지 않았는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질문은 여전히 오늘도 유효하며, 우리 개개인의 신앙 상태를 날카롭게 점검한다. 만일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 공동체 내에서 교육과 양육,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리고 목회자나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성령의 임재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 ‘방언’이나 ‘예언’ 같은 은사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랑의 실천”과 “겸손히 섬기는 태도,” 그리고 “세상을 향한 복음 증거”라는 열매가 반드시 함께 나타날 것이다.
장재형목사가 이끄는 목회 현장에서도, 처음부터 성령 체험이 강력하게 부어지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지적 이해와 회개만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통해 뒤집어지는 성도들도 있다. 이처럼 시기나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목적지는 한결같다. “온전한 복음, 곧 십자가와 부활을 단지 지식적으로만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 속에서 실제로 살아내는 제자들”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사랑으로 연결되어 교회를 세우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아볼로와 브리스길라·아굴라, 에베소 열두 제자와 바울의 관계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더 깊은 복음을 전수하는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겸손히 배우고 체험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국 모든 역할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며, 세상을 섬기게 하는 복음의 확장”으로 귀결된다.
오늘 본문의 핵심 메시지는 “불완전한 신앙에서 온전함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만 알던 사람들은 회개와 예수 지식을 가진 신앙인들이었지만, 성령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사랑의 능력과 공동체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바울의 적극적인 돌봄과 가르침이 그 결핍을 채워 주어, 결국 강력한 교회로 서게 하고 복음 사역이 지경을 넓혀 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 세례’였으며, 그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지식이 아닌‘삶’으로 현실화하는 열쇠가 되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현대적 목회 현장에 적용하여, 교회가 서로 섬기고 동역하며, 성령 체험을 통해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공동체로 거듭나도록 힘써 왔다. 이는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도 동일한 도전이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믿었음에도 불구하고‘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다’고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이라면, 혹은 예수님을 믿고 봉사하고 헌금도 하지만, 내 안에 사랑이 식어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다면, 혹은 하나님의 능력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실제 삶에선 체험하지 못했다면, 이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한 길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배우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라”는 것이다. 그때 우리의 신앙은 불완전함을 벗어나, 아볼로처럼 능력 있는 증인이 되고, 에베소 열두 제자처럼 ‘새로운 공동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교회는 장재형목사가 늘 역설하듯이, “생명력 넘치는 영적 가족”으로 세워져 간다.
이는 성경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다. 교회는 예배와 프로그램, 교리 교육, 봉사 등의 외형적 요소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사랑과 동역”으로 세워진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교회는 예배당도, 재정도, 제도적 기반도 없어 보였지만, 온 세상을 뒤흔드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 능력의 출발점은 성령이었고, 그 성령이 창조해 낸‘십자가적 사랑’이었다. 요한의 세례에서 성령의 세례로 넘어오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임재가 성도를 움직이는 살아 있는 동력이 되며, 그곳에서 참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볼로의 한계와 돌파, 에베소 제자들의 회개와 성령 체험이 보여 준 이 드라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강력한 도전장을 내민다. “너희는 과연 성령으로 충만한가? 너희의 교회는 과연 성령으로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부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공동체가 늘어나길 소망하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불완전함에서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신앙의 여정을 계속해 가야 할 것이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성령과 동행하는 교회,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 사도행전의 정신이 다시금 살아나고, 초대교회가 지녔던 뜨거운 성령 충만과 헌신이 현대 교회에서 재현될 때, 우리는 이 시대를 향한 복음의 능력을 진정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아볼로와 에베소의 제자들이 남긴 귀중한 교훈은, 바로 이 역동적 신앙의 길 위로 우리를 초대한다. “요한의 세례에 머무르지 말라, 성령의 세례로 나아가라.” 이것이 사도행전 18장 24절부터 19장 7절이 우리가슴에 새기는 분명한 메시지이며, 동시에 장재형목사가 오늘 교회 앞에 제시하는 도전이다.
1. La prière de Gethsémané et la solitude de Jésus-Christ
Le pasteur David Jang propose une analyse profonde de la solitude de Jésus-Christ et de sa prière au Jardin de Gethsémané. Il porte d’abord son attention sur le récit de Marc 14.32-42, décrivant les sentiments et les circonstances auxquels Jésus a fait face lorsqu’Il se tenait sur le point d’affronter l’épreuve extrême de la croix. Dans ce passage, le Seigneur déclare : « Mon âme est triste à en mourir », et Il tombe face contre terre pour supplier, tandis que les disciples, malgré l’urgence de la situation, sombrent dans le sommeil.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à partir de cette scène que Jésus est bien « le modèle parfait de la prière », mais pas seulement dans le sens d’une « assurance intrépide » : Sa prière renferme au contraire une angoisse et une crainte profondément humaines, exprimées par des « grands cris et des larmes » (He 5.7).
Durant Son ministère public, Jésus a accompli de nombreux miracles, chassé les démons, guéri les malades et annoncé le Royaume de Dieu. Les disciples, ayant déjà expérimenté à maintes reprises la puissance de Jésus, pouvaient penser qu’Il éviterait toute souffrance grâce à Sa force divine. Cependant, comme le souligne le pasteur David Jang, Jésus n’a pas choisi une « échappatoire à la souffrance grâce à la puissance » selon l’idée que les disciples s’en faisaient ; Il a plutôt manifesté une « obéissance de tout Son être » dans cette voie qu’Il a embrassée. Le texte met en relief cette réalité : « Abba, Père ! Tout t’est possible… » (Mc 14.36) exprime une confiance absolue dans la toute-puissance de Dieu, mais se conclut par : « Toutefois, non pas ce que je veux, mais ce que tu veux. » C’est là que réside la beauté et la grandeur de la prière de Jésus, explique le pasteur David Jang.
Au sein de cette prière, nous percevons la vulnérabilité humaine de Jésus, mais cette faiblesse et la confiance en la souveraineté de Dieu s’associent pour produire une « obéissance parfaite ». Dans notre vie de foi, nous disons souvent que nous voulons « obéir à la volonté de Dieu », mais nous pouvons rencontrer de grandes difficultés lorsque la souffrance ou la peur nous saisissent. Or, même Jésus a prié pour que « cette coupe s’éloigne » de Lui juste avant la croix ; cela nous pousse à reconnaître notre faiblesse telle qu’elle est. Et finalement, quand Il parvient à la résolution d’« assumer cette coupe si telle est la volonté du Père », le pasteur David Jang y voit l’enseignement essentiel que les croyants doivent tirer de la scène de la prière solitaire de Jésus.
Selon le pasteur David Jang, la prière de Gethsémané ne se réduit pas à un simple récit historique disant que « Jésus était dans l’angoisse avant de mourir ». C’est un lieu symbolique où le Christ, en tant que « Messie (l’Oint) », accepte pleinement la souffrance. Le nom de Gethsémané lui-même signifie « pressoir à huile » : à cet endroit, les olives sont pressées pour en extraire l’huile. De même, Jésus a subi une pression extrême, dans son corps et dans son esprit, afin de devenir « la rançon pour les pécheurs ». Dans la tradition biblique, on versait de l’huile sur la tête d’un roi pour le désigner, ce qui symbolisait l’autorité royale et la mission de guider le peuple. Pourtant, Jésus n’a pas immédiatement accédé à la gloire et aux honneurs réservés au roi : Il a d’abord choisi la souffrance et la mort, comme l’enveloppe ce texte.
Pendant la Pâque, des foules immolaient des agneaux au Temple de Jérusalem, et leur sang coulait dans le torrent du Cédron, teintant de rouge l’eau qui s’écoulait. Après le dernier repas pascal, Jésus et Ses disciples traversent ce même torrent pour se rendre au Jardin de Gethsémané. Le pasteur David Jang dépeint ce tableau comme « l’image silencieuse et solitaire du Sauveur traversant un ruisseau rougi de sang », soulignant que Jésus savait déjà que Son propre sang allait couler comme celui de ces agneaux, et qu’Il avançait pas à pas en méditant sur l’horreur de cette mort à venir. De plus, alors que les disciples auraient dû L’accompagner sur ce chemin, ils entrent dans Gethsémané en chantant, et plutôt que de Se joindre à Sa résolution, ils cèdent finalement au sommeil, accentuant la solitude de Jésus.
Le pasteur David Jang explique également que la solitude de Jésus ne provenait pas uniquement d’un « sentiment de trahison humaine ». Bien sûr, l’un des Douze, Judas, était déjà en train de Le livrer, et les autres ne saisissaient pas la profondeur de la souffrance du Maître, sombrant simplement dans le sommeil ; Jésus leur lance alors un reproche plein de tristesse : « Vous n’avez pas pu veiller une heure ? » (Mc 14.37). Mais la solitude de Jésus découle surtout du fait qu’Il devait volontairement obéir à la volonté de Dieu. Il Lui fallait aller jusqu’au bout, seul s’il le fallait, sans l’appui ni la compréhension de personne, ne trouvant ni soutien ni consolation, mais n’abandonnant pas pour autant.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de surcroît que cette solitude s’est étendue à l’ensemble de la vie de Jésus. Dès le début de Son ministère, Il a été mal compris par Son entourage, célébré de façon excessive, ou rejeté par les dirigeants juifs. Même Ses propres disciples, avant l’événement de la croix, n’acceptaient pas encore Jésus comme le véritable « Messie » et ne comprenaient pas bien les valeurs fondamentales du Royaume de Dieu. Ils répondaient apparemment « Amen » lorsque Jésus enseignait, mais ne réagissaient pas selon l’essence de ce message. Ainsi, quand Jésus a annoncé Sa passion, ils ne l’ont ni comprise ni prise au sérieux, l’écoutant sans y prêter réellement attention. Au Jardin de Gethsémané, cette ignorance et cette insensibilité se manifestent de manière éclatante.
Jésus emmène seulement trois disciples (Pierre, Jacques et Jean) un peu plus loin, les mêmes qui étaient présents lors de la transfiguration (selon les Évangiles synoptiques : Matthieu, Marc et Luc). Le pasteur David Jang précise que ce n’est pas parce qu’ils étaient particulièrement courageux ou fidèles, mais plutôt parce que Jésus a estimé qu’Il pouvait leur confier l’épreuve la plus intime de Sa souffrance. Pourtant, tandis que Jésus prie à en suer des gouttes de sang (Luc 22.44), ces trois disciples ne parviennent pas à rester éveillés. Ce n’est pas seulement la fatigue, mais surtout un manque de préparation psychologique : ils n’étaient pas disposés à accepter l’« extrême détresse » de Celui qu’ils suivaient. Le fait que, dans le moment où Il avait le plus besoin d’eux, ils s’endorment à côté de Jésus qui prie avec une ardeur terrible révèle leur profonde faiblesse. D’après le pasteur David Jang, c’est l’illustration que « le chemin de Jésus est un chemin de solitude » ; néanmoins, au cœur de cette solitude, Jésus, au lieu de se détourner, s’attache plus fermement à Dieu Son Père et ne renonce pas à Sa mission.
Un autre aspect important, c’est l’annonce faite à Pierre : « Cette nuit même, avant que le coq chante deux fois, tu m’auras renié trois fois » (cf. Mc 14.30). Pierre, fort de sa propre détermination, clame qu’il ne reniera pas Jésus, même s’il doit en mourir. Pourtant, lorsque Jésus prie à Gethsémané, Pierre, incapable de veiller dans la prière, ne trouve aucune force spirituelle pour soutenir son Maître. Finalement, quand Jésus est arrêté, Pierre prend peur et s’enfuit, allant jusqu’à Le renier lamentablement.
Ainsi, la prière de Jésus au Jardin de Gethsémané nous montre deux faces en même temps : d’un côté, Son angoisse profonde, Sa tristesse et Ses supplications, et d’un autre côté, Son courage exceptionnel qui se résume dans ce cri : « Toutefois, non pas ce que je veux, mais ce que tu veux » (Mc 14.36). Le pasteur David Jang interprète cette tension comme l’essence même de la personne et du ministère de Jésus. La véritable hardiesse spirituelle ne vient pas d’une « insensibilité » ou d’un « raisonnement simpliste », mais naît d’une « obéissance malgré la douleur, en se soumettant à la volonté de Dieu ».
Souvent, nous pensons à tort que « si nous avons une grande foi, nous ne craignons pas la souffrance ». Mais, selon le pasteur David Jang, Jésus a bel et bien redouté la souffrance, et Il a choisi la voie pour la surmonter : cette voie est « se déverser devant le Père dans la prière, puis se relever pour marcher vers la croix ». C’est un « chemin de solitude », car personne ne pouvait s’y substituer à Sa place. Le pasteur David Jang encourage ainsi chacun : « Quand vous vous sentez seul dans la vallée de la vie, rappelez-vous comment Jésus a prié. Dans la nuit où tous dorment et où vos proches ont disparu, que votre voix s’élève vers le Père en L’appelant “Abba”, tout en Lui abandonnant tout. » Cet exemple de Jésus est le modèle ultime pour le croyant.
Dans l’Évangile de Jean, on ne trouve pas le récit direct de la prière de Gethsémané. À la place, dès le chapitre 13 jusqu’au 16, on lit le dernier repas et le discours d’adieu, puis au chapitre 17, la longue prière de départ ; enfin, à partir du chapitre 18, on voit l’arrestation de Jésus. Le pasteur David Jang explique que, selon lui, c’est parce que Jean insiste sur le fait que la décision de Jésus était déjà prise durant le dernier repas (Jn 13.1 et suivants). Les Synoptiques (Matthieu, Marc, Luc) décrivent plutôt le « combat intérieur » de Jésus à Gethsémané, tandis que l’Évangile de Jean, dès Jean 13.31, présente la passion de Jésus comme une « glorification ». Cependant, le récit de Marc 14 nous montre les larmes et le désespoir qui ont accompagné ce choix, ce qui complète la perspective de Jean. Le pasteur David Jang exhorte donc à lire les deux versions de façon complémentaire.
En définitive, le récit de Gethsémané n’exalte pas la « pleine divinité » de Jésus en faisant abstraction de Son humanité, mais il montre au contraire Son combat intérieur et la source de Sa détermination à aller jusqu’au sacrifice. Les angoisses et les craintes qu’Il a ressenties se sont sublimées dans une confiance totale envers le Père, et L’ont conduit à avancer résolument vers la croix. Comme le souligne le pasteur David Jang dans sa prédication, à travers cet épisode, nous prenons conscience de la force et de la beauté qu’il y a à « obéir à la volonté de Dieu ». Chez Jésus, il y a à la fois le désir humain de « détourner cette coupe » et la ferme décision de « que ta volonté soit faite ». Dans notre propre existence, lorsque nous affrontons des difficultés et des souffrances, nous devons imiter cette attitude : chercher non pas « notre volonté », mais prier avec la prière du Christ, « que ta volonté soit faite ».
Il ajoute que la scène de Gethsémané ne constitue pas un événement révolu de la nuit d’autrefois à Jérusalem ; elle s’applique encore aujourd’hui au peuple de Dieu. Quand nous faisons face à un choix crucial ou à une épreuve inattendue, nous sommes également appelés à « la prière de Gethsémané ». Cette prière ne se limite pas à « Seigneur, donne-moi la force » : à l’exemple de Jésus, elle consiste à présenter nos faiblesses et nos peurs en toute sincérité et, malgré tout, à demander que « ta volonté s’accomplisse » — une prière d’obéissance. Le pasteur David Jang affirme qu’« au cœur de la nuit la plus solitaire de notre vie, c’est précisément le moment de se lever avec la force du Saint-Esprit, en criant “Abba, Père” ». Tel est pour lui le sens de suivre les pas sacrés de Jésus.
Plus encore, la solitude de Jésus à Gethsémané reflète « l’option nécessaire » pour notre salut. Le Fils de Dieu n’avait pas besoin de subir de façon aussi violente la souffrance et la solitude si ce n’était pas indispensable. Pourtant, comme le rappelle le pasteur David Jang, « c’est pour être la rançon des pécheurs » que Jésus n’a pas évité cette voie. Nous ne pourrons jamais comprendre entièrement ce qu’Il a enduré, cette « obéissance jusqu’à la mort ». Mais l’Écriture la décrit en détail ; Marc révèle les larmes et la détresse de Jésus, et des serviteurs comme le pasteur David Jang continuent d’expliquer leur signification. Et ce, pour que nous puissions méditer cette nuit solitaire et plonger plus profondément dans la grâce et l’amour du Seigneur, tout en apprenant à marcher nous-mêmes sur ce chemin d’obéissance solitaire.
En fin de compte, la prière de Gethsémané se clôt sur cette déclaration de Jésus : « L’heure est venue. Voici, le Fils de l’homme est livré aux mains des pécheurs. Levez-vous, allons ! » (cf. Mc 14.41-42). Le pasteur David Jang y voit un « avancement sacré » : c’est le début de la rédemption qui transcende la solitude. Dans Son affliction et Ses pleurs, Jésus dit : « Allons-y ensemble », ce qui exprime à la fois Sa propre résolution et une invitation pour nous à marcher sur cette voie de souffrance. Nous y découvrons la notion de « communion » : les disciples auraient dû marcher avec Lui, mais ils se sont dispersés ; Jésus a porté Sa croix seul. Toutefois, après Sa résurrection et la venue du Saint-Esprit, les disciples ont commencé à marcher dans Ses pas, et l’Église a poursuivi ce chemin de « souffrance et de gloire ». Le pasteur David Jang conclut que « de nos jours encore, l’Église et chaque croyant sont appelés à veiller et à prier comme durant la nuit de Gethsémané ». Autrement dit, en participant à la solitude et à la souffrance de Jésus, nous progressons davantage vers l’accomplissement de la volonté de Dieu.
2. La faiblesse de Pierre et des disciples, et la voie du disciple
Après avoir évoqué la scène de Gethsémané, le pasteur David Jang s’intéresse de près à la suite du chapitre 14 de l’Évangile selon Marc, où apparaissent Pierre et les autres disciples. À partir du verset 50, on voit comment les disciples s’enfuient lorsque Jésus est arrêté, puis Pierre renie Jésus à trois reprises. Les versets 51-52 mentionnent un « jeune homme qui suivait Jésus, n’ayant sur le corps qu’un drap ; on se saisit de lui, mais il lâcha le drap et s’enfuit nu ». Selon une tradition, ce jeune homme pourrait être Marc lui-même, l’auteur du deuxième Évangile.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sur le fait que ce passage, loin de dissimuler la « lâcheté » ou la « peur » de Marc et des disciples, la rend publique, conférant aux Évangiles une sincérité vivante.
Tous les disciples de Jésus avaient proclamé qu’ils resteraient fidèles à tout prix. Pierre affirmait : « Quand tous t’abandonneraient, je ne t’abandonnerai pas » (Mc 14.29). Mais ils ont fini par échouer, et la promesse solennelle de Pierre s’est révélée vaine. Cette histoire n’est pas unique à Pierre ; elle reflète la faiblesse commune à toute l’humanité. Selon le pasteur David Jang, beaucoup affirment : « Jamais je ne trahirai le Seigneur », mais face à la menace concrète de souffrance, ils fuient par instinct. Ainsi, même ceux qui paraissent fermes dans leur foi peuvent s’écrouler devant la tentation de Satan et la pression du monde.
Cependant, la leçon la plus importante ne s’arrête pas là. L’Évangile relate que, juste après son reniement, Pierre a un amer réveil et se repent ; ensuite, il est rétabli dans son rôle de disciple (comme en Jean 21, où le Ressuscité restaure Pierre). Le pasteur David Jang y voit l’illustration que des disciples « faibles » peuvent malgré tout être utilisés par Dieu. Leur sommeil à Gethsémané, leur fuite quand Jésus est arrêté, leur trahison ou reniement sont en effet terriblement honteux, mais Jésus ressuscité vient à leur rencontre. Leur échec n’était pas définitif : ces « disciples lâches » sont devenus de « grands apôtres ». C’est la grâce de l’Évangile. Le pasteur David Jang la résume par : « L’amour du Seigneur est plus grand que nos échecs. »
Le personnage le plus notable ici est « Marc », l’auteur présumé de cet Évangile.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sur le fait qu’il ait lui-même inclus, en Marc 14.51-52, le récit de sa propre humiliation — il s’est enfui nu pour échapper à ceux qui voulaient l’arrêter. De nombreuses personnes auraient préféré cacher un tel souvenir, pourtant l’Évangile, en révélant cette faillite personnelle, met en lumière le message : « Les hommes sont faibles ainsi, mais Jésus ne les a pas rejetés. » Marc, en drap de lin, montrait son désir de suivre le Seigneur, fût-ce à distance. Mais devant la menace, sa peur l’a emporté et l’a fait fuir. En rendant compte de ce comportement dans son récit, Marc souligne combien la croix fut portée seul par Jésus, puisque « même ceux qui voulaient Le suivre de loin se sont enfuis comme des lâches ».
Le pasteur David Jang en tire la conclusion suivante : « Sans la défaite et la lâcheté des disciples, comprendrions-nous aussi profondément la solitude et l’obéissance de Jésus ? » Dans les Actes des Apôtres, on voit ces mêmes disciples, transformés après avoir reçu la puissance du Saint-Esprit, à l’avant-garde de la prédication de l’Évangile. Mais leur point de départ, c’est « une trahison et une désertion si honteuses qu’elles sont difficiles à avouer ». Cette dynamique montre la puissance de l’Évangile et la grâce de Jésus-Christ, où la foi n’est pas un « privilège réservé à des personnes parfaites », mais une « grâce offerte à ceux qui prennent conscience de leur manque total de mérites et qui reçoivent l’amour et le pardon divins ».
Pour le pasteur David Jang, ce fait reste d’actualité. Nous aussi pouvons faillir et renier Jésus dans les circonstances concrètes de notre vie. Et si nous nous repentons, comme Pierre, le Seigneur nous relève et nous emploie à nouveau pour Son œuvre. Voilà la « vérité centrale de l’Évangile » valable hier et aujourd’hui. Que ce soit dans l’œuvre missionnaire ou au quotidien, nous pouvons, tels Pierre, échouer lamentablement et sombrer dans la tentation. Mais l’exemple de Pierre, réintégré après avoir pleuré amèrement, confirme que « le Seigneur nous confie à nouveau la mission après notre repentir ».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avec force : « Même si nous tombons, Dieu ne nous abandonne pas. Il connaît nos faiblesses et nous relève. » Il évoque aussi Pierre pleurant à chaudes larmes et, plus tard, Jésus lui demandant trois fois « M’aimes-tu ? » (Jn 21), ce qui correspond au triple reniement et conclut sur sa réintégration. Ainsi, « aucune vie ne se termine dans l’échec ». Dieu peut agir à travers cet échec, à condition que nous le reconnaissions et que nous nous repentions. Comme Pierre et Marc, nos instants les plus honteux peuvent devenir des tremplins pour la grâce de Dieu qui nous rétablit, nous permettant de participer à la victoire qu’Il a manifestée dans Sa résurrection.
Par ailleurs, cette faiblesse des disciples met en exergue le caractère profondément « solitaire » de la croix. La crucifixion est l’acte le plus décisif de l’histoire du salut, et Jésus L’a assumée seul. Même si les disciples L’ont suivi jusqu’au torrent du Cédron, même s’ils ont pénétré dans Gethsémané, « au dernier moment, Il est resté seul ». Le pasteur David Jang affirme que cela renvoie à la nature même du salut : personne ne peut se sauver lui-même du péché ; seul Jésus pouvait accomplir cette rédemption.
Pour autant, la marche des croyants reste une « voie paradoxale ». D’un côté, « Allons-y ensemble » suggère que l’on bâtit l’Église en communauté ; d’un autre côté, chacun porte « sa propre croix » : si nous apprécions le soutien et l’encouragement des frères et sœurs, il n’en reste pas moins que « la décision ultime » nous revient. Le pasteur David Jang fait référence à la parole de Jésus : « Si quelqu’un veut venir après moi, qu’il se renie lui-même, qu’il se charge de sa croix, et qu’il me suive » (Mt 16.24). Selon lui, la scène des disciples endormis à Gethsémané reflète ce principe spirituel : « Personne ne peut porter la croix à notre place. Et nous sommes tous soumis à l’épreuve du sommeil spirituel qui nous accable. » Dès lors, la vigilance dans la prière est capitale, car en s’appuyant seulement sur la force humaine (comme Pierre l’a fait en affirmant « Je mourrai plutôt que de te renier »), on peut vite chanceler.
Alors, quelle est la solution à cet effondrement ? Le pasteur David Jang répond : « Il faut apprendre de la prière de Jésus. » Comme Jésus l’a fait, nous devons dire : « Abba, Père, tout est possible pour toi ; éloigne de moi cette coupe ! Toutefois, non pas ce que je veux, mais ce que tu veux » (Mc 14.36). Il affirme : « Voilà précisément la leçon que Pierre et les disciples devaient recevoir, et nous aussi. » Ils ont échoué à veiller cette nuit-là, mais cette faillite a fini par faire d’eux les fondateurs de l’Église, qui, remplis du Saint-Esprit, ont donné leur vie pour l’Évangile. La Bible montre à maintes reprises que ceux qui connaissent la détresse et l’humiliation, puis s’en remettent au Seigneur, deviennent plus forts spirituellement que ceux qui n’ont jamais été éprouvés.
Le pasteur David Jang salue la « franchise » de l’Évangile qui expose sans filtre les faiblesses de Pierre, de Marc et des autres disciples. En lisant qu’ils ont renié, fui ou sombré dans le sommeil, nous reconnaissons aujourd’hui notre propre reflet. Si la Bible avait dressé d’eux un portrait idéal et infaillible, il nous serait difficile de nous identifier à eux. Or, la grâce de Jésus triomphe au-delà de leurs failles. Nous découvrons ainsi que « c’est au cœur de la faiblesse, mise à nu, que l’on réalise la grandeur de la grâce du Christ ».
Le pasteur David Jang résume : « C’est cela la marche de la foi. Devenir croyant ne signifie pas cesser à jamais de tomber, mais bien, après chaque chute, découvrir nos limites et nous remettre entièrement au Christ. » Nous pouvons faire des vœux aussi solennels que Pierre en clamant : « Je te suivrai jusqu’à la mort », mais au moment critique, nous risquons de défaillir. Malgré cela, l’amour de Jésus demeure intact. Ressuscité, Il pose à Pierre la question : « M’aimes-tu ? » et Lui rend son service : « Fais paître mes brebis ». Ce n’est pas seulement pour Pierre, c’est un encouragement pour tous les croyants d’aujourd’hui.
À travers la prière de Gethsémané et la faiblesse des disciples, nous discernons la véritable « voie du disciple ». Il ne suffit pas de dire : « Seigneur, je ne te trahirai jamais ». Il faut aussi savoir se relever après une chute, en suppliant : « Seigneur, prends pitié de moi et relève-moi ! » Le pasteur David Jang conclut : « C’est là toute l’histoire de l’Évangile, et ce modèle se répète sans cesse dans le parcours de la foi. » Nous aussi, inévitablement, nous trébuchons et laissons apparaître nos failles, mais si nous nous souvenons de la prière de Jésus à Gethsémané et de la chute suivie de la restauration de Pierre, nous pouvons reprendre la voie du disciple. « Tomber dix fois, se relever la onzième » n’est pas seulement un adage humain, mais bel et bien le principe évangélique : « Le Seigneur nous soutient jusqu’au bout. »
Pour mettre cela en pratiqu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l’importance, dans l’Église, de se soutenir lorsque les faiblesses de chacun sont mises au jour, au lieu de juger et condamner. S’il était arrivé que les autres disciples accusent et rejettent Pierre lorsqu’il l’a renié, cela aurait été opposé à l’esprit de l’Évangile. Jésus a rassemblé Ses disciples, et c’est ensemble qu’ils ont appris à se connaître. Dans les Actes, on voit l’Église primitive aimer, prier, mettre ses biens en commun, et même relever les frères qui défaillaient. C’est une expression concrète de la « communion avec le Christ ». Après le Golgotha, la résurrection et la Pentecôte, les disciples, qui s’étaient endormis à Gethsémané, sont devenus « une communauté en prière toujours éveillée », un tournant décisif.
Ainsi, le pasteur David Jang aboutit à la conclusion suivante : la description honnête de la solitude de Jésus à Gethsémané et de la faillite des disciples a pour objectif de délivrer plusieurs vérités. Premièrement, la voie de Jésus fut, du début à la fin, une voie de solitude, un chemin où Il a bu la coupe du jugement pour sauver les pécheurs. Deuxièmement, même si tous les disciples n’ont pas compris cette voie et ont fui, leur échec n’a pas entraîné leur abandon définitif. Jésus les a rétablis en tant qu’apôtres de l’Évangile. Cela signifie que, malgré notre faiblesse, nous pouvons trouver la restauration dans le plan rédempteur de Dieu. Troisièmement, aujourd’hui, alors que nous réfléchissons à ce « récit de la croix et du relèvement », nous pouvons aussi, dans nos détresses et échecs, contempler la prière de Gethsémané, et avoir la hardiesse de nous relever.
Tout ceci est orienté vers « l’obéissance absolue de Jésus », révélée dans la prière de Gethsémané, qui inaugure l’histoire du salut par la croix. Jésus voit Son chemin comme une « gloire », et surmontant la solitude, Il appelle Ses disciples : « Allons-y ensemble ».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en même temps, c’est un appel pour nous : « Prenez votre croix et suivez-moi. » Nous devons vivre comme « la communauté de la résurrection », même au milieu des épreuves, en priant ardemment : « Abba, Père, que Ta volonté soit faite. » L’épisode du chapitre 14 de Marc, avec les larmes et l’incompréhension des disciples, montre combien cette foi se déploie de manière âpre et concrète dans notre réalité humaine.
En contemplant à la fois la prière solitaire de Jésus à Gethsémané et la faiblesse des disciples, nous comprenons que cette nuit précédant la crucifixion ne se limite pas au sacrifice d’un seul homme, mais concerne le salut de l’humanité tout entière. Selon l’expression du pasteur David Jang, « l’instant où Jésus a le plus douloureusement pleuré révèle simultanément l’amour le plus profond du Père ». Personne n’a veillé auprès de Lui à ce moment-là, mais l’abandon total des disciples démontre encore plus crûment « la réalité du péché humain » et la nécessité du Christ pour notre salut. Heureusement, la conclusion de l’Évangile, c’est la résurrection, nous donnant une espérance. Pierre, qui se vantait avec orgueil, est tombé misérablement puis relevé en tant que dirigeant de la première Église. Ainsi, même si nous portons un lourd passé de fuite ou de trahison, nous sommes invités à nous redresser et à suivre de nouveau le Seigneur.
À première vue, Gethsémané semble être le point culminant du drame et de la tristesse, mais le pasteur David Jang remarque que « c’est l’aube d’un nouveau matin dans le Royaume de Dieu ». Car cette prière a amené Jésus à la croix, laquelle a ouvert la voie à la résurrection. Les disciples, endormis cette nuit-là, sont devenus, après la résurrection et la descente du Saint-Esprit, des « veilleurs » et des serviteurs déterminés. Nous aussi, en relisant la prière de Gethsémané, entendons cette voix : « Veillez et priez. » Peut-être notre chemin est-il plus aisé que celui de Jésus, ou peut-être au contraire plus rude, mais Jésus a déjà frayé ce sentier solitaire pour nous, et Il nous dit : « Viens et chemine avec moi. »
C’est précisément ce que le pasteur David Jang appelle « la communion avec le Christ ». Bien que Jésus ait prié seul à Gethsémané dans une profonde affliction, c’était aussi une « prière d’intercession » pour notre rachat. Les disciples dormaient, mais ils ont été relevés et sont devenus les pionniers de l’Église. Nous aussi, aujourd’hui, nous pouvons proclamer : « Seigneur, j’ai voulu veiller, mais je me suis endormi. Réveille-moi, Seigneur ! » Alors Il nous fait expérimenter Sa grâce qui nous relève. Nous célébrons chaque année la Passion et Pâques, et cette commémoration ne doit pas être qu’une simple tradition.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 « Elle doit raviver en nous la conscience que le salut repose sur l’obéissance solitaire de Jésus et nous permettre de l’actualiser encore aujourd’hui. »
Le pasteur David Jang raconte parfois qu’il aime se demander : « Si j’avais été auprès de Jésus cette nuit-là, aurais-je veillé ? » Pour aussitôt répondre : « Très probablement, j’aurais moi aussi cédé au sommeil ou je me serais enfui. » Une façon de reconnaître notre faiblesse commune. Mais c’est précisément pour cela que nous avons besoin de la « grâce du Christ ». Jésus a été fidèle et parfait, et grâce à Lui, malgré nos échecs, nous pouvons espérer. C’est le message le plus pressant de l’épisode de Gethsémané pour le croyant d’aujourd’hui, répète le pasteur David Jang.
« Cheminer avec le Christ » n’est pas une route sans peine ni épreuve. C’est le chemin de la croix, où Jésus, voyant l’échéance toute proche, a prié en larmes. C’est grâce à cette route qu’Il a accompli le salut. Les disciples, pourtant, ne L’ont pas suivi jusqu’au bout. Mais après la résurrection, ils ont chacun porté leur propre croix, suivant finalement Ses pas. Ainsi, il nous suffit de nous engager sur cette voie de la souffrance et de la grâce. La vie de disciple ne s’achève pas au premier échec, elle se poursuit dès lors qu’on se relève pour regarder à nouveau le Seigneur. « On peut tomber dix fois, on se relève la onzième », non pas par notre seule force, mais parce que « Jésus nous tient fermement ».
Au fil de ce chemin,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le cœur du message : dans l’unique mot « Abba, Père », nous percevons la confiance et l’amour de Jésus envers Dieu. Nous pouvons appeler Dieu « Abba, Père », parce que Jésus, dans une obéissance totale, a ouvert la voie à notre adoption. Grâce à ce don, même le disciple qui échoue, même celui qui s’endort, même celui qui prend la fuite en laissant son vêtement derrière lui, peut revenir dans la communauté et se tenir en prière. « Toutefois, non pas ce que je veux, mais ce que tu veux » : c’est l’essence de l’Évangile qui unit la croix et la résurrection, et le point de départ de notre relèvement et de notre victoire. Comme le dit le pasteur David Jang, « nous risquons sans cesse de sombrer, mais l’obéissance de Jésus a ouvert devant nous un chemin de grâce inépuisable ». La longue nuit de Gethsémané est ainsi devenue le lieu de l’aube de cette grâce.
Il arrive que nous vivions des moments similaires, entre incompréhension, injustice et terreur, qui nous font prier : « Éloigne de moi cette coupe ! » Mais c’est à ce moment précis qu’il nous faut nous rappeler la prière de Jésus à Gethsémané. Si la dépression est profonde et la honte grande, si malgré tout nous croyons en la gloire de la croix et de la résurrection, alors nous pourrons nous relever. Car Jésus a déjà parcouru ce chemin, transformant même la faillite des disciples en victoire. Finalement, tout cela découle d’une confiance absolue en la souveraineté et l’amour de Dieu, et c’est à travers la « prière de Gethsémané » que nous le découvrons. Le message du pasteur David Jang est limpide : « Pour vivre en communion avec le Seigneur, nous devons sans cesse refaire cette prière dans notre vie. » Au fil de ces répétitions, comme Pierre et les disciples, notre faiblesse se change progressivement en force dans le plan de Dieu.
Le chapitre 14 de l’Évangile selon Marc, avec la prière de Gethsémané, la profonde solitude de Jésus et la pitoyable faiblesse de Pierre et des disciples, met ainsi en lumière la valeur inestimable de la grâce et, en même temps, offre à tous la possibilité d’un recommencement. Cette nuit de tristesse ne fut pas le point final. Bien au contraire, elle a débouché sur l’appel de Jésus : « Levez-vous, allons ! » (Mc 14.42), la croix, la résurrection et la naissance de l’Église. Selon le pasteur David Jang, aujourd’hui encore, chaque croyant doit s’avancer jusqu’à son propre Gethsémané, invoquer « Abba, Père » et se tenir en éveil pour la prière, afin que la puissance de la résurrection devienne une réalité au quotidien.
Ainsi, la prière de Gethsémané et l’attitude de Pierre et des disciples reflètent à merveille l’essence de l’Évangile. La souffrance de Jésus, véritablement seul, nous apprend la signification la plus haute de l’« obéissance », tandis que les disciples en fuite témoignent qu’il est toujours possible, même pour des êtres faibles, de devenir « des serviteurs de Dieu » dans Son Royaume. Notre échec n’est pas la fin ; le Seigneur ouvre de nouveau un chemin. Voilà pourquoi l’appel le plus béni de la foi est d’entrer à Gethsémané avec Jésus et d’y prier. Dans ce lieu, nous adoptons une vie de disciple qui se résume à : « Non pas selon ma volonté, mais selon la tienne. » Telle est la clé de voûte du message que le pasteur David Jang prêche avec persistance, et la raison pour laquelle la nuit au Jardin de Gethsémané reste toujours d’actualité dans nos cœ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