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가 설립한 올리벳대학교는 지난 18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2024 박사 과정 콜로키움 종료 예배’를 개최했습니다.
이 예배에는 조나단 박 총장, 이요셉 캠퍼스 디렉터, 여러 교수진, 그리고 박사 과정 학생들이 함께 참석해, 콜로키움 기간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박사 과정 콜로키움은 학문적 교류와 연구를 위한 중요한 행사로, 교수진과 박사 과정 학생들이 모여 논문 발표와 세미나를 진행하고, 교수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학문적, 영적 성장을 도모합니다. 이번 콜로키움은 약 2주간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에게 학문적 통찰과 신앙적 경험을 제공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한편, 올리벳대학교는 장재형목사(영어명 데이비드 장)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2004년 3월 3일 미국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본교는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위치하며, 샌프란시스코 캠퍼스를 포함해 10여 개의 분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올리벳 연구기술단지, 기독교 도서관, IT 센터 등 다양한 시설을 통해 학문적 연구와 신앙적 발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소리 없이 방향을 틀어, 1453년 5월 29일 찬란했던 콘스탄티노플의 거대한 성벽이 마침내 무너져 내리던 그 비극적인 순간은 단순히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 영원히 종말을 고했다는 사실만을 세상에 알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때 신약 성경의 생명력 넘치는 초대 교회들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찬란한 비잔티움 기독교 문화가 꽃을 피우며 번성했던 그 거룩한 땅이,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지배 질서 안으로 속절없이 넘어가게 되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문명적 전환점이었습니다. 미국 올리벳대학교(Olivet University)의 설립자인 장재형 목사의 깊은 영적 설교는 바로 이 비극적인 함락의 장면에 멈춰 서지 않고,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신약 성경 속 고대 도시들의 구석구석에 선명하게 새겨진 사도 바울의 열정적인 선교 발자취와 살아 움직이는 복음의 눈부신 흔적들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단순한 과거의 유적지나 폐허가 된 낯선 지명을 답사하는 호기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연 살아 있는 복음이라는 거대한 능력이 어떻게 당시 타락한 도시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으며, 오늘날 왜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의 풍요 속에서도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뜨거운 첫사랑을 목숨 걸고 지켜내야만 하는지 우리의 영혼을 향해 엄숙하게 묻습니다.
오늘날 터키라는 지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대 아나톨리아의 거친 땅 위에는 찬란한 역사를 품은 에베소와 갈라디아, 라오디게아와 버가모, 비시디아 안디옥과 드로아, 골로새와 서머나 같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성경의 도시들이 눈부시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고대 도시들은 단순히 사도 바울이 거쳐 지나간 무대 배경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땀방울이 머물고 목숨을 건 교회가 세워졌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거울 같은 믿음과 세상의 썩어질 우상 숭배, 값없는 은혜와 인간의 교만한 자기 확신이 피 터지게 충돌했던 치열한 영적 전쟁터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 도시들을 깊이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먼 옛날의 낡은 지도를 펼쳐보는 지적 유희가 아니라,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위태로운 신앙이 과연 어떤 반석 위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정직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거룩한 성경 묵상입니다.
복음은 도시의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시 에베소는 거대한 상업의 물결과 음란한 종교 의식이 함께 뒤엉켜 소아시아의 경제와 문화를 쥐락펴락하던 중심 도시였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웅장하게 솟아 있던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은 온 도시의 명성과 막대한 경제적 부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각종 마술과 주술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끝없는 욕망을 교묘하게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영적 어둠의 요새 같은 곳에 약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머물며 생명의 복음을 거침없이 선포했고, 그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종교적 예배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생활과 먹고사는 생업의 현장까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복음이 도시의 거대한 우상 숭배 질서와 정면으로 거칠게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한 도시의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절대적으로 믿고 무엇을 삶의 가치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중심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목숨처럼 의지하던 수많은 마술책들을 한곳에 모아 불길 속에 던져 넣는 극적인 장면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오래되어 쓸모없어진 낡은 물건들을 정리해 없애는 단순한 행위 이상의 깊은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동안 자신들의 불안한 미래를 든든하게 붙들어 주리라 맹목적으로 믿었던 세상의 힘을 스스로 내려놓고, 이제는 삶의 중심을 오직 하나님께 새롭게 정하겠다는 철저하고도 두려운 회개의 확실한 표지였습니다. 진정한 복음이란 단순히 인간의 지식 창고에 고상한 문장 하나를 더 보태어 주는 관념적 지식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삶의 의지하던 잘못된 토대를 과감하게 바꾸고 내 인생의 걸어가는 방향을 하나님을 향해 완전히 돌이키게 만드는 강력한 영적 능력입니다.
이방 땅 갈라디아에서는 율법과 믿음, 눈에 보이는 할례와 영원한 구원의 문제가 교회 안팎의 가장 뜨거운 중심 질문으로 거세게 떠올랐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자신의 훌륭한 외적인 종교적 표지나 썩어질 전통을 앞세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없으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만 값없이 받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목소리 높여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에게 또 다른 무거운 종교적 규범이나 굴레를 억지로 부과하는 길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자기 힘으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죄인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보좌 앞에 엎드리게 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갈라디아의 수많은 교회들은 참된 복음이 인간의 좁은 민족적 편견과 관습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어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구원의 소식임을 온 세상에 보여 주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역사적인 제1차 선교 여행 도중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문이 활짝 넓어진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드로아에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케도니아를 향한 전혀 새로운 선교의 길이 극적으로 열렸고, 바울은 자신이 익숙하게 머물던 안식의 영역을 과감히 떠나 푸른 바다를 건너는 모험에 나섰습니다.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의 성도들은 서로에게 보내진 편지를 기쁘게 나누어 읽으며 멀리 떨어진 한 교회가 받은 생명의 말씀을 이웃 공동체와 아낌없이 공유했습니다. 참된 복음은 세상의 도시마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각각 세워나갔지만, 결코 그 교회들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외딴섬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로 촘촘히 엮어 놓았습니다.
성령이 머문 자리에는 완전히 다른 삶의 문화가 자라났다
드로아에서 시작되어 바다를 건넌 선교의 발걸음은 마침내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습니다. 당시 강력한 로마의 식민 도시였던 빌립보에서 바울은 영광스러운 유럽 대륙의 첫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그 거룩한 시작점에는 멀리서 온 자주 옷감 장사 루디아라는 신실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입을 통해 전해진 생명의 말씀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인 루디아는 사랑하는 온 가족과 함께 기쁨으로 세례를 받은 즉시, 자신의 개인적인 집을 믿음의 공동체가 모이는 거룩한 예배의 자리로 아낌없이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거대한 석조 제구나 화려하게 치장된 웅장한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한 사람의 뜨거운 마음과 활짝 열린 평범한 가정집에서 참된 교회가 비로소 시작된 것입니다.
차디찬 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 갇힌 채 온몸에 쇠사슬이 묶여 있으면서도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거룩한 하나님을 향해 큰 목소리로 불러 올렸던 감격적인 찬송은, 빌립보 성도들이 가진 신앙의 깊이가 과연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감동적인 명장면입니다. 삶의 고난과 핍박이 완전히 사라진 안전한 뒤에야 비로소 안도하며 부른 노래가 아니라, 숨이 막히는 고난의 한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눈물로 찬송을 올려드렸습니다. 그 거룩한 찬송의 소리는 두려움과 절망이 짙게 지배하던 어두운 감옥을 단숨에 하늘의 영광이 가득한 예배의 자리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가 깊이 조명하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는 단순히 순간적으로 감정만 고조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세상의 환경에 이끌려 무너너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도록 인간의 영혼의 중심을 새롭게 붙들어 주는 하늘의 힘입니다.
빌립보 교회 공동체는 서로를 향해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섬기고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라는 거룩한 가르송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헛된 영광을 최고로 추구하던 당시의 각박한 문화 속에서, 내 것을 내려놓고 연약한 자를 돌보며 가진 소유를 기쁘게 나누어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삶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분명히 낯설고 신비로운 질서였습니다. 참된 복음은 성도들을 세상의 도시에서 도망쳐 외딴 산속에 홀로 숨어 살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악이 가득한 도시 한복판에 당당히 머물면서도, 세상의 방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의지적으로 세워 나갔습니다.
에베소의 뜨거운 변화 역시 단순한 외형적 종교 의식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우상과 헛된 마술을 과감히 내버린 사람들은 성령의 다스림 안에서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차근차근 배워 나갔고, 눈에 보이는 썩어질 물질적 욕망보다 영원한 사랑과 평화를 삶의 목적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갔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사용했던 십자가와 물고기, 선한 양과 포도나무 같은 다양한 신앙의 상징들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믿음의 언어가 되었고, 이후의 기독교 미술과 성화, 웅장한 교회 건축에도 깊은 기독교적 주제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솜씨로 빚어낸 미술과 건축의 화려한 변화보다 훨씬 더 앞서서 반드시 일어나야 했던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바로 완악했던 사람의 마음과 상처 입은 관계의 근본적인 회복이었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세상의 풍요 속에서도 영적으로 가난해진다
과거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었던 거룩한 도시였다고 해서, 그곳의 뜨거운 믿음이 세월이 흘러도 저절로 영원히 보존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에베소 교회는 수많은 영적 수고와 끝까지 견뎌내는 인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주님을 향한 처음의 뜨거운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뼈아픈 책망을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보기에 바른 일들을 계속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왜 내가 이 거룩한 일을 처음 시작했는지 그 초심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고, 교회의 거대한 외형과 전통을 악착같이 지켜내고 있으면서도 그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중심에서 진정한 사랑이 차갑게 식어 사라질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였습니다.
당시 상업과 눈부신 금융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라오디게아 교회 역시 자신들의 영적 빈곤을 깨닫지 못한 채 미지근한 신앙 상태에 머물러 매서운 책망을 받았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가진 것이 많고 부유하다는 객관적사실이 결코 그 영혼의 영원한 충만함을 조금도 보증해 주지 않았으며,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오만한 자기 확신은 오히려 자신들이 얼마나 눈멀고 벌거벗었는지 영적 상태를 전혀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겪었던 첫사랑의 상실과 라오디게아 교회가 빠졌던 미지근한 영적 나태함은 겉보기에는 서로 전혀 다른 모습처럼 비쳐지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모두 살아 있는 복음이 내 삶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한참 밀려나 버린 비참한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버가모는 온 세상에 황제 숭배와 타락한 우상 숭배가 거세게 몰아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믿음을 끝까지 지킨 거룩한 이들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공동체 내부에는 서서히 도덕적 타락과 잘못된 가르침의 누룩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고난의 상징이었던 서머나 교회는 극심한 세상의 박해와 헐벗은 환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충성을 끝까지 지키라는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한 교회는 세상의 썩어질 풍요 속에서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버렸고, 다른 교회는 매서운 환난의 불길 속에서도 오히려 영적으로 더 환하게 깨어 있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깊이와 영적 가치는 그 도시가 누리는 물질적 번영이나 삶의 편안함의 크기로 결코 측정될 수 없습니다.
이 엄숙한 성경의 기록들은 고대 교회들의 과거 잘못을 앉아서 차갑게 평가하고 심판하기 위해 주어진 인류의 역사 교과서가 아닙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교회와 우리 각자의 성도가 거울처럼 자신의 내면을 깊이 비추어 보게 만드는 영적 거울입니다. 내가 처음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복음을 들었을 때 가슴 뛰던 그 뜨거운 사랑이, 어느덧 메마른 의무감만 앙상하게 남은 율법적 습관으로 굳어져 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일상의 풍요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감사보다 영적 무감각과 교만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이 주는 외부의 커다란 위협보다 내 안의 영적 타협이 훨씬 더 깊은 영혼의 균열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묻게 됩니다. 비록 세상의 화려한 도시는 결국 언젠가 흉물스러운 폐허로 무너져 내릴 수 있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당부하신 처음 사랑을 끝까지 회복하라는 그 거룩한 말씀의 생명력은 결코 영원히 폐허가 되지 않습니다.
제국의 거대한 성벽이 무너진 뒤에도 복음의 영원한 질문은 남는다
11세기 말 이후 거친 아나톨리아의 역사는 참으로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를 맞이했습니다. 1071년에 벌어진 치열한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용맹한 셀주크 투르크족이 비잔티움 제국의 방어 군대를 결정적으로 물리친 이후, 비잔티움은 동부의 광활한 영토를 점차 속절없이 잃어버렸습니다. 서유럽의 십자군 전쟁은 잃어버린 기독교 세력의 영광을 기적적으로 회복하겠다는 거창한 명목으로 시작되었으나, 1204년에 벌어진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무자비한 점령과 약탈은 오히려 같은 기독교 제국을 치명적으로 크게 약화시키는 자멸의 결과가 되었습니다. 1261년에 비록 수도를 우여곡절 끝에 다시 되찾았다고 할지라도 이미 비잔티움의 경제적 기반과 군사적 방어력은 깊이 쇠잔해진 상태였습니다.
13세기 말부터는 강력한 오스만 투르크족이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 전체에서 거침없이 세력을 넓혀 나갔고, 비잔티움 제국의 남은 영토는 콘스탄티노플이라는 거대한 수도와 그 주변의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지역들로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마침내 역사적인 1453년, 메흐메트 2세의 정예 군대가 당시 최첨단 무기였던 거대한 대포들을 대거 동원하여 난공불락의 성벽을 무참히 무너뜨리면서 비잔티움 제국은 천 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이었던 웅장한 성 소피아 대성당이 하루아침에 이슬람의 사원으로 극적으로 전환된 역사적 사건은, 아나톨리아 땅의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중심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이고 상징적인 표지가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시행했던 독특한 밀레트 제도 아래에서 소수의 기독교 공동체들은 종교적으로 제한적인 자치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으나, 사회의 거대한 중심무대에서는 점차 밀려나 주변부로 전락했습니다. 한때 사도 바울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힘차게 전파하고 수많은 초대 교회가 눈부시게 성장했던 그 거룩한 땅은, 긴 세월의 흐름을 지나 이슬람 중심의 지역으로 완전히 변모했습니다. 이 엄숙한 역사의 흐름은 교회의 외적인 거대한 규모나 화려한 정치적 힘이 결코 그 안에 담긴 믿음을 영원히 보존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뼈저리게 가르쳐 줍니다. 인간이 세운 제국과 웅장한 건축물은 당대에 너무나 강하고 견고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신앙의 거룩한 중심도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장재형 목사가 신약 성경의 고대 도시들과 터키 기독교의 기나긴 역사를 언제나 함께 나란히 바라보는 까닭은, 단순히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을 막연히 그리워하며 한탄하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에베소 성도들의 처절한 회개와 빌립보 감옥의 감격스러운 찬송, 서머나 교회의 눈물겨운 인내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구체적인 믿음의 현장 안으로 생생하게 다시 가져오기 위해서입니다. 살아 있는 복음은 단순히 어느 시대 어느 도시에 한때 머물렀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 저절로 보존되지 않습니다. 매 시대마다, 매 순간마다 누군가가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다시 듣고, 그동안 잘못 의지해 왔던 세상의 헛된 것들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오직 주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의 좁은 길을 기꺼이 선택할 때 비로소 그 복음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현재가 됩니다.
에베소의 차갑게 부서진 돌기둥들과 라오디게아의 쓸쓸한 폐허,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역사를 품은 낡은 성벽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아주 오랜 옛날의 역사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없는 돌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주는 가장 깊고 날카로운 질문은 결코 지나간 과거의 유적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지금 내 삶의 가장 깊은 중심에는 과연 무엇이 첫 자리를 차지하고 놓여 있으며, 내가 속해 있는 이 믿음의 공동체는 과연 어떤 영적 문화를 매일 세상 속에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과연 복음이 쓸쓸히 스쳐 지나간 과거의 도시들의 낡은 흔적만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구경꾼에 불과한가요, 아니면 오늘 이 거친 세상의 한복판에서 다시 한번 첫사랑을 거룩하게 선택하며 주님의 복음이 새롭게 머물러 살아 숨 쉴 또 하나의 거룩한 도시가 되어 가고 있습니까.
체코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단편 《법 앞에서》(Vor dem Gesetz)에는 성문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도 문지기의 위엄에 눌려 평생 동안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문턱에서 허망하게 늙어 죽어간 한 시골 사람의 가슴 아픈 비극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성경 누가복음 16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이와는 정반대이지만 한층 더 비극적인 신앙적 현실을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이 비유 속에서는 문 안에 거하는 부자가 자신의 집 대문 바로 앞에 누워 있는 한 가난한 인간의 절규와 고통을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은 채 완고하게 외면합니다. 한 울타리와 하나의 대문을 사이에 두고, 한 사람은 매일같이 화려한 자색 옷을 입고 입안이 즐거운 풍성한 잔치를 즐겼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 대문 밑바닥에 엎드려 상 위에서 떨어지는 보잘것없는 부스러기라도 얻어먹기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불과 몇 걸음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가까웠지만, 그 영혼의 사이에는 생전에도,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끝내 건너가지 못한 깊고 어두운 마음의 간격이 무섭게 놓여 있었습니다.
미국 올리벳대학교(Olivet University)의 설립자인 장재형 목사는 바로 이 완전히 닫혀 버린 시선과 냉담한 마음을 통찰하며, 사람의 영혼을 영원한 멸망으로 끌고 가는 무서운 ‘무감각’이라는 영적 질병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곳에서 조용히 시작되는지를 엄중하게 묻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단순히 지상에서의 물질적 부유함 자체를 악으로 정죄하거나, 혹은 가난하고 병든 형편 그 자체를 천국 구원의 자동적인 조건으로 내세우는 세속적인 사회학적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이 강해 설교가 강력하게 붙드는 신학적 핵심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잠시 맡겨주신 재물과 진리의 말씀, 그리고 섬김의 기회를 과연 어떠한 마음으로 사용했는가, 그리고 내 집 문앞에 놓인 타인의 처절한 고통을 십자가적 사랑의 책임으로 성실히 받아들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복음은 죽음 이후에 펼쳐질 영원한 세계를 분명히 증언하지만, 그 영원함에 대한 소망은 결코 성도가 살아가는 현재의 일상과 이웃을 향한 의무를 헛되게 비워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엄중한 복음은 “오늘 너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으며, 지금 네 곁에 있는 누구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 것인가?”를 이전보다 훨씬 더 무겁고 엄숙하게 묻고 있습니다.
1. 닫힌 문 앞에서 복음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묻는다 (누가복음 16:1~12, 19~23)
누가복음 16장 전체에 흐르는 두 가지 핵심 비유, 곧 앞부분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와 뒷부분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결코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영적 줄기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선 청지기의 비유가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위탁받은 재물과 유한한 삶의 기회를 다가올 영원을 위해 어떻게 지혜롭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신학적 도전이라면, 뒤이어 나오는 부자의 비유는 그 모든 자원을 오직 자기 자신의 육체적 만족과 이기적인 안일함을 위해서만 소진해 버린 인류의 종말론적 비극을 참혹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소유하고 누리는 그 모든 시간과 재능, 물질은 궁극적으로 내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인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청지기적 자산이며, 참된 청지기의 지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자원을 장차 맞이할 영원의 때를 위해 가장 가치 있게 선용하는 데서 비로소 증명됩니다.
예수님께 불의한 청지기가 칭찬을 받았던 이유는 그가 행한 도덕적 부정함이나 계산적인 속임수가 선으로 미화되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누리던 위치와 권한이 언젠가 반드시 끝날 날이 온다는 임박한 사실을 정직하게 자각하고,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기회를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데 주저 없이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이 청지기의 기민한 모습은, 마치 자기가 가진 물질과 수명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소유를 움켜쥐고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미련함과 정반대되는 종말론적 지혜를 신선하게 비추어 줍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시간과 누리는 재물, 그리고 수많은 섬김의 기회에는 반드시 주님 앞에서의 셈함과 결산이 기다리고 있으며, 진실한 청지기의 믿음은 바로 이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는 깨어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반면, 비유 속 부자가 하나님 앞에서 참혹한 책망과 심판을 받게 된 이유 역시 단지 그가 지상에서 남들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입었던 화려한 자색 옷과 고운 베옷, 그리고 날마다 쉬지 않고 이어지던 호사스러운 잔치의 열기가 그의 영적인 눈과 귀를 어둡게 가리어, 정작 자기 집 대문 앞에 쓰러져 있던 나사로의 처참한 고통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문 앞의 이웃을 도울 만한 물질적 능력이나 여력이 없었던 무능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바로 곁에서 신음하는 인간의 고통을 자신의 거룩한 책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철저한 무감각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가졌던 외형적 물질의 부유함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깊은 영적 문제는, 바로 그의 마음의 문이 이웃과 하나님을 향해 무섭게 닫혀 있었다는 신앙적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가난한 자는 무조건 천국에 들어가고, 부자는 무조건 음부의 불꽃 속에 떨어진다”는 식의 입체감 없는 단순한 도식으로 오해하여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은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소유의 절대적인 크기보다, 그 소유를 대하는 영혼의 중심 태도와 나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사랑과 자비를 성실히 실천했는가를 묻고 계십니다. 부자가 지었던 결정적인 죄는 풍요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풍요를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잔치 안에 봉인해 두고,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이웃에게 은혜의 줄기를 흘려보내지 않은 영적 이기심과 무관심에 있었습니다. 깊은 성경 묵상은 타인의 비극적인 운명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도리어 그동안 내가 냉정하게 외면해 왔던 내 삶의 대문 앞을 겸허히 바라보게 만드는 은혜의 거울이 됩니다.
2. 하나님이 맡겨주신 신령한 부요가 은혜의 유통 채널이 될 때 (누가복음 12:48)
장재형 목사는 이 깊은 강해 설교를 통해 ‘부요함’이 가지는 신학적 의미를 단순히 눈에 보이는 통장 잔고나 물질적 재산에만 한정 짓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씀과 깊이 있는 신학적 지식, 언제든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세련된 환경, 그리고 충만한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와 신앙의 자유를 넉넉히 누리고 있는 현대의 성도들 역시 영적으로는 엄청난 특권을 부여받은 ‘영적 부자’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신령한 은혜와 진리가 오직 자기 자신의 신앙적 위안과 자기가 속한 소그룹 공동체의 이기적인 만족 안에서만 맴돌게 된다면, 그 풍성함は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강물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담장 밖의 주린 이웃들을 막아서는 높은 차단벽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 많이 받았다는 거룩한 사실은 결코 남들 앞에 내세울 자랑의 근거가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야 할 무거운 사랑과 나눔의 책임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영적 자기중심성’은, 겉으로 노출되는 세속적인 탐욕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감추어져 있어서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풍성한 말씀을 듣고 감복하면서도 그것을 오직 자기 자신의 영적 안정과 내면의 평안만을 위해 소비하는 데 그친다면, 그 신앙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깊고 고결해 보일지 몰랐어도 정작 주린 이웃과 열방을 향해서는 그 어떤 생명의 열매도 건네지 못하는 거친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과 은혜를 풍성히 누린다는 것은 그것을 나만의 영적 창고에 쌓아둘 자격을 얻었다는 뜻이 결코 아니며, 도리어 더 먼 곳, 더 어두운 곳으로 진리의 빛을 흘려보내야 할 거룩한 사명을 맡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깨달은 신학적 통찰 역시 누군가를 겸손히 섬기고 세워주는 진실한 사랑과 순종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언어로 재誕生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나눔은, 내가 쓰고 남은 잉여 자원을 시혜적으로 던져주는 세속적 동정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주리고 차가운 길거리에 방치된 이들을 따뜻하게 돌보는 외형적 자비의 행위는 물론이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심각하게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진리를 깊이 배워 영적으로 바로 서며, 다시 또 다른 연약한 이들을 섬길 수 있는 신실한 주님의 제자로 성장하도록 온전히 세워주는 영적 투자까지를 포함합니다. 이 설교가 영적 기근에 허덕이는 오지의 현장에 기독교 서적과 진리의 자료들을 정성껏 모아 보내는 노고를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풍요로운 환경에 있는 누군가에게 책 한 권은 소소해 보일지 몰라도, 진리의 양식이 턱없이 부족한 오지의 사역자에게는 닫혀 있던 하늘길을 활짝 열어주는 생명의 손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준엄한 신학적 질문은 오늘날 풍요를 누리는 수많은 교회와 신앙 공동체 앞에도 동일하게 정면으로 서 있습니다. 진리의 자료와 깊이 있는 가르침, 그리고 따뜻한 교제의 기회가 차고 넘치는 선진적 환경에서 그것을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소비하는 동안, 지구 반대편이나 우리 곁의 어두운 그늘 밑에서는 단 한 권의 성경책과 단 한 번의 진실한 가르침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가난한 영혼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참된 사랑은 단순히 일시적인 결핍을 미봉책으로 덮어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배워 인격적으로 회복되고, 나아가 또 다른 연약한 이들을 가슴에 품고 섬길 수 있는 사역자로 일어설 때까지 곁에서 인내로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신령한 은혜를 나누어 또 다른 거룩한 섬김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세워나가는 것이야말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청지기의 깊고 긴 호흡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 손 안에 오롯이 소유되는 순간보다, 나를 통과하여 낮은 곳으로 거침없이 흘러가는 그 거룩한 순간에 비로소 본래의 영롱한 빛을 세상 앞에 드러냅니다. 우리의 참된 믿음과 회개는 얼마나 수많은 말씀을 머리로 듣고 기억하느냐로만 측정되지 않으며, 내가 들은 그 진리의 말씀이 과연 주린 이웃의 굶주림과 외로움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덜어주었는가 하는 영적 현장에서 비로소 매섭게 시험받습니다. 참된 사랑은 그저 내 마음속의 따뜻한 감정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성도의 소중한 시간과 재물, 지식과 입술을 실제로 움직여 고통받는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거룩한 순종은 거창한 결심이나 구호에 있지 않고, 오늘 내 곁에 찾아온 이웃의 처절한 필요를 더 이상 남의 일로 방관하거나 미루지 않는 실천에서부터 힘차게 시작됩니다.
3. 세속적 표적보다 가까운 말씀, 회개는 오직 오늘 시작된다 (누가복음 16:27~31)
음부의 참혹한 불꽃 속에서 신음하던 부자는, 아브라함을 향해 제발 죽은 나사로를 지상에 남아 있는 자신의 다섯 형제들에게 보내어 그들이 이 끔찍한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달라고 간절히 애원합니다. 그러나 그 절박한 간청을 향한 아브라함의 단호한 대답은, 그들에게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바로 그 들려오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죽은 자가 무덤을 깨고 살아 돌아오는 초자연적이고 극적인 표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진리의 말씀 앞에서 이미 완고하게 굳어버린 인간의 패역한 마음은 결코 자동으로 돌이켜지지 않는다는 엄중한 진리입니다. 참된 회개는 눈을 사로잡는 새로운 기적이나 신비한 표적을 끊임없이 기다리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삶에 성경으로 가까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겸허히 듣고 ‘지금 바로’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결단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이 경악스러운 대목は,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습관적으로 늘어놓던 영적인 핑계와 게으름을 조용하지만 완벽하게 벗겨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게 더 눈에 보이는 명확한 증거가 나타나면, 내 삶에 더 강렬한 신앙적 체험이 주어지면, 혹은 내 여건이 조금 더 특별해지면 그때 가서 온전히 순종하겠다”고 생각하며 결단을 차일피일 미루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의 삶과 성경 속에 충분히 가까이 다가와 있으며, 우리가 그동안 모른 척 미루어 두었던 사랑의 책임과 섬김의 의무 역시 이미 우리 눈앞의 대문 앞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나를 인도할 진리의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빛나는 진리 앞에서 자기의 이기적인 자아를 깨뜨리고 마음을 활짝 열려는 성도의 겸손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음부의 부자가 아브라함을 향해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절규하며 호소하는 장면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신학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가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의 혀는 자신의 대문 앞에 누워 신음하던 나사로를 따뜻하게 부르거나, 그를 불쌍히 여겨 도우라고 하인들에게 지시하는 자비로운 말을 단 한 번도 내뱉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피폐한 영혼을 살릴 수 있었던 그의 혀가 지상에서 완고하게 침묵한 뒤, 그는 마침내 영원한 심판의 불길 속에서 자기 자신의 혀를 위한 작은 자비를 구하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마음속으로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 감정적 눈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입술의 말이 누구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으며, 누구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있고, 누구를 실제로 살리는 자비의 도구로 쓰이고 있는가를 성령 안에서 새롭게 정립하는 실천입니다.
이 땅에서의 호흡이 끝난 죽음 뒤에는, 천국과 음부라는 두 자리 사이에 결코 넘어가거나 돌아올 수 없는 거대한 영적 구렁(가스마)이 무섭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영원한 단절은 인간의 삶이 끝나는 순간에 갑자기 도래한 낯선 운명이라기보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매일같이 미루어 왔던 순종의 거부와 끝내 열지 않았던 마음의 닫힌 대문이 그대로 영원 속에서 굳어져 버린 필연적인 결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친구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고, 세상 물질에 대한 내 안의 질긴 집착을 믿음으로 풀어내며, 그동안 외면했던 이웃을 향해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골든타임은 오직 호흡이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서 진실하게 회개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심판의 두려움에 앞서 우리에게 아직 거두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무한한 “영원한 소망”이요 참된 은혜입니다.
4. 영원을 믿는 참된 성도는 오늘 내 곁의 문을 연다 (마태복음 25:40)
비유의 결말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지상적 자리가 죽음 이후 완전히 뒤바뀌는 반전의 구조는, 지금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형편이나 물질적 조건이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판단이 결코 아님을 명백히 증언합니다. 지상에서 나사로가 겪었던 처절한 고난과 질병이 영원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기 잔치에 취해 있던 부자의 화려한 쾌락 역시 영원할 수 없었습니다. 우주와 역사의 마침표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억울함과 불의를 마침내 올바르게 판단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이 찬란한 종말론적 소망은, 오늘 고통받는 자를 기쁨으로 붙들어 주며, 동시에 풍족함 속에서 자만하는 자를 겸손하게 낮추는 영적 평형수가 됩니다. 영원을 진실로 믿는 성도는 현실의 삶을 가볍게 여기거나 도피하지 않으며, 도리어 오늘 나에게 주어진 매순간의 선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더 무겁고 엄중한 영적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 하늘의 소망은 우리가 바치는 선한 수고와 눈물의 헌신이 당장 눈앞의 세속적인 보상이나 칭찬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조차도, 십자가의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 영혼을 단단히 지탱해 줍니다. 순전한 복음으로 한 영혼의 아픔을 돌보고, 진리의 말씀으로 그를 세우며, 나에게 주어진 물질과 시간을 아낌없이 나누는 거룩한 섬김은 세상의 타산적인 계산법 안에서는 심히 작고 무모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의 강해 설교는, 지상의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성도의 은밀한 수고와 눈물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단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온전히 기억하신다는 찬란한 믿음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인도합니다. 하늘의 영원한 보상을 기쁨으로 바라보는 성도는 이 땅의 고통에 무심해지거나 냉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님의 마음을 품고 고통받는 이웃의 곁을 더 오래 견디며 성실하게 지켜내는 사람이 됩니다.
장재형 목사 설교에 도도히 흐르는 종말론적 긴박감은, 결코 성도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조장하려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도리어 아직 우리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영적으로 깊이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나에게 맡겨진 사랑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고, 내 손에 쥐어진 작은 것을 가난한 이들과 기꺼이 나누며, 세상으로 향했던 완고한 마음을 십자가 앞으로 돌이킬 수 있는 성도의 골든타임은 ‘언젠가’라는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오직 ‘오늘’입니다.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의 최종 결산이 찾아오기 전, 우리에게 허락된 은혜의 유예 시간이며, 오늘도 내가 주님의 말씀에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찬란한 소망의 증거입니다. 영원을 향한 참된 믿음은 눈앞의 현실을 버리고 떠나는 도피적 시선이 아니라, 오직 현실 속에서 내게 맡겨진 한 영혼의 아픔을 끝까지 놓지 않고 가슴에 품는 거룩한 사랑의 시선입니다.
결어: 영원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길
영원을 사모하며 준비한다는 것은 결코 성도에게 허락된 오늘이라는 소중한 일상을 버리거나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오늘 내 삶의 대문 앞에 놓여 있는 거룩한 사랑의 책임을 더 늦기 전에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거룩한 결단입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이 내게 위탁하신 재물과 진리의 말씀, 그리고 신령한 재능들을 그저 나만의 화려한 잔치를 꾸미기 위한 장식품으로 움켜쥐고 있습니까, 아니면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려내는 은혜의 통로로 겸손히 내어놓고 있습니까?”
지금 나의 삶과 마음의 대문 밖에는 과연 누구의 간절한 기다림과 눈물이 오랫동안 쌓여가고 있으며, 나는 과연 언제 그 닫힌 문을 열고 주님의 사랑으로 다가갈 것입니까?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묵상하는 이 거룩한 계절, 내 안의 영적 무감각과 이기적인 자아를 십자가 앞에 완전히 깨뜨리고, 내 대문 앞에 쓰러져 있는 나사로를 향해 따뜻한 은혜의 손을 내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영원의 눈을 가지고 오늘 내 앞의 이웃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 때, 우리를 온전히 덮으시는 주님의 한없는 은혜와 평강이 우리의 삶과 공동체 가운데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으로 도강하게 될 것입니다.
] Dans le classique de John Bunyan, Le Voyage du pèlerin, le pèlerin avance sur le chemin étroit sans jamais interrompre sa marche, malgré d’innombrables tentations et épreuves. S’il a pu continuer à se discipliner et à se fortifier en traversant le désert aride, c’est pour une seule raison : son regard était fixé sur la cité céleste éternelle qui se trouvait au bout de sa course. Ce parcours du pèlerin nous montre pourquoi la discipline de la piété est nécessaire pour nous qui cherchons le chemin de la vraie foi au milieu des grands courants du monde. L’exposé du pasteur David Jang, qui médite sur l’essence du ministère pastoral à partir de 1 Timothée 4, met précisément en lumière l’attitude intérieure et l’autorité spirituelle que doivent posséder ceux qui marchent vers cette espérance éternelle.
La discipline spirituelle de l’âme qui place son espérance dans le Dieu vivant
L’essence de l’encouragement et de l’enseignement que l’apôtre Paul a transmis à Timothée, son fils spirituel, en lui confiant la grande communauté de l’Église d’Éphèse, se trouve dans la première épître à Timothée. Cette lettre est comme un principe fondamental du ministère pastoral. Si la première mission d’un dirigeant spirituel est de garder la vérité, la tâche suivante, tout aussi importante, consiste à aider chaque croyant à former en lui une sainteté intérieure. À une époque où les murmures trompeurs des faux docteurs se répandent de toutes parts, le véritable chrétien doit développer des habitudes spirituelles qui le distinguent du monde. Si l’exercice corporel n’apporte qu’un certain profit sur cette terre, l’exercice saint qui traverse toute la vie possède, lui, une utilité qui concerne non seulement la vie présente, mais aussi la promesse de la vie éternelle à venir.
La raison fondamentale pour laquelle nous éveillons chaque jour le silence de l’aube, bâtissons un autel dans les larmes et luttons pour préserver la sainteté au milieu des violentes tentations du monde, c’est que notre espérance ultime ne se trouve pas dans la gloire limitée de cette terre. L’abondance matérielle ou la réussite mondaine, comme les tentations auxquelles Jésus-Christ fut confronté en Matthieu 4, peuvent au contraire devenir des séductions dangereuses qui enchaînent l’âme. Puisque l’être humain ne vit jamais de pain seulement, mais de la parole de vie qui sort de la bouche de Dieu, l’espérance du véritable croyant doit être fixée uniquement sur le Dieu vivant. L’entraînement quotidien fondé sur les valeurs éternelles est l’investissement le plus précieux auquel on puisse consacrer sa vie sans réserve ; il est aussi le secret pour recevoir une grande louange le jour où nous nous tiendrons devant le Seigneur.
Au-delà de l’autoritarisme : devenir un bel exemple en cinq aspects de la vie
L’apôtre Paul adresse à Timothée, établi comme responsable de l’Église d’Éphèse, un commandement à la fois ferme et solennel : que personne ne le méprise à cause de sa jeunesse. Cet enseignement, proclamé avec vigueur, confère une profonde responsabilité à tous les chrétiens qui désirent restaurer un leadership spirituel dans le monde. Toutefois, l’erreur la plus fatale que l’on peut facilement commettre ici consiste à tomber dans un autoritarisme hypocrite, cherchant à établir son autorité par une position extérieure ou une attitude oppressive. La véritable autorité spirituelle intérieure ne découle pas d’un attachement orgueilleux à s’élever soi-même, mais d’une prudence qui refuse les paroles irréfléchies, d’une attitude qui évite toute légèreté et d’un caractère humble qui sait s’abaisser.
Le seul moyen de ne pas être méprisé consiste à vivre avec persévérance comme un modèle pour les croyants dans cinq vertus concrètes : la parole, la conduite, l’amour, la foi et la pureté. Nous devons nous souvenir, à travers l’avertissement de Jacques 3 et la souffrance de l’homme riche en Luc 16, qu’une petite faute commise par la bouche et la langue peut ébranler le gouvernail du grand navire qu’est la vie, et finalement conduire à la ruine. À une époque où tous vacillent et se découragent, il faut garder son centre par une foi solide comme le roc, et pratiquer un amour large qui ne hait ni ne juge autrui sans fondement. La pureté morale, qui consiste à se vider soi-même pour devenir un vase saint et précieux, propre à l’usage du Maître, est une condition indispensable pour être employé à de bonnes œuvres.
La flamme du saint ministère qui lit, exhorte et enseigne la Parole
Une fois l’autorité spirituelle établie par la piété intérieure et l’exemple de vie, il faut désormais se consacrer pleinement à l’œuvre essentielle qui ranime les croyants et reconstruit la communauté. Les trois axes fondamentaux du ministère pastoral présentés par l’Écriture sont la lecture publique de la Parole de Dieu, l’exhortation chaleureuse adressée aux croyants fatigués, et l’enseignement clair de la connaissance de la vérité. De même que l’Église primitive a établi une sainte tradition centrée sur la Parole en lisant à haute voix, dans le lieu du culte, la Torah, les prophètes et les lettres des apôtres, nous devons nous aussi avancer vers le lieu sacré de la méditation biblique. Comme le ver à soie doit manger et digérer avec diligence les feuilles rugueuses du mûrier pour produire enfin un fil de soie magnifique, l’homme de Dieu ne peut porter les fruits d’une vie sainte que lorsqu’il se nourrit pleinement de la Parole spirituelle venue du ciel.
De plus, le ministère qui console, encourage et exhorte les âmes des croyants abattus afin qu’ils se relèvent est une expression concrète de l’amour que l’Église doit nécessairement pratiquer. Plus encore, l’Église ne doit pas se contenter de proclamer la vérité de manière unilatérale ; elle doit devenir une grande maison d’apprentissage où l’on étudie et approfondit la loi du royaume de Dieu. Nous nous souvenons de l’histoire de Jésus-Christ parcourant toute la Galilée, enseignant et annonçant le véritable Évangile du ciel, tandis que des foules nombreuses venaient à la lumière de cette vie. Ainsi, lorsque la communauté de l’Église enseigne avec diligence la Parole et partage avec les croyants ses profondes perspectives théologiques, de nombreuses âmes plongées dans les ténèbres peuvent enfin recevoir une vie nouvelle et revenir à Dieu ; c’est alors que s’accomplit la grande œuvre de restauration.
Réveiller le don intérieur et devenir un canal de bénédiction qui sauve soi-même et le monde
L’apôtre Paul exhorte avec force son disciple bien-aimé Timothée à ne pas négliger le don spirituel de Dieu déjà répandu en lui par l’imposition des mains et la parole prophétique d’encouragement, mais à le raviver comme un feu. Ce passage est la confession humble de l’apôtre selon laquelle la source de toute bénédiction et de toute puissance spirituelle ne se trouve ni dans les conditions humaines ni dans les rites extérieurs, mais uniquement dans le Dieu vivant. Comme le met clairement en lumière la prédication du pasteur David Jang, nous avons besoin d’un éveil spirituel qui nous pousse à ne pas laisser à l’abandon les dons et l’appel spirituels cachés en nous, ni à les laisser s’émousser, mais à les rallumer ardemment chaque jour. Le croyant doit se souvenir de la grâce de la croix et de la puissance de l’Évangile qui lui ont été accordées, et s’investir de tout son cœur en toutes choses afin de manifester clairement à tous sa maturité spirituelle et son progrès intérieur.
Le processus par lequel un chrétien se tient droit dans la vérité et grandit spirituellement n’est pas seulement une question de sanctification personnelle ; c’est un enjeu crucial dont dépend la vie de toute la communauté. Celui qui donne l’exemple par ses paroles et sa conduite, et qui consacre toute l’énergie de sa vie à lire, exhorter et enseigner la Parole avec diligence, finit par connaître une véritable croissance spirituelle. Cette profonde méditation biblique du pasteur David Jang nous rappelle cette vérité : lorsque nous persévérons jusqu’au bout dans une telle attitude de piété, nous ne nous protégeons pas seulement nous-mêmes, mais nous devenons aussi un canal béni qui conduit sur le chemin du salut toutes les âmes qui nous écoutent. En gravant profondément ce saint défi dans notre cœur, nous devons marcher avec constance sur le chemin de la piété spirituelle, en espérant que chacun de nos jours devienne un sacrifice vivant et saint offert au Dieu vivant. Où plaçons-nous donc aujourd’hui notre espérance, et par quel exercice spirituel quotidien sommes-nous façonnés pour devenir des vases du Seigneur ?
En el clásico de John Bunyan, El progreso del peregrino, el peregrino camina por el sendero estrecho sin detener jamás sus pasos, aun en medio de innumerables tentaciones y pruebas. La razón por la que pudo atravesar el áspero desierto, disciplinarse constantemente y seguir adelante fue una sola: tenía la mirada fija en la eterna ciudad celestial que se alzaba al final de su camino. Este itinerario del peregrino nos enseña por qué necesitamos la disciplina de la piedad quienes buscamos el verdadero camino de la fe en medio de la poderosa corriente del mundo. La exposición del pastor David Jang, basada en 1 Timoteo 4 y centrada en la esencia del ministerio pastoral, señala con precisión cuál debe ser la actitud interior y la autoridad espiritual de quienes caminan hacia esta esperanza eterna.
La disciplina espiritual del alma que pone su esperanza en el Dios vivo
La Primera Epístola a Timoteo contiene la esencia del ánimo y la enseñanza que el apóstol Pablo transmitió a su hijo espiritual Timoteo al confiarle la gran comunidad de la iglesia de Éfeso. Esta carta puede considerarse como un principio fundamental del ministerio pastoral. Si la primera misión que debe asumir un líder espiritual es defender la verdad, la siguiente tarea de gran importancia consiste en ayudar a cada creyente a formar una santidad interior. En una época en la que abundan los susurros engañosos de falsos maestros, el verdadero cristiano debe formar hábitos espirituales que lo distingan del mundo. Si el ejercicio corporal solo produce un beneficio limitado en esta tierra, la práctica santa que atraviesa toda la vida posee un valor que alcanza no solo la existencia presente, sino también la promesa de la vida eterna venidera.
La razón fundamental por la que cada día despertamos el silencio de la madrugada, levantamos un altar con lágrimas y luchamos por guardar la santidad aun en medio de las fuertes tentaciones del mundo, es que nuestra esperanza última no está puesta en la gloria finita de esta tierra. La abundancia material o el éxito mundano, como las tentaciones que Jesucristo enfrentó en Mateo 4, pueden convertirse más bien en peligrosas seducciones que atan el alma. El ser humano no vive solamente de pan, sino de la palabra de vida que procede de la boca de Dios; por eso, la esperanza del verdadero creyente debe estar firmemente fijada únicamente en el Dios vivo. La disciplina cotidiana que se practica con la esperanza puesta en los valores eternos es la inversión más valiosa a la que vale la pena entregar la vida sin reservas, y también el secreto para recibir una gran alabanza el día en que estemos delante del Señor.
El camino para superar el autoritarismo y convertirse en un bello ejemplo en cinco áreas de la vida
El apóstol Pablo dirige a Timoteo, establecido como líder de la iglesia de Éfeso, un mandato firme y solemne: que nadie lo menosprecie por ser joven. Esta enseñanza, proclamada con decisión, infunde un profundo sentido de responsabilidad a todos los cristianos que desean restaurar el liderazgo espiritual en medio del mundo. Sin embargo, el error más fatal en el que fácilmente se puede caer en este punto es confundir la autoridad con un autoritarismo externo e hipócrita, basado en cargos visibles o en actitudes opresivas. La verdadera autoridad espiritual interior no brota de una obsesión orgullosa por exaltarse a uno mismo, sino de una prudencia que no habla a la ligera, de una conducta que evita la precipitación y de un carácter humilde que sabe rebajarse.
El único secreto para no ser menospreciado consiste en vivir con firmeza como ejemplo para los creyentes en cinco virtudes concretas: palabra, conducta, amor, fe y pureza. Debemos recordar, a la luz de la advertencia de Santiago 3 y del sufrimiento del rico en Lucas 16, que un pequeño error que comienza en la boca y la lengua puede sacudir el timón de la enorme nave de la vida y conducirla finalmente a la ruina. En una época en la que todos se tambalean y se desalientan, debemos mantenernos firmes con una fe sólida como la roca, y ejercer un amor amplio que no odia ni juzga a los demás sin fundamento. La pureza moral, que consiste en vaciarse limpiamente de uno mismo y prepararse como un vaso santo y precioso, digno de ser usado por el Señor, es una condición indispensable para ser empleado en toda buena obra.
La llama del ministerio santo que lee, exhorta y enseña la Palabra
Si la autoridad espiritual ha sido establecida mediante la piedad interior y el ejemplo de vida, ahora corresponde entregarse plenamente al lugar esencial del ministerio que da vida a los creyentes y reconstruye la comunidad. Los tres ejes principales del pastoreo que presenta la Biblia son la lectura pública de la Palabra de Dios, la exhortación cálida a los creyentes cansados y la enseñanza clara del conocimiento de la verdad. Así como la iglesia primitiva estableció una santa tradición centrada en la Palabra al leer en voz alta, en el culto, la Torá del Antiguo Testamento, los profetas y las cartas de los apóstoles, también nosotros debemos acercarnos al lugar sagrado de la meditación bíblica. Del mismo modo que el gusano de seda debe comer y digerir diligentemente las ásperas hojas de morera para producir finalmente hermosos hilos de seda, el hombre de Dios solo puede dar frutos de una vida santa cuando se alimenta plenamente de la Palabra espiritual que viene del cielo.
Asimismo, el ministerio de consolar, animar y exhortar a los creyentes desalentados que han caído, para que vuelvan a levantarse, es una expresión concreta del amor que la iglesia debe practicar. Además, la iglesia no debe conformarse con proclamar la verdad de manera unilateral, sino que debe convertirse en un gran centro de aprendizaje donde se estudie y se profundice en la ley del reino de Dios. Recordamos la historia de Jesucristo, quien recorrió toda Galilea enseñando y proclamando el verdadero evangelio del cielo, mientras numerosas multitudes avanzaban siguiendo la luz de esa vida. Del mismo modo, cuando la comunidad de la iglesia enseña diligentemente la Palabra y comparte con los creyentes su profunda perspectiva teológica, se cumple finalmente la gran obra de restauración por la cual innumerables almas sumidas en la oscuridad reciben nueva vida y regresan a Dios.
Despertar el don interior y convertirse en un canal de bendición que salva a uno mismo y al mundo
El apóstol Pablo exhorta con fuerza a su amado discípulo Timoteo a no descuidar el don espiritual que Dios ya había derramado en su interior mediante la imposición de manos y la palabra profética de ánimo, sino a avivarlo nuevamente como un fuego. Este pasaje es la confesión humilde del apóstol de que la fuente de toda bendición y de todo poder espiritual no se encuentra en las condiciones humanas ni en los ritos externos, sino únicamente en el Dios vivo. Tal como lo ilumina con claridad el sermón del pastor David Jang, necesitamos un despertar espiritual que no abandone ni deje enfriar los dones espirituales y el llamado escondidos en nuestro interior, sino que los reavive ardientemente cada día. El creyente debe recordar la gracia de la cruz que le ha sido concedida y el poder del evangelio, y entregarse de todo corazón a todas las cosas, demostrando claramente ante todos su madurez espiritual y su progreso interior.
El proceso por el cual un cristiano se mantiene rectamente en la verdad y madura en profundidad espiritual no es simplemente un asunto de santificación individual, sino una cuestión de enorme importancia de la que depende la vida de toda la comunidad. Quien muestra un ejemplo en palabra y conducta, y entrega por completo toda la energía de su vida a leer, exhortar y enseñar diligentemente la Palabra, finalmente alcanzará crecimiento espiritual. Esta profunda meditación bíblica del pastor David Jang nos recuerda la verdad de que, cuando mantenemos hasta el final esta actitud de piedad, no solo nos guardamos a nosotros mismos, sino que también nos convertimos en un canal bendecido que conduce por el camino de la salvación a todas las almas que nos escuchan. Grabando profundamente en el corazón este santo desafío, debemos caminar en silencio por el sendero de la piedad espiritual, esperando que cada día de nuestra vida sea una ofrenda viva y santa dirigida al Dios vivo. Entonces, ¿dónde estamos poniendo ahora nuestra esperanza, y mediante qué disciplina espiritual diaria estamos siendo moldeados como vasos del Señor?
In John Bunyan’s classic The Pilgrim’s Progress, the pilgrim walks the narrow road without ever stopping, even amid countless temptations and trials. There was only one reason he could continue to discipline and train himself while passing through the harsh wilderness: he was looking toward the eternal Celestial City that lay at the end of his gaze. This journey of the pilgrim teaches us why training in godliness is necessary for those of us seeking the path of true faith amid the overwhelming currents of the world. Pastor David Jang’s exposition, which reflects on the essence of ministry based on 1 Timothy 4, carefully identifies the inner attitude and spiritual authority that must be possessed by those walking toward this eternal hope.
Spiritual Training of the Soul That Places Its Hope in the Living God
The essence of the encouragement and teaching that the apostle Paul gave to his spiritual son Timothy, as he entrusted him with the great community of the church in Ephesus, is contained in 1 Timothy. This epistle is like a foundational guide to ministry. If the foremost mission of a spiritual leader is to defend the truth, the next most important task is to help each believer form inner holiness. In an age overflowing with the misguided whispers of false teachers, true Christians must form spiritual habits that set them apart from the world. If bodily training brings only limited benefit on this earth, holy training that penetrates all of life carries benefit not only for the present life but also for the promise of the eternal life to come.
The fundamental reason we wake the stillness of dawn each day, build an altar with tears, and struggle to preserve holiness amid the fierce temptations of the world is that our ultimate hope does not rest in the finite glory of this earth. Material abundance or worldly success, like the temptations Jesus Christ faced in Matthew 4, can instead become dangerous temptations that bind the soul. Human beings do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the life-giving word that proceeds from the mouth of God. Therefore, the hope of a true believer must be fixed solely on the living God alone. Daily discipline carried out with hope placed in eternal value is the most worthwhile investment to which one can devote life without reservation, and it is the secret to receiving great praise on the day one stands before the Lord.
The Path Beyond Authoritarianism: Becoming a Beautiful Example in Five Areas of Life
The apostle Paul gives a strong and solemn command to Timothy, who had been appointed as a leader of the church in Ephesus: let no one despise you because of your youth. This teaching, declared with firmness, gives a deep sense of responsibility to every Christian who seeks to restore spiritual leadership in the world. Yet the most fatal mistake one can easily make here is to fall into hypocritical authoritarianism, attempting to establish authority through outward position or an oppressive attitude. True inner spiritual authority does not flow from a proud obsession with elevating oneself, but from careful restraint that does not speak recklessly, from prudence that avoids rash conduct, and from a humble character that lowers oneself.
The only secret to not being despised is to steadfastly live as an example to believers in five concrete virtues: speech, conduct, love, faith, and purity. We must remember, through the warning of James 3 and the agony of the rich man in Luke 16, that a small mistake beginning with the mouth and tongue can shake the rudder of the great ship called life and ultimately lead it toward destruction. In an age when everyone is shaken and discouraged, we must hold our center with faith as firm as a rock, and extend broad love that does not hate or judge others without cause. Moral purity, by which one empties and cleanses oneself to be prepared as a holy and precious vessel fit for the Master’s use, is an essential condition for being used for good works.
The Holy Flame of Ministry: Reading, Exhorting, and Teaching the Word
Once spiritual authority has been established through inner godliness and an exemplary life, one must then devote oneself fully to the essential work of ministry that revives the saints and rebuilds the community. The three central pillars of shepherding presented in Scripture are the public reading of God’s Word, warm exhortation for weary believers, and clear teaching of the knowledge of truth. Just as the early church established a holy Word-centered tradition by reading aloud the Torah, the Prophets, and the letters of the apostles in the place of worship, we too must move toward the sacred place of biblical meditation. Just as a silkworm must diligently eat and digest rough mulberry leaves before it can produce beautiful silk thread, a person of God can bear the fruit of a holy life only when fully nourished by the spiritual Word from heaven.
In addition, the ministry of comforting, encouraging, and exhorting the souls of believers who have fallen into discouragement so that they may rise again is a concrete expression of love that the church must faithfully carry out. Furthermore, the church must not be satisfied with merely proclaiming the truth one-sidedly; it must become a great hall of learning where the law of the kingdom of God is studied and examined. We remember the history of how countless crowds followed the light of life when Jesus Christ traveled throughout Galilee, teaching and proclaiming the true gospel of heaven. In the same way, when the church community diligently teaches the Word and shares its deep theological insight with believers, a great work of restoration will finally be fulfilled, in which countless souls sunk in darkness receive new life and return to God.
Awakening the Inner Gift and Becoming a Channel of Blessing That Saves Oneself and the World
The apostle Paul strongly exhorts his beloved disciple Timothy not to neglect the spiritual gift of God that had already been poured into him through the laying on of hands and prophetic encouragement, but to fan it again into flame. This passage is the apostle’s humble confession that the source of all blessings and spiritual power is not found in human conditions or outward rituals, but solely in the living God alone. As Pastor David Jang’s sermon clearly illuminates, we need spiritual awakening that does not leave the spiritual gifts and calling hidden within us neglected or dulled, but reignites them passionately each day. Believers must remember the grace of the cross and the power of the gospel granted to them, devote themselves wholeheartedly to all things, and clearly demonstrate their spiritual maturity and inner progress to everyone.
The process by which one Christian stands rightly in the truth and grows deeper spiritually is not merely a matter of personal sanctification; it is a matter of grave importance upon which the life of the entire community depends. Those who set an example in speech and conduct and devote all the energy of their lives to diligently reading, exhorting, and teaching the Word will ultimately achieve spiritual growth. Pastor David Jang’s profound meditation on Scripture reminds us of the truth that when we maintain this attitude of godliness to the end, we not only guard ourselves but also become blessed channels who lead every soul that listens to us onto the path of salvation. Engraving this holy challenge deeply in our hearts, we must quietly continue the journey of spiritual godliness, hoping that each of our days may become a holy living sacrifice offered to the living God. Where, then, are we placing our hope now, and through what kind of spiritual training are we being shaped each day into vessels of the Lord?
[본문] 존 번연의 고전 《천로역정》에서 순례자는 수많은 유혹과 시련 속에서도 좁은 길을 걸으며 결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가 거친 광야를 지나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훈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시선 끝에 닿아 있는 영원한 하늘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례자의 여정은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찾아 나서는 우리에게 경건의 훈련이 왜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디모데전서 4장의 말씀을 바탕으로 목회의 본질을 고찰한 장재형 목사의 강해는, 바로 이 영원한 소망을 향해 걷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내면의 태도와 영적 권위가 무엇인지를 정교하게 짚어낸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영혼의 영적 훈련
바울 사도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라는 큰 공동체를 맡기며 전한 격려와 가르침의 정수가 디모데전서에 담겨 있다. 이 서신은 목회의 원론과도 같다. 영적 지도자가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사명이 진리를 사수하는 일이라면, 그다음으로 중요한 과제는 성도 개개인이 내면의 거룩함을 형성하도록 돕는 일이다.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속삭임이 난무하는 시대 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되는 영적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육체의 연습이 이 땅에서 약간의 유익을 줄 뿐이라면, 온 삶을 관통하는 거룩한 연습은 현재의 삶뿐만 아니라 다가올 영원한 내생의 약속까지 보장하는 유익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매일 새벽의 적막을 깨워 눈물로 제단을 쌓고 세상의 거센 유혹 속에서도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 이 땅의 유한한 영광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질적 풍요나 세상적인 성공은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주하셨던 시험처럼, 도리어 영혼을 묶는 위험한 유혹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사람은 결코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기에, 참된 신앙인의 소망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고정되어야 마땅하다. 영원한 가치에 소망을 두고 행하는 일상의 단련이야말로 아낌없이 삶을 던질 만한 가장 가치 있는 투자이며, 주님 앞에 서는 날 큰 칭찬을 받는 비결이다.
권위주의를 넘어 삶의 다섯 가지 아름다운 본이 되는 길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진 디모데를 향해 누구도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는 강력하고도 엄중한 명령을 내린다. 단호하게 선포된 이 가르침은 세상 속에서 영적 리더십을 회복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책임감을 준다. 그러나 여기서 범하기 쉬운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외적인 직위나 억압적 태도로 권위를 세우려는 외식적인 권위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참된 내면의 영적 권위는 스스로를 높이려는 교만한 집착이 아니라,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고 경거망동하지 않는 신중함과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성품에서 비로소 흘러나오는 법이다.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 유일한 비결은 오직 말과 행실, 사랑과 믿음, 그리고 정절이라는 다섯 가지 구체적인 덕목에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삶을 우직하게 살아내는 것뿐이다. 입과 혀에서 시작되는 작은 실수가 인생이라는 거대한 배의 방향타를 뒤흔들고 마침내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야고보서 3장의 경고와 누가복음 16장 부자의 고통을 통해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흔들리고 좌절하는 시대 속에서 반석과 같이 굳건한 믿음으로 중심을 잡고, 아무런 근거 없이 타인을 미워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넓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스스로를 깨끗하게 비워내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거룩하고 귀한 그릇으로 준비하는 도덕적 정결함이야말로 선한 일에 쓰임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말씀을 읽고 권하며 가르치는 거룩한 사역의 불꽃
내적인 경건과 삶의 모범을 통해 영적인 권위를 확립했다면, 이제는 성도들을 살리고 공동체를 재건하는 본질적인 사역의 자리에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목양의 삼대 핵심 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적으로 읽는 것과 지친 성도를 따뜻하게 권하는 것, 그리고 진리의 지식을 명확히 가르치는 일이다. 초대교회가 예배의 자리에서 구약의 토라와 선지서, 사도들의 편지를 소리 높여 독송하며 말씀 중심의 거룩한 전통을 세웠던 것처럼 우리 또한 거룩한 성경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누에가 거친 뽕잎을 부지런히 먹고 소화해야 비로소 아름다운 비단실을 자아내듯, 하나님의 사람 또한 하늘의 신령한 말씀을 온전히 섭취할 때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더불어 낙심하여 주저앉은 성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다시 일어서도록 권면하는 사역은 교회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나아가 교회는 진리를 단순히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위대한 배움의 전당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온 사방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하늘의 참된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 수많은 무리가 그 생명의 빛을 따라 나아왔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가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고 그 깊은 신학적 통찰을 성도와 나눌 때, 비로소 어둠에 잠긴 수많은 영혼이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위대한 회복의 역사가 성취될 것이다.
내면의 은사를 깨워 자신과 세상을 구원하는 축복의 통로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향해 안수와 격려의 예언을 통해 그의 내면에 이미 부어진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다시 불일듯 일으키라고 강력하게 권면한다. 이 대목은 모든 축복และ 영적 능력의 근원이 인간적인 조건이나 외적인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음을 겸손히 시인하는 사도의 고백이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가 선명하게 비추는 바와 같이, 우리 내면에 감추어진 영적 선물과 소명을 방치하거나 무뎌지게 만들지 않고 날마다 뜨겁게 재점화하는 영적 각성이 필요하다. 신자는 자신에게 허락된 십자가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을 기억하며,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영적인 성숙과 내면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진리 안에서 바르게 서고 영적으로 깊어지는 성숙의 과정은 단순히 개인의 성화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생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다. 말과 행실의 모범을 보이며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권하며 가르치는 일에 삶의 모든 에너지를 전적으로 드리는 자는 마침내 영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장재형 목사의 이 깊이 있는 성경 묵상은 우리가 이러한 경건의 태도를 끝까지 유지할 때, 우리 자신을 지킬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듣는 모든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복된 통로가 된다는 진리를 상기시킨다. 이 거룩한 도전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우리의 매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를 소망하며 영적 경건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두고 있으며, 날마다 어떠한 영적 연습을 통해 주님의 그릇으로 빚어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