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 선택과 유기

로마서 9장에 들어서는 바울의 음성은 교리적 논증을 앞세운 강연자의 것이라기보다, 끊어질 듯한 아픔을 쏟아내는 사랑하는 자의 탄식에 가깝습니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자)**는 이 대목을 해설하며 8장의 영광스러운 환희가 9장의 깊은 고뇌로 이어지는 지점, 즉 사랑이 더 큰 사랑을 밀어 올릴 때 발생하는 ‘역설의 문법’에 주목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의 사랑에서 결코 끊어질 수 없다고 선언한 직후, 곧바로 내 형제를 위해서라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노라”고 고백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이 인간을 얼마나 극단적인 연민의 자리로 데려가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진술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흔히 로마서를 교리(1~8장)와 윤리(12~16장)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학습 습관이 9장에 담긴 바울의 눈물을 가릴 수 있다고 경계합니다. 사실 8장의 확신이야말로 9장의 애통을 낳는 모태가 됩니다.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사랑의 밖에 서 있는 이들을 보며 참된 비통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언어는 십자가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확증인 동시에, 세상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버림받는 고통을 수반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택과 유기라는 거대한 주제는 차가운 신학적 계산이 아니라 뜨거운 중보의 심장 위에서 읽혀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야곱과 에서, 혹은 가인과 아벨의 서사를 통해 선택의 신비가 결코 특권이나 정당화의 도구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야곱이 받은 축복은 에서의 통곡을 잊지 않아야 할 책임이며, 선택받은 자의 부르심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겸손의 자리입니다. 렘브란트의 명화 <탕자의 귀향>에서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품을 때, 곁에 서 있는 형의 차가운 시선은 선택받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장재형 목사는 선택의 은혜가 우리를 ‘집 안에 있는 자’의 안일함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집을 돌봐야 할 책임으로 이끈다고 역설합니다.

바울이 나열한 이스라엘의 여덟 가지 특권—양자 됨, 영광, 언약, 율법, 예배, 약속, 조상들, 그리고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신앙의 뿌리를 기억하는 호흡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기독교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구약이라는 거대한 약속의 토양 위에서 완성된 성취임을 잊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뿌리에 대한 존경이 없는 신앙은 교만해지기 쉽지만, 우리 예배의 “아멘”과 “할렐루야” 속에 히브리적 숨결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바울이 동족을 향해 품었던 고통은 바로 이 뿌리를 향한 연민이자, 하나님이 시작하신 역사를 반드시 완성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결국 로마서 9장의 정점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바울의 눈물에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통해 구속의 신비를 침묵 속에 웅변하듯, 바울의 “끊어질지라도”라는 고백은 비명 없는 비명을 품고 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선택받은 자의 자리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과 상처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것이 신자를 자만이 아닌 소명의 자리로 부른다고 말합니다. 참된 지도자는 공동체의 아픔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고통으로 치환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죄를 사해달라고 간구하며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달라고 호소했던 것처럼, 바울 역시 자신이 미워했던 이들을 복음으로 다시 찾아가는 사랑의 행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재형 목사의 강해는 로마서 9장을 단순한 예정론 논쟁의 장이 아니라, 사랑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보의 장으로 전환시킵니다. 신앙은 내가 얼마나 안전한가를 확인하는 방패가 아니라,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이해의 대상이기 전에 사랑의 사건이며, 그 사랑은 민족과 역사, 전통과 상처의 모든 층위를 관통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말을 전하는 자는 거짓 없는 눈물로 이웃의 상처를 끌어안게 됩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9장은 우리를 더 정교한 지식인이 아니라,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심장 박동을 품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빚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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