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 성경 묵상 1: 무너진 시대, 은혜로 다시 세우는 신앙의 성벽 (Olivet University)

장재형 목사

서기 410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거대한 제국 로마가 이민족의 침략으로 함락되던 날,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눈앞의 참혹한 폐허를 바라보며 영원히 쇠하지 않는 ‘하나님의 도성’을 깊이 사유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견고한 제국의 성벽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현실 속에서도, 그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터전이 어떻게 인류의 궁극적인 소망이 될 수 있는지를 묵상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폐허와 재건의 모티프는 기원전 5세기,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약성경 역사 속에서 가장 선명하고 묵직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무너진 시대를 향한 애통함과 이를 다시 일으키려는 거룩한 열망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신앙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바로 이 느헤미야서의 성전 재건 역사를 거울삼아, 거센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길을 잃고 무너져가는 현대 교회가 어떻게 다시 생명력을 얻고 복음의 전초기지로 회복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신학적 통찰을 제시합니다.

폐허의 자리에서 흘린 애통의 눈물과 은혜의 시작

히브리어로 느헤미야라는 이름 안에는 ‘야웨께서 위로하신다’는 깊은 뜻과 더불어 용기를 북돋우는 강렬한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위로는 결코 값싼 위안이 아니라, 처절한 현실을 직시하는 눈물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폐허가 되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 페르시아 왕궁의 안락한 자리에 머물던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동족의 비참한 처지를 가슴에 품고 무려 120일 동안 금식하며 애통해했습니다. 그의 슬픔은 단순히 잃어버린 고향 땅에 대한 감상적인 향수가 아니라, 예배의 처소가 무너지고 하나님을 향한 언약 백성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현상에 대한 뼈저린 영적 근심이었습니다.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서, 군주의 면전에서 수심을 띠는 것은 곧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치명적이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뺨을 타고 흐른 진실한 눈물은 오히려 왕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고,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할 수 있는 놀라운 허락을 얻어냅니다. 이는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가 어떻게 거대한 제국의 권력을 넘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를 이 땅에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서사입니다. 무너진 담과 불타버린 성문을 다시 세우며, 그는 백성들이 다시 모여 예배하고 엎드려 기도하는 거룩한 공동체로 온전히 회복되기를 꿈꾸었습니다.

이 설교가 비추는 자리는 결코 고대 중동의 지나간 역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구 사회의 수많은 예배당이 교인 수 급감과 재정적 위기로 인해 문을 닫고, 심지어 술집이나 서커스장, 이슬람 사원으로까지 변해가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시계라는 비유처럼, 한때 전 세계로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며 찬란한 한낮의 복음의 빛을 발하던 땅이 역으로 어두운 밤을 맞이한 선교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시대적 어둠 속에서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무너진 영적인 성벽을 바라보며 진실로 애통해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파수꾼이 되어 다가오는 위기를 경고하고 깨어 울부짖는 기도의 무릎이 회복될 때, 비로소 닫혀 있던 은혜의 문이 다시 열릴 수 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일으키는 십자가 복음과 믿음의 동역

대적들의 음모와 방해 속에서도 단 52일 만에 성벽 공사가 완성되었다는 기록은, 주변 이방 민족들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든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물리적인 성벽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구원과 갱신이 종착점에 이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짚어냅니다. 예배의 공간을 보존하는 외형적인 재건만큼이나, 그 공간의 내부를 진리로 채우는 십자가 복음의 회복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총독으로서 외부의 위협을 막아내며 든든한 성벽을 쌓아 올렸다면, 제사장이자 학사인 에스라는 수문 앞 광장에 백성들을 모으고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을 낭독하며 그들의 메마른 내면을 생명의 말씀으로 채웠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보여준 이 아름다운 동역은 현대 교회가 나아가야 할 가장 이상적인 리더십의 모델이자 방향타를 제시합니다. 교회의 외형을 지켜내는 킹덤 빌더들의 실천적인 헌신과, 강단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구원의 진리 선포가 온전히 결합될 때 교회는 비로소 참된 생명력을 지니게 됩니다. 아무리 화려한 예배당을 지어 올린다 해도, 그 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나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게 된다는 로마서의 깊은 신학적 진리가 선포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세속화의 거센 파도 앞에서 또다시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임하는 완전한 의의 교리가 모든 성도의 심령에 깊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전 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생명 공동체의 본질을 지켜내는 처절한 영적 전투입니다. 기독교의 오랜 유산이 담긴 예배당들이 폐쇄될 위기에 놓일 때, 이를 매입하고 다양한 언어권과 문화권의 예배 공동체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은 단순한 부동산의 유지가 결코 아닙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세우고자 하는 치열하고 구체적인 선교의 결단인 것입니다. 일상과 일터 속에서 땀 흘린 결실로 하나님 나라의 비즈니스에 동참하는 성도들의 희생은, 고대 예루살렘의 돌무더기를 맨손으로 쌓아 올렸던 백성들의 순종과 다를 바 없는 거룩한 믿음의 발자취입니다.

참된 회개와 거룩한 소망으로 피어나는 영적 부흥

성벽이 완성된 후 수문 앞 광장에서 율법책의 낭독을 들은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일제히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의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무지한 죄악과 공동체의 깊은 타락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긴 시간 동안 죄를 자복하며 철저히 회개했던 이 성경의 기록은, 부흥이 결코 화려하게 포장된 문화적 프로그램이나 인간의 얄팍한 경영학적 기법에서 기인하지 않음을 웅변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는 호세아 선지자의 탄식처럼, 스스로를 십자가 앞에 낮추고 진리의 지식으로 돌이키는 찢어지는 회개가 없다면 어떠한 신앙적 열심도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뜨거운 눈물은 결코 참담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들은 슬픔에 잠긴 무리를 향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선포하며, 그들을 율법의 뼈아픈 찔림에서 끌어올려 참된 사죄의 은혜와 거룩한 소망의 자리로 인도했습니다. 말씀 앞에서의 철저한 자기 직면 뒤에 찾아오는 씻음의 은혜, 그리고 거기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영적인 기쁨이야말로 무너진 성벽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눈부신 특권입니다. 본문이 여러 가르침을 통해 끊임없이 강조해 온 진정한 부흥의 청사진 역시,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고 상처 입은 이웃을 향해 사랑을 실천하는 생명력이 바로 이 넘치는 성경 묵상의 기쁨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에 닿아 있습니다.

결국, 건물이 무너지면 모이는 공동체도 서서히 흩어지기 마련이며, 성도의 모임이 사라지면 세상을 향한 복음의 불씨 또한 싸늘하게 식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어두운 시대에 예배의 물리적 처소를 끝까지 사수하고, 그 공간 안에서 철저한 진리의 훈련과 기도의 제단을 쌓아가는 일은 단순한 종교적 전통의 고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속의 거친 유혹 속에서 영혼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다음 세대의 청년과 아이들에게 변치 않는 유산을 물려주기 위한 생명줄입니다.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와 차가운 시선들을 뚫고 나아가며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본질이 바로 이 굳건한 영적 기초의 재건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흙먼지 속에서 다시 성벽을 세워 올렸던 일은, 결국 그 안전한 울타리 안에 머무는 뭇 영혼들을 흔들리지 않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단단히 빚어내기 위한 위대한 섭리였습니다. 고대의 폐허 위에 눈물과 기도로 벽돌을 얹었던 애끓는 심장과, 생명의 말씀 앞에서 가슴을 치며 애통해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슬픔이 오늘 굳어버린 우리의 가슴에도 깊이 흘러내려야 합니다. 거대한 시대의 조류 앞에서 공동체의 무너짐을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내 안의 허물어진 영적인 담장부터 먼저 점검하며 조용히 엎드리고 있는지 고요히 돌아볼 때입니다. 화려한 겉모습을 다 벗겨낸 빈자리, 당신의 깊은 내면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진리의 성벽이 지금 온전하게 세워져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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