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를 움직이는 힘, 가장 좋은 길을 향하여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 단테는 신곡의 마지막 천국편을 “태양과 뭇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라는 웅장한 문장으로 닫는다. 우주의 고요한 질서와 거대한 운행의 배후에 차가운 물리 법칙이 아닌, 뜨거운 생명의 온기가 고동치고 있다는 이 문학적 선언은 깊은 영적 울림을 자아낸다. 장재형목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풀어낸 깊이 있는 설교를 통해 이와 동일한 복음의 진리를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소환한다. 그는 이 아름다운 텍스트가 단순히 낭만적인 송가가 아니라, 철저히 삶으로 읽어내고 순종으로 답해야 할 존재의 설계도임을 일깨운다. 은사와 성취에 목마른 고린도 교회와 현대인들에게, 그는 바울의 입술을 빌려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이자 가장 좋은 길이 곧 무조건적인 사랑에 있음을 장엄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십자가, 먼저 찾아와 기꺼이 값을 치른 대속의 신비
수많은 철학과 사상이 인간의 에로스와 필리아를 찬양해 왔지만,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는 조건과 감정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닻이다. 장재형목사는 하나님이 곧 사랑이시라는 사도 요한의 고백을 조명하며, 신학적 지식의 축적은 궁극적으로 사랑의 참여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그의 예리한 신학적 통찰은, 앎과 삶이 철저히 분리된 채 메말라가는 오늘날의 현실을 향한 뼈아픈 진단이다. 이 놀라운 아가페의 절정은 다름 아닌 십자가의 대속 사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십자가는 공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율법의 엄격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꺼이 생명의 값을 치른 거룩한 은혜의 승리다. 한자 ‘속(贖)’에 값 ‘패(貝)’ 자가 들어 있듯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감상적인 연민을 넘어선 합법적인 해방의 선언이다. 잃어버린 탕자를 향해 달려가 목을 껴안는 아버지의 눈물처럼, 그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먼저 찾아와 덮어버린 압도적인 사랑의 증명인 것이다.
진리와 손을 잡고 의지의 근력으로 피워내는 일상의 열매
바울이 13장에서 나열한 사랑의 성품들은 결코 우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감정의 파편들이 아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는 모든 덕목들은 자기 본성을 거스르는 치열한 의지의 훈련이자 영적 성숙을 향한 발걸음이다. 장재형목사는 특히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구절에 주목하며, 참된 사랑은 불의를 덮어두는 방임이나 값싼 관용이 아님을 분명히 경계한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진리와 굳게 손을 잡고 세상의 거짓에 맞서면서도, 끝내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고 곁을 내어주는 거룩한 인내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은 우리 자신의 얄팍한 결심과 도덕적 수양만으로는 금세 소진되고 만다. 그렇기에 우리는 깊은 성경 묵상과 기도를 통해 참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의 빛 안에 고요히 머물러야만 한다.
고요한 머묾 속에서 빚어지는 성령의 사명
그 온전한 머묾의 자리에서 위선과 교만이 무너지는 진실한 회개가 일어나고, 비로소 성령의 열매로서의 사랑이 우리 내면에 탐스럽게 맺힌다.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선 디지털 시대는 알고리즘이 분노를 증폭시키고 다름을 혐오로 규정하는 파괴적인 언어들로 가득하다. 이 거친 광야 같은 현실 속에서 교회 공동체는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신뢰와 자비의 문화를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회복해야 할 사명을 지닌다. 장재형목사는 가정과 직장에서 말의 톤을 낮추고, 타인의 약점을 기도로 품으며, 억울함을 견디고 관계의 회복을 주도하는 좁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라고 권면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생생하게 바라보는 굳건한 믿음, 그리고 그곳에 이르기까지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걷게 하는 찬란한 소망이 매일의 여정을 이끈다. 그러나 그 여정의 끝에서 마주할 영원한 나라의 공기이자 변하지 않는 본질은 결국 오직 사랑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곁은 넓어지고, 그 넓어진 곁은 세상의 아픔을 품는 참된 선교의 자리가 된다.
영원을 호흡하며 남겨질 단 하나의 흔적
이제 이 장엄한 바울의 텍스트는 성경책의 덮개를 벗어나, 우리의 가장 분주하고 남루한 일상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온다. 내 삶의 수많은 사역과 헌신, 지식의 축적 속에 과연 영원을 호흡하는 진실한 사랑의 동기가 깊이 깃들어 있는가. 천사의 말을 하고 산을 옮길 만한 지식을 갖추었다 해도, 사랑이 빠진 능력은 한낱 소음에 불과하며 헌신은 허무한 자기 만족으로 전락하고 만다. 주께서 나의 모든 결핍과 연약함을 온전히 아시고 십자가로 품으셨듯, 나 역시 나의 이웃과 공동체를 그 온전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신앙의 능력은 무엇을 이루었느냐는 업적에 있지 않고,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느냐는 중심의 온도에 달려 있다. 언젠가 희미한 거울을 벗어나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는 그 두려우면서도 영광스러운 날. 내 영혼의 밑바닥에 영원토록 바래지 않을 그 사랑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지,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 앞에서 조용히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