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성숙 – 장재형목사(장다윗)

장재형목사와 동력자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현재도 자라고 있고, 미래에도 계속 자라며, 결국 종말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거룩하고 영화로운 모습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소망이다. 교회는 불완전하지만, 성령의 능력과 말씀의 진리, 그리고 사랑 안에서의 연합을 통해 분명히 그 약속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서론: 에베소서 4장과 교회의 실천적 중요성

에베소서 4장은 신약성경에서 교회론을 다루는 핵심 텍스트 중 하나로, 바울사도가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그리고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긴밀히 연결하여 설명하는 장(章)이다. 이 장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교회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움직이고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바울사도의 종합적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동시에 이 교훈을 현대 교회에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교리적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 또한 깨닫는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에베소서 4장의 가르침을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며, 교회의 본질과 미래, 그리고 성도들의 삶이 어떻게 연관되어야 하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통찰해 왔다.

장재형목사는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선 “교회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교회를 하나의 건물이나 제도적 조직으로만 파악하는 과거적 관점을 넘어, 유기적으로 자라고 변화하며 스스로 갱신해 가는 ‘생명체적 존재’로 보고 있다. 이는 에베소서 4장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과도 연결된다. 교회가 몸이 된다는 것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긴밀히 연결되고, 각 지체가 서로를 보완하고 돕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만 교회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교회론적 시각은 단순히 신학 논리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현대 교회의 현실을 보면, 분열과 세속화, 다양한 이단 교리의 침투, 그리고 무기력증에 빠진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에베소서 4장에서 말하는 “어린아이 상태를 벗어나 장성한 분량에 이르라”는 권면은, 현재 교회에도 여전히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로 다가온다. 어린아이로 머무르면 세상의 궤술과 교묘한 유혹에 넘어가기 쉽고, 교회 내부의 다툼이나 은사의 남용, 혹은 기복주의적 사고방식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바울사도가 제시하는 교회 성숙의 길은, 믿음과 지식의 조화를 이루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며, 성령의 능력과 진리에 기초해 세상의 거짓된 풍조를 분별하는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장재형목사 역시 교회와 성도가 한편으로는 지식,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사랑을 통해 점진적인 성숙에 도달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나아가 이것이 궁극적으로 종말론적 희망, 곧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는 과정임을 상기시키면서, 교회가 단순히 자신들만의 안전과 구원에 몰두하는 것을 넘어 ‘세상을 위한 교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베소서 4장을 통해 제시되는 핵심 메시지는, 교회는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고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도 하나의 몸을 이루어 성장할 수 있다는 종합적 ‘모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분열하고 부패했다는 부정적 현상만 부각되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이 본문이 주는 통일성의 메시지, 다양성의 조화,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봉사하고 섬기는 영적 질서가 더욱 필요해진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러한 현실을 주목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교회는 멈추지 말고 자라가야 함을 역설한다. 교회가 ‘전위대(前衛隊)’로 부름받았다는 그의 주장은, 교회가 단지 과거의 전통과 교리를 지키는 소극적 공동체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 가는 선봉대라는 고취된 사명을 일깨운다.

바울사도의 메시지에 따르면, 교회가 하나 되고 서로 협력하는 것은 단지 이상적 구호나 윤리적 도덕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하는 것이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벽이 허물어진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지향하는 정체성이다. 따라서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은 교리나 교회 제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구원’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동시에 이 구원이 단지 개인 구원에 그치지 않고, 교회 공동체를 넘어 전 인류를 향한 우주적 스케일을 지닌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결국 에베소서 4장의 메시지는 교회의 본질적 정체성과 실천적 사명을 총합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장재형목사는 이를 해설하면서, 오늘날 실제 교회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지침을 덧붙인다. 요약하면, 교회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성장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자라가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숙명이며, 종말론적 희망 안에서 완성될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교회가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다양하다는 개념은, 에베소서 4장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서 강조되는 중요한 교회론적 핵심이다. 바울사도는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엡 4:4–5)라고 말하며, 교회의 근본적 단일성을 천명한다. 이는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적 통일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선포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와 역할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배경과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바로 이 ‘하나 됨과 다양성의 역동적 균형’을 교회가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만약 ‘하나 됨’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면 획일화와 강제적 통합이 일어날 수 있다. 반대로 ‘다양성’만을 강조하면 각자 자기 의견만 내세우다 보니 분열과 갈등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따라서 교회가 지향해야 할 것은 ‘하나 됨’과 ‘다양성’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상호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는 상태다. 이는 곧 몸의 비유—“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고,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아니하나…”(고전 12:12~27)—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에베소서 4장 7~12절에 등장하는 은사 목록을 보면, 교회를 세우기 위한 다양한 직분과 역할이 제시된다. 어떤 이는 사도로, 어떤 이는 선지자로, 어떤 이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또 어떤 이는 목사와 교사로 부름받는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은사가 교회의 유익과 성장,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장재형목사는 “은사는 개인의 경건이나 우월감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고 하나 되게 하는 데 쓰여야 한다”라고 거듭 말한다.

현대 교회 현장을 돌아보면, 은사를 둘러싼 갈등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예컨대 특정 은사를 과도하게 중시해 그 은사를 가진 사람들만이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기는 태도나, 반대로 어떤 은사를 경시하거나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 등이 분열을 야기하기도 한다. 에베소서 4장이 강조하는 다양성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온 몸이 상합하여 서로 유익을 주는 방향으로 은사를 활용하라는 교훈을 제공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만유 가운데 계시며 만유를 통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양한 지체가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장재형목사는 교회 내 갈등의 주요 원인을 ‘통일성과 다양성의 균형’을 잃어버린 데서 찾는다.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기보다는, 자기 주장과 견해만을 고집할 때 갈등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교회 내에서 실천되는 사랑과 겸손이야말로 통일성 안에서 다양성을 꽃피우게 하는 핵심 열쇠”라고 역설한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올바른 교리나 정책이 있어도 결국 실패하고 말며, 겸손이 없다면 교회 내 다양한 성도들이 각자 다른 재능을 협력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교회의 통일성은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처럼,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셋이 되는 조화 속에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공동체이지만 무수히 많은 지체가 다양한 역할을 감당한다. 이러한 생동감 넘치는 역동이야말로 교회를 살리는 힘이며, 종국에는 교회를 더욱 단단하게 묶어 주는 요소가 된다. 은사를 가진 성도가 서로를 향해 섬기고 봉사할 때, 교회는 점점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바깥세상에 사랑과 진리의 빛을 비추는 공동체로 자라난다. 이것이 에베소서 4장이 말하는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의 실천적 의의이며,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교회론적 지향점’이다.

믿음과 지식의 조화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믿음과 지식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결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교회와 성도가 온전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맹목적 믿음이나 공허한 지식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곤란하다. 믿음과 지식은 마치 두 날개처럼, 함께 작동해야 신앙 공동체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사랑에 대해 인간이 응답하는 결단적 태도”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노력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미 주어진 은혜에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사건이다. 믿음은 단순히 지적 동의가 아니라, 우리의 인격 전체가 하나님의 진리를 향해 열리는 영적 태도이기도 하다.

한편 지식은 하나님의 진리를 보다 깊이 탐구하고 이해함으로써,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성경에서 ‘안다’(히브리어 yada, 헬라어 ginōskō 등)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차원을 넘어, 관계적·인격적 친밀성을 함축한다. 즉 성경적 의미에서 ‘지식’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분의 성품과 계획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체득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만일 교회 안에서 믿음은 강조되지만 지식이 소홀히 다뤄진다면, 성도들은 쉽게 광신적 태도나 피상적 신앙에 빠질 우려가 있다. 경험과 느낌만 추구하다가 성경적 토대가 부족해져, 결국 거짓 가르침이나 이단 사상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반대로 지식만 강조하고 믿음을 등한시하면, 교회는 경직된 교조주의나 교리적 논쟁으로 소모적인 다툼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사랑과 믿음이 결여된 지식은 그저 머리로만 아는 이론이 되어,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에베소서 4장은 이런 극단을 피하고 “믿음과 지식에서 하나 되라”고 말함으로써, 참된 신앙 공동체의 균형 잡힌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균형을 실천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교회가 체계적인 성경 공부, 신학적 토의, 그리고 예배와 성례, 기도와 같은 경건 훈련을 함께 장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배와 기도는 믿음을 자라게 하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며, 성경 공부와 신학적 토의는 지식을 견고하게 쌓아 성도들이 진리 위에 굳게 서도록 돕는다.

이러한 믿음과 지식의 결합은 곧 성도들이 세상 문화나 시대정신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선한 영향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지식 없이 맹목적 열심만 내는 신앙인은 세상의 조롱과 비난에 쉽게 상처받고 무너질 수 있다. 반대로 믿음이 없이 지식만 가득한 신앙인은 머리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내적 능력이 결핍되는 모순을 드러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교회가 에베소서 4장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려면, 믿음과 지식이라는 두 축이 끊임없이 소통하고 상호 보완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이 조화를 실천하는 구체적 방안으로, 교육과 예배, 섬김과 봉사, 그리고 거룩한 삶의 실천을 통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모든 활동이 사랑 안에서 이뤄질 때, 비로소 교회는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갈 수 있으며,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교회의 성장과 영적 성숙

에베소서 4장 14~16절은 교회가 ‘어린아이 상태’를 벗어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바울사도는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면서, 미성숙한 상태에서 오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교회나 성도가 미성숙하면 세상의 거짓된 가치관에 쉽게 휘둘릴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분쟁이나 상처가 잦아질 가능성이 높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여기서 ‘성장’이라는 개념과 ‘성숙’이라는 개념을 구분하면서도 긴밀히 연결된 것임을 설명한다. 숫자적으로 많은 성도를 보유하거나, 건물이나 재정이 늘어나는 것을 ‘성장’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영적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참된 교회 성장에는 반드시 “말씀의 기초 위에서 성도들의 인격이 그리스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교회는 생명체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양적·질적 성장을 통해 자라나야 함을 역설한다.

에베소서 4장에 의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는 최종 목표 지점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해야 한다. 이는 단지 신앙 생활을 오래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와 예배, 봉사를 실천하며, 서로 교제하고 격려하는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이러한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단계별 교육 프로그램’, ‘영적 멘토링’, ‘소그룹 및 셀 모임’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이 형식에 그치면 안 되며, 사랑과 진리가 녹아든 관계 속에서 실제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숙’이라는 단어는 곧 ‘책임감’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교회가 어린아이로 남아 있으면 세상 풍조에 따라 흔들리고, 스스로를 지키기도 어렵다. 그러나 성도 개개인이 말씀으로 무장하고, 자신의 은사를 봉사와 섬김에 사용하며, 공동체 전체가 예배와 헌신에 진지하게 참여할 때 교회는 견고한 내적 힘을 얻게 된다. 이는 단지 교회 내부를 굳건히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외부적 환난이나 비방, 시대적 도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형성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영적으로 성숙해 갈수록, 자연스럽게 교회 밖 세상에도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겨자씨나 누룩처럼, 미미해 보이지만 꾸준히 퍼져 나가는 복음의 힘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두고 장재형목사는 ‘종말론적 희망’과 연결된다고 보는데, 교회가 점차 성숙해지는 과정 자체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해 가는 전초 단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영적 성숙은 단순한 교회 내의 자기개발이나 자기만족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정의와 사랑, 평화를 실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필수 준비 과정이다. 에베소서 4장에 등장하는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스스로 세운다”(엡 4:16)는 표현 역시, 교회가 상호 돌봄과 책임을 통해 함께 성숙해 갈 때 점점 더 굳건해진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교회 성장’과 ‘영적 성숙’은 결코 분리된 주제가 아니며, 오히려 두 축이 맞물려야 교회가 참된 부흥을 경험하게 됨을 분명히 보여 준다.

사랑 안에서 하나 됨

에베소서 4장 15~16절은 교회의 구체적 성장 방식이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바울사도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강조하는데, 이는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에 있어서 ‘사랑’이 얼마나 결정적인 요소인지를 웅변적으로 나타낸다. 사랑은 교리적 지식이나 은사, 그리고 조직적 시스템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그것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동력이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연상시키며, 사랑이 없는 교회 활동은 궁극적으로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말한다. 교회 내에서 아무리 훌륭한 프로그램이나 사역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랑에 뿌리를 두지 않으면 결국 형식적이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작은 헌신과 사소한 봉사라도 참된 사랑과 겸손이 담겨 있으면, 그것은 교회를 더욱 강건하게 세우는 ‘거룩한 씨앗’이 된다.

교회가 사랑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장재형목사는 교회 내 다양한 지체—연령, 학력, 경제적 배경, 문화적 차이 등을 가진 성도들—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인정하고, 차이를 넘어서는 영적 유대감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곧 수평적이고도 가족적인 공동체성을 함축한다. 만약 이러한 교제와 나눔이 사라지면, 교회는 금세 사무적인 조직이나 프로그램 중심의 단체가 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또한 사랑 안에서 하나 됨을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장재형목사는 ‘서로 섬김’과 ‘서로 짐을 지는’(갈 6:2) 태도를 제시한다. 이는 곧 교회가 단지 행사나 예배에 모이는 곳이 아니라, 실제 삶의 문제를 함께 나누고 해결하며, 기쁨과 고통을 공감하는 공동체임을 뜻한다. 교회 안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지체나 소외된 부류가 생긴다면, 이미 ‘사랑 안에서의 하나 됨’이라는 근본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가 연결되고 큰 군대로 일어서는 장면에서, 골짜기에 죽어 있던 뼈들이 서로 이어지고 새 생명으로 소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이 에베소서 4장 16절의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라는 구절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한다. 서로가 연결되고 보완해 주는 과정은 오직 사랑으로 가능해진다. 사랑은 관계를 회복시키고, 상처 입은 지체를 싸매며, 서로를 돌보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랑 안에서 하나 될 때, 그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군대로 우뚝 서게 되며, 외부의 도전이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 단단함을 확보하게 된다.

결국 사랑 안에서 하나 됨은 단순히 내부 결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랑이 교회 담장을 넘어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에 맡기신 가장 중요한 사명 중 하나다. 세상에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먼저 교회 내부에서 ‘사랑 안에서의 연합’이 구현되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 교회가 ‘전위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이고도 필수적인 자질이 바로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능력”임을 역설한다.

세상 풍조와 영적 분별

에베소서 4장 14절에서는 교회와 성도들이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말라”는 경고가 등장한다. 이는 믿음과 지식이 깊어지고, 사랑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가 외부의 잘못된 사상이나 문화적 압력에 맞설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갖추라는 명령이다. 현대 사회가 ‘정보의 홍수 시대’로 불리는 만큼, 우리는 이전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정보와 주장들에 노출되어 있다. 교회나 성도들은 이러한 홍수 속에서 과연 무엇이 진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재고해야 한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현대 교회가 직면하는 거짓된 풍조로 물질주의, 소비주의, 상대주의, 영적 혼합주의, 과도한 인본주의 등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식의 기복신앙은 물질주의와 기독교 신앙을 혼합한 왜곡된 형태이며, “절대 진리는 없다”는 상대주의적 사고방식은 신앙의 토대를 허무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여러 종교나 사상에서 좋은 것만 적당히 섞어 취하는 ‘영적 혼합주의’ 역시 교회가 본질을 놓치게 만들며, 복음의 유일성을 희석시킨다.

교회가 이런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반드시 말씀을 기초로 한 영적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 에베소서 4장이 어린아이 상태를 경계하는 이유는, 미성숙한 신앙인이 쉽게 미혹당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체계적인 성경교육과 교리 교육을 제공하고, 정통 신앙 고백(사도신경, 니케아신경 등)을 가르치며, 성령 안에서 예배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추구하도록 돕는 일이 필수적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도들이 참된 믿음과 지식을 함께 배우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며, 외부 세계의 거짓 정보나 유혹 앞에서도 요동치 않는 견고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교회 공동체 내에서 상호 검증과 권면이 이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교회가 사역자와 성도의 영적 상태를 꾸준히 점검하며, 서로 다른 관점이 있을 때 대화와 기도를 통해 진리를 모색하고, 이단적 교리나 거짓 정보가 유입되면 빠르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위해 ‘작은 그룹 모임’ 혹은 ‘셀 교제’ 등 소규모 공동체 단위에서 자주 만남을 갖고, 말씀과 현실적 이슈를 함께 토의하는 과정을 권장한다. 그렇게 해야만 각 성도의 영적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동시에 세상이 던지는 질문들에 어떻게 복음으로 응답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풍조와 영적 분별의 문제는 단지 교회 내부의 정체성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향해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어떤 실천적 역할을 감당할 것인지와 직결된다. 교회가 스스로 분별력을 상실하면, 결국 세상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게 될 뿐 아니라, 이단이나 거짓 교사들에게 교회 자체가 무너질 위험을 노출하게 된다. 에베소서 4장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라는 구절은, 교회가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진리 위에 굳게 서라는 강력한 호소로 읽힐 수 있다.

결국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교회의 영적 분별력은, 단순히 방어적 자세를 넘어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고 복음을 전하는 ‘공격적’이고도 창의적인 교회 사역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교회가 올바른 분별을 갖출 때, 세상의 흐름에 영합하거나 아예 담을 쌓는 극단을 피하고, 오히려 복음을 통해 세상의 문화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변혁시킬 수 있다. 이는 교회가 단지 외부 충격을 견뎌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선교적 동력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결론: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종말론적 희망과 교회의 비전

에베소서 4장을 중심으로 살펴본 교회론에서 핵심적인 다섯 가지 주제—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믿음과 지식의 조화, 교회의 성장과 영적 성숙, 사랑 안에서의 하나 됨, 그리고 세상 풍조 속에서의 영적 분별—은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삼위일체적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종말론적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다층적으로 보여 준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사실을 강조하면서, 교회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표가 ‘하나님의 나라’임을 분명히 밝힌다.

교회는 현재 이 땅에서 불완전하지만, 계속해서 성장하고 성숙해 가면서 종국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충만히 경험할 날을 바라보는 공동체다.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결코 내부의 갈등이나 외부의 공격 앞에서 좌절하거나 방황하지 않는다. 에베소서 4장은 교회가 서로 다른 지체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었음을 잊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 하나 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은사들은 다채롭게 발휘되고, 믿음과 지식은 함께 자라며, 사랑과 연합은 교회 안에 거룩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동시에 세상의 풍조에 맞서 진리를 지켜 내고, 종말론적 희망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하는 견고한 공동체가 형성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전위대(前衛隊)’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교회가 단순히 내부에서만 안주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미 임한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Already but not yet)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적으로 구현하며, 세상 앞에서 앞장서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제시하는 이정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가 세상보다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갖고, 세상의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는 모범을 보이며, 모든 사람을 향해 복음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 비로소 교회는 진정한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전위대적 사명에는 희생과 헌신, 끊임없는 갱신이 수반된다. 교회는 종종 세속적 가치나 편의주의적 태도와 충돌할 것이다. 때로는 핍박과 오해, 조롱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베소서 4장의 메시지—“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라”—는, 교회가 한편으로는 외부 위협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적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지체들이 연합하며 성장해 가도록 끊임없이 촉구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종말론적 완성, 곧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될 여정이다.

결국, 교회의 사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이 사명을 지속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예배와 말씀 선포, 기도와 교제, 봉사와 섬김, 선교와 교육,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는 어떤 특정 순간에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안주할 수 없으며, 매일매일 ‘어린아이 상태를 벗어나 장성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성숙해 간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지는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인내하며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적 노력의 결실이다.

이러한 결론에서 핵심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현재도 자라고 있고, 미래에도 계속 자라며, 결국 종말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거룩하고 영화로운 모습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소망이다. 이는 단지 아름다운 이상이 아니라, 이미 성경이 보증하는 약속이다. 교회는 불완전하지만, 성령의 능력과 말씀의 진리, 그리고 사랑 안에서의 연합을 통해 분명히 그 약속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이 점을 잊지 않고,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는 모습이 에베소서 4장의 구체적 요구에 부합한다고 역설한다.

요컨대, 에베소서 4장은 교회가 지향해야 할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지침을 담고 있다. 이것은 단지 옛날 교회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현대 교회가 처한 위기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원리이기도 하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말씀을 해설함에 있어서, 교회가 성장하는 생명체임을 늘 상기시키며,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믿음과 지식을 겸비해 사랑으로 연합할 때,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갖추게 됨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종말론적 완성,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길로 이어진다고 힘주어 말한다.

“교회는 자라가는 것이다.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장재형목사의 이 언급은, 결국 교회가 한순간도 정체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날마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끊임없이 자라가야 한다는 요구를 함축한다. 교회가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거나,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에 만족해 버리면 그때부터 교회의 성장은 정체되고, 영적 생명력은 서서히 식어 갈 것이다. 그러나 에베소서 4장의 가르침을 붙들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교회는, 비록 불완전한 모습일지라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여정을 걸어가게 된다.
이처럼 ‘성숙한 교회’로의 길은 쉽지 않지만,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 교회가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서로 간의 분열을 극복하며, 사랑으로 연합해 진리를 붙드는 공동체가 될 때, 세상은 비로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이 에베소서 4장을 통해 바울사도가 전하는 교회의 궁극적 사명이자, 장재형목사가 현대 교회에 던지는 긴박한 메시지다. 그리고 바로 이 메시지를 붙들고 걸어가는 성도들과 교회는, 종말론적 희망 속에서 당당히 빛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전위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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